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치아니의 정보에 관심을 보인 국가는 또 있었는데 바로 대한민국 국세청이다. 2015년 국세청은 팔치아니가 가진 정보 중 한국인 명의계좌 20개(약 232억원)를 확인하고 과세했다.
최근 국세청이 잇따라 역외탈세 엄벌을 강조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추징 실적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아직 실제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세청이 실제 세금 추징보다 자진신고 압박용으로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세청은 지난 5일 열린 제1차 국세행정개혁위원회에서 역외탈세에 조사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국세청 고위관계자는 27일 “역외탈세 엄단을 강조하는 것은 그 자체도 의미 있지만 역외 소득·재산 자진신고를 압박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10월부터 4월 초까지 접수한 역외 소득 재산 자신신고는 국세청이 역외탈세에 대한 강경 대처를 강조한 후 3월 말 신고가 집중됐다. 신고 금액도 소득 금액 기준 5,129억원, 납부 세금만 1,538억원으로 국세청이 목표한 수준에 근접했다.
역외탈세 엄단은 국세청에 대한 국내 여론을 긍정적으로 돌리는 데도 한몫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역외탈세자는 대기업 오너 일가 등 부유층이 대부분으로 이들에 대한 조사 확대는 일반 납세자가 과세 당국에 가질 수 있는 불만을 누그러뜨린다”고 말했다. 국세청이 1월 이례적으로 대기업 오너 등의 역외탈세에 대한 고강도 조사 사실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국세청이 역외탈세 혐의를 입증하고 세금을 받아내는 데는 한계가 많다.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인이어도 해외 거주자이면 과세권은 해당 국가에 있는 현실이다. 최근 국세탐사보도언론인협회는 ‘파나마 페이퍼스’를 통한 역외탈세 혐의자 명단에 한국인 195명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 중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국세청 고위관계자는 “한국인 중 일부는 해외 거주자여서 우리에게 과세권이 없다”고 밝혔다. 국적이 한국인이어도 1년에 183일 이상 해외에 거주하면 역외탈세 혐의가 있어도 조사할 수 없다. 재산과 가족이 국내에 있다면 혐의를 두지만 역시 쉽지 않다.
스위스·벨기에·룩셈부르크 등 외국 법인에 과세 특혜가 많은 국가가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이들 나라는 자국 금융회사의 해외 고객 유치를 위해 해외 법인의 배당소득·청산소득 등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세계가 모여 만든 다국적기업 조세회피방지제도(BEPS)도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BEPS를 활용하려면 각국이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조세회피처 국가들은 미루려 하고 국내법 개정도 시간이 오래 걸려 실제 적용에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세종=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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