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컴퓨터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이 펼친 ‘세기의 대결’ 여파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알파고, 나아가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와 민간 기업들은 인공지능 분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과 전략을 쏟아내고 있다. 이미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있는 기업들은 인공지능 붐을 타고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제약 분야에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한 플랫폼을 개발 중인 스타트업 ‘스탠다임(Standigm)’도 그중 하나다. 김진한 스탠다임 대표를 만나 인공지능과 제약 분야의 결합이 미칠 파장에 대해 들어봤다.
“저는 이세돌 9단의 완승을 점쳤습니다. 5승? 진다 하더라도 한 번 정도 패할 것으로 예상했죠.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저뿐 아니라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주변 지인들도 하나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스탠다임 사무실에서 만난 김진한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경기를 화두로 던졌다. 세기의 대결이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인지 그의 표정에는 여전히 놀라움이 가득했다. 인공지능 전문가인 김 대표에게 이번 승부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그는 승패를 떠나 알파고가 가진 인공지능의 수준을 높게 평가했다. 김 대표는 말한다. “언젠가는 알파고가 프로기사를 이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점이 지금은 아니었습니다. 길게는 10년, 짧아도 2~3년은 걸린다고 예상했으니까요. 알파고의 학습능력이 이처럼 급속도로 발전했다는 게 매우 놀라웠습니다.”
김 대표는 알파고의 승리가 스탠다임에게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 말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제품·서비스의 상용화가 더욱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탠다임처럼 인공지능을 활용한 각종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의 입장에서 매우 고무적인 결과입니다. 사실 인공지능 기술은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미 존재하는 특정 분야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겠다는 계획을 일반 투자자들이나 대기업 관계자들에게 설명해도 ‘이건 불가능해’, 혹은 ‘인공지능으로 대체 무엇을 하려고?’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거든요. 그런데 알파고의 승리 후 사회 전반에 걸쳐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게 된 거죠. 인공지능의 가능성과 능력을 눈으로 봤기 때문에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기술의 필요성을 공감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김 대표의 말처럼 알파고의 승리 이후, 인공지능에 대해 높아진 관심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정부도 수년 내에 알파고를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가진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확인한 민간 기업들도 관련 연구개발을 진행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김 대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서울대학교 석사과정을 밟으며 그가 연구한 분야가 인공지능이었다. 김 대표는 말한다. “솔직히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인공지능이라는 학문 주제 자체가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대다수 인공지능 전공자들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사실 과학계에서 인공지능은 오랜 세월 동안 ‘실제적으로 쓸모없는 학문’으로 불려왔거든요.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세요. 인간이 힘들고 귀찮게 반복적으로 신경을 써가면서 처리해야 하는 것을 기계가 대신 알아서 똑똑하게 처리해 준다면, 한발 더 나아가 사람이 수행하기 힘들거나 불가능한 영역의 일을 수행하는 기계가 있다면 인간의 삶은 더욱 윤택해지지 않을까요? 이처럼 단순한 생각 하나만 갖고 인공지능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석사과정을 마친 김 대표는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인공지능 분야 박사 학위를 마쳤다. 귀국 후 그는 본격적으로 인공지능 사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이를 어떤 분야에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는 취업을 선택했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기반기술랩에 입사해 연구 활동을 이어가며 틈틈이 인공지능 관련 사업을 구상했다.
그러던 중 김 대표는 지금의 창업을 가능케 한 동료를 만나게 된다. 바로 종합기술원에서 함께 근무하던 송상옥 스탠다임 COO(Chief Operating Officer·최고운영책임자)와 윤소정 스탠다임 CIO(Chief Information Officer·최고정보책임자)였다. 당시 김 대표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시스템생물학과 딥러닝을 이용한 생체반응 시뮬레이터 개발 프로젝트를 맡았다. 생물학 전문가인 송 COO와 윤 CIO와 깊은 대화를 나누며 김 대표는 인공지능과 생물학, 전혀 다른 두 가지 학문의 조합에 매력을 느꼈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이와 관련된 사업 구상에 착수했다. 그리고 떠오른 것이 바로 생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약시장이었다.
김 대표는 말한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감기에 걸리지 않거나 배탈이 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작은 질병에도 괴롭기 마련이죠. 작은 질병도 이러한데 암, 에이즈 같은 중증 질병에 걸린 환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이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약을 먹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약이 개발되지 않은 질병도 많습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제약회사는 최대한의 역량을 가동해 각종 질병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에 힘쓰고 있죠. 하지만 시간과 투자비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저와 공동 창업자 두 사람 모두 인공지능을 신약개발, 임상시험 등에 활용한다면 분명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창업을 결심하게 됐죠.”
