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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 스쳐간 많은 사람들, 판타지 같은 1,908초에 담았죠"

정동극장 특별 주제공연 '1,908초' 연출 여신동

첫 서양식 사설극장 원각사 주제

대사 없는 32분짜리 공연으로 선봬

공연 자체가 하나의 미술작품

관객마다 다른 감상 담아가길

정동극장 돌담길프로젝트의 특별 주제공연 ‘1,908초’ 연출을 맡은 무대미술가 여신동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사설극장 ‘원각사’와 그 공간을 거쳐간 사람들, 그리고 시간을 대사 없는 32분짜리 공연으로 표현할 계획이다.




세월의 흔적을 새긴 채 서울 한복판, 빽빽한 빌딩 숲 뒤편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선 정동극장. 이곳을 스쳐 간 많은 이들의 ‘그때 그 시간’이 무대 위에 환영처럼 펼쳐진다. ‘건축의 봄’을 주제로 내세운 정동극장의 2016 돌담길프로젝트 특별 공연 ‘1,908초’를 통해서다. 1,908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사설극장 ‘원각사’의 설립 연도다. 종로구 새문안교회 자리에 있던 원각사는 1914년 화재로 소실됐고, 1995년 복원 이념을 담아 지금의 자리에 정동극장이 세워졌다. 이번 공연의 연출·구성을 맡은 무대미술가 여신동(사진)은 26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이곳을 거쳐 간 이들과 그들의 시간을 불러내 관객과 함께 나누는 ‘색다른 굿’ 같은 무대를 만들고자 한다”며 “1,908초, 약 32분간 펼쳐지는 다양한 이미지 중 관객이 마음에 드는 장면을 담아가는 편한 공연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908년 설립 당시 원각사의 모습


작품 연출을 제안받았을 때의 첫 느낌은 호감 가는 친구에게 ‘너 나랑 사귀어볼래?’ 하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사실 정동길을 자주 걸었던 것도 아니고, 정동극장에 대한 정보도 없었어요. 그런데 건축을 주제로 정동극장의 역사를 되짚어볼 생각이라는 극장 측 아이디어가 끌리더군요. ‘풀고 싶은 과제’를 받은 것 같았죠.” 무대 미술가로 공간을 설계해 온 그에게 극장이라는 건축물을 소재로 공연을 만든다는 게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처음엔 원각사가 절 이름인 줄로만 알만큼(동명의 절도 있다) 사전 지식이 없었지만, 자료를 수집하며 극장 자체는 물론 한국의 근대에 관심이 커졌다. 공부하며 만든 제목이 원각사의 설립 연도인 ‘1,908’이다. 여 연출은 “최초의 서양식 극장에서 출발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하는데 1908년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며 “마침 우리 공연이 30분대라 대략 1,908초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단순하게 제목을 지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무대는 극장 분장실로 변신한다. 수많은 배우가 스트레칭, 메이크업, 의상 교체, 대사연습, 흡연, 휴식, 거울 보기 등 저마다의 일을 보며 1,908~1,914년 이 공간에 존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곳에 있었던 공연과 배우, 관객이 겹쳐지며 향수에 젖어들게 되더군요. 마치 영화 타이타닉에서 물속에 가라앉은 배가 여주인공의 회상을 통해 과거 화려했던 시절의 모습으로 서서히 바뀌는 것처럼요. 그런 인상을 공연에 녹여낼 생각이에요.”

이번 공연은 큰 설정만 있을 뿐 구체적인 스토리나 대사가 없다. 여 연출은 공연 자체를 하나의 큰 미술작품처럼 만들 계획이다. 그는 “텍스트(대본)를 버리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나의 언어(이미지)로 찾아내는 작업이 편하다”며 “‘1,908’ 역시 야외 마당에 세워진 큰 미술품으로 생각하고, 관객이 저마다 다른 감상을 담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여 연출에게 이번 공연은 ‘공간이라는 형식을 빌려 관객을 잠시 판타지에 빠져들게 하는 작업’이다. ‘멍’ 하게 바라보다 어느 순간 ‘확’ 하고 정신 차리는, “접신(接神)같은 경험”이랄까. 그 독특한 경험이 관객에겐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까. 사람과 시간, 추억을 품은 공간의 이야기는 5월 7일 오후 2시, 14일 오후 6시 정동극장 야외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음악은 여 연출과 연극 ‘사보이 사우나’, ‘비행소년 KW4839’를 함께 작업한 정재일이 맡았다. /글·사진=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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