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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한은, 국책은행 자본확충 놓고 충돌

정부 "현물출자는 오래 걸려…발빠른 발권력 동원해야"

한은 "재정 역할 왜 떠넘기나…국민적 합의·절차 필요"





구조조정의 ‘실탄’에 해당하는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을 놓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의 자본확충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반면 한은은 이 같은 발권력 동원에 부정적인 입장을 공식으로 밝혔다. 한은까지 참여해 이 문제를 논의할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가 다음주 중 출범하지만 논의가 진척되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29일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4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 발표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해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면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발권력을 활용해 재정 역할을 대신하려면 국민적 합의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은은 윤 부총재보의 발언이 원칙적인 수준의 발언이라고 하지만 한은 안팎의 해석은 다르다.

이날 한은 노동조합도 성명을 발표했다. 한은 노조는 “국책은행이 부실해진 것은 정부 책임이다. 부실의 원인이 된 조선사도 국책은행이 대주주로 10년을 넘게 경영해왔다”며 “정부는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국채발행 등을 통해 순리대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노조는 정부에서 주장하는 특정 부문 지원은 돈을 찍어서 재정을 메꾸겠다는 것이며 이는 21세기에는 짐바브웨에서나 있었던 일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8일 “기업 구조조정을 차질없이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집도하는 국책은행의 지원 여력을 선제적으로 확충해놓을 필요가 있다”며 “무차별적인 돈 풀기 식의 양적완화가 아닌 꼭 필요한 부분에 지원이 이뤄지는 선별적 양적완화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6일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는 한국형 양적완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윤 부총재보는 재정 동원이 먼저라는 원칙론을 고수하며 두 차례나 ‘신호’를 보낸 청와대에 맞선 셈이 됐다.



실제 정부는 한은의 발권력 동원이 추경편성 등 재정투입보다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가 산은, 수은 등의 자본확충에 발권력을 동원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정부가 가진 주식을 현물로 출자하는 방식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은 높일 수 있지만, ‘실탄’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현금 출자를 하려면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거나 국채를 발행해 정부부채를 늘려야 하는데 절차가 오래 걸린다.

하지만 한은은 산은과 수은의 자본확충이 “시급하다”는 정부의 진단에도 이견을 나타냈다. 윤 부총재보는 “기업 구조조정을 포함한 구조개혁이 우리 경제의 중장기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과제라는 데는 공감하지만 (자본확충의) 시급성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설령) 아무리 시급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거치는 게 중앙은행의 기본 원칙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대신 윤 부총재보는 자본확충이 아닌 지원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항변했다. 그는 “상황 전개에 따라 정상적인 중소기업까지 신용경색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확대할 수 있고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시장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공개시장운영 형태의 대응방안은 강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은의 이 같은 발언에 적지 않게 당황하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어떤 뜻으로 한 말인지 모르겠다. 원론적으로 한 말이라 이해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코멘트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세종=이태규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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