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이 최대 악재에 직면했다. 지난 3월, 4개월 만에 한자릿수 감소 폭을 기록했던 수출 증가율은 4월 총선에 따른 조업일수 감소에다 글로벌 경기 부진, 저유가 등 복합요인에 직격탄을 맞아 한 달 만에 마이너스 두자릿수를 나타내며 뒷걸음질쳤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재무부가 우리나라를 환율조작 관련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지목함에 따라 원화 가치의 상승도 예상돼 가뜩이나 어려운 수출 전선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막대한 가계부채와 고령화 등의 요인으로 내수 회복세가 공고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의 한 축인 수출마저 턴어라운드를 모색하지 못하면서 우리 경제가 장기 추락국면에 휩싸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전’ 없는 수출 드라마=결국 반전은 없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4월 수출액이 410억달러로 1년 전보다 11.2% 줄어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1일 밝혔다. 지난 1월 6년 5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인 -18.9%를 기록한 뒤 감소 폭을 줄여나가던 수출이 다시 마이너스 폭을 확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월간 기준 최장기간 수출 감소 기록도 16개월로 늘어났다. 수입액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9% 줄어든 322억달러로 파악됐다. 무역수지 흑자는 88억달러로 2012년 2월 이후 51개월째 흑자행진을 이어갔다.
수출 가뭄의 주된 원인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저유가 등 대외악재에 있었다. 두바이유 기준 4월 국제유가 평균은 38.99달러로 전년 동월의 57.72달러 대비 32.4% 추락했다. 저유가는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목인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 단가에 영향을 미쳐 전체적인 수출액 감소를 가져왔다. 지난달 석유제품과 석유화학 부문의 수출단가는 1년 전보다 각각 34.9%, 6.6% 하락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4개월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였던 선박(25.2%)이 플러스로 반등했고 갤럭시S7·G5의 선전에 힘입어 무선통신기기(3.2%)가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지만 수출 전반에 드리운 먹구름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인 대(對)중국 수출 증감률은 경제성장 둔화와 내수 중심 성장전략 변화 등 수요가 둔화되면서 -18.4%로 감소 폭이 커졌고 원자재 가격 하락에 직격탄을 맞은 중남미 수출도 무려 -40%까지 하락 폭이 확대됐다. 조업일수가 1.5일 줄어든 것도 수출을 끌어내렸다. 일 평균 실적으로 보면 4월 실적(19억2,000만 달러)은 5개월 만에 최대다.
◇‘원화 강세’ 겹치면 장기 추락 우려=문제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저유가라는 악재 외에도 미국 재무부라는 돌발변수 추가됐다는 점이다. 미 재무부는 환율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하고 외환정책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환 당국의 개입을 통해 원화절상을 유도하지 말고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 강세)을 용인하라는 압박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달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47원으로 전년 1,088원 대비 5.4% 올랐다. 그러나 수출 증가율이 1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는 만큼 ‘환율 상승(원화 값 하락)→수출 증가’ 공식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만약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에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미국 보고서에 대해 외환 당국은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된다”며 “(환율) 급변동 시 시장안정조치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며 정책대응이 달라질 것은 없다고 못 박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번 미국의 조치로 우리나라 외환 당국의 운신 폭이 더욱 줄어들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중국은 위안화 절하를 단행하고 있고 일본은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해 환율 상승을 유도하고 있다”며 “환율전쟁에서 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원화 절상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