이후 김 대표는 두 명의 공동창업자와 함께 2015년 8월 인공지능 기반 제약기술 개발 스타트업 스탠다임을 창업하게 된다. 김진한 대표에게 스탠다임의 핵심 사업과 기술이 무엇인지 설명을 부탁했다. 김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 자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탈모 증상이 있는 분들이 복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약이 뭔지 아세요? 바로 전립선 치료제입니다. 전립선 치료제가 탈모 증세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속설 때문입니다. 실제로 몇몇 지인들의 말로는 효과가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아직 전 탈모가 없기에 확인하지는 못했죠(웃음). 그런데 아직 제약업계에서는 전립선 치료제와 탈모 억제의 상관관계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술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상관관계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비용과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개발 중인 인공지능 기반 플랫폼은 시간과 비용의 절감 효과를 제공합니다. 전립선 치료제의 탈모 억제 효과처럼 기존 약을 다른 질병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쉽게 해준다는 거죠. 또 탈모 방지용으로 개발됐지만 임상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약을 다른 질병의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스탠다임의 인공지능 기술은 일반인들의 생활을 어떻게 바꿀까? 김 대표는 말한다. “일반인들은 자신이 병에 걸렸을 때 현존하는 치료제 중 가장 좋은 약을 먼저 처방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환자의 질병을 스스로 파악해 가장 적합한 치료제를 추천해주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병원을 방문한 감기 환자가 의사에게 A라는 약을 처방받았다고 가정해봅시다. 하지만 좀처럼 차도가 없어 일주일 후 다시 병원을 방문한 환자에게 의사는 A라는 약이 효과가 없으니 B라는 약을 먹어보자고 말하죠. 이러한 과정을 겪게 되면 환자는 점점 불안해집니다. ‘과연 내가 낫기는 하는 걸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하죠. 하지만 의사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상황이라고 인식합니다. 소위 치료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시행착오’라고 본다는 거죠. 이러한 의사와 환자 간의 간극을 좁히는 데도 저희 기술이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놀라운 사실을 접할 수 있었다. 창업한 지 1년도 안 된 스탠다임이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가 진행 중인 인공지능 기술 경진대회 ‘드림 챌린지(Dream Challenge)’에서 중간 평가 결과 1등을 차지했다는 내용이었다. 스탠다임이 1등을 차지한 분야는 ‘약물 조합의 효능 예측’이다. 예를 들어 암 치료제인 A라는 약과 비타민 성분의 B라는 약을 혼합했을 때 전혀 상관없는 질병의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를 인공지능 기술로 판단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해온 약 70여 개의 국내외 연구팀과의 경쟁에서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스탠다임과 김진한 대표를 크게 고무시켰다. 그는 말한다. “첫 대회 참가에서 이러한 성과를 거뒀다는 사실이 매우 뿌듯합니다. 특히 이번 챌린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이를 기반으로 아스트라제네카를 포함한 대형 제약회사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당장의 수익보다 기술을 인정받는 것이 당면 과제인 저희로서는 매우 중요한 기회가 아닐 수 없죠.”
스탠다임은 우선 약의 기능 예측과 환자군 선별 등 최소한의 기능을 갖춘 인공지능 기반의 웹 플랫폼을 오는 5~6월 중 공개한다. 이를 기반으로 웹 플랫폼을 만든 뒤 무료로 오픈해 성능을 검증받을 계획이다. 특히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을 두는 만큼, 검증 결과를 근거로 데이터 확보와 엔진의 고도화에도 힘쓴다는 방침이다. 스탠다임의 인공지능 서비스가 자리를 잡게 되면 무료 서비스의 유료화 전환도 시도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말한다. “일단 제약시장에서 저희의 인공지능 서비스를 각인시킨 뒤 좀 더 다양한 분야로 서비스를 확장할 생각입니다. 한 번 만든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지속해서 개발한다면 제약뿐 아니라 기능성 화장품, 식품 개발, 환경 문제 등 생물학과 연관된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인터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김 대표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입을 열었다.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결코 완벽한 답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정답일 가능성이 높은 후보군을 제시하는 게 인공지능의 역할이죠.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가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일도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인간의 뇌를 넘어설 순 없다고 봅니다. 결국, 모든 결정은 오로지 인간의 몫이니까요.”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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