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성장의 ‘바로미터’인 수출이 삐걱거리고 있다. 지난 4월 수출금액은 410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2%나 줄었다. 1월 19.0%나 줄어들었던 수출은 2월 -13.0%, 3월 -8.1%를 기록하는 등 1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사상 최장의 마이너스 수출 성적표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에 집중된 수출시장을 아세안과 인도·중동·중남미 등으로 다변화해 외부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지대(buffer zone·버퍼존)’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장은 “미국과 유럽연합(EU)에 대해서는 기술력을 높여야 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소비재 수출을 강화하는 등 세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며 “특히 미국이 환율정책을 앞세워 통상압박을 해올 가능성이 큰 만큼 미국과 중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신흥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주요2개국(G2)의 경제상황이 단기간에 반전되기를 기대하기 힘든 만큼 신흥시장에 대한 판로 확대와 함께 기존 주력시장에 대한 세분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수출 패러다임을 리셋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암초에 걸린 미국·중국 수출=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4주년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3.2%로 2000년(3.31%) 이후 15년 만에 최고를 경신했다. FTA 수혜품목 중에서는 전기전자(12.5%)와 기계(12.4%), 고무(11.3%), 농수산식품(12.9%) 산업이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며 수출을 주도했다. 외견상으로는 호조세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미국이 우리 정부를 겨냥해 “대미 흑자를 줄이라”는 메시지를 공공연하게 보내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주요 교역국의 환율정책 보고서’를 통해 한국을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지정하는 강수를 뒀다.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는 258억달러,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 비율은 7.7%에 달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대미 무역흑자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우리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윤재 숭실대 교수는 “미 재무부가 보고서를 통해 원화 가치를 더 올리라는 주문을 한 만큼 우리 기업들의 대미 수출여건이 나빠질 우려가 있다”며 “수출 시장 다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출 텃밭’이었던 중국 시장도 심상찮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서 4월 대중국 수출은 18.4% 감소했다. 3월(-12.3%)보다 더 나빠졌다. 전체 수출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26.0%로 1·4분기(24.7%)보다 1.3%포인트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중국 시장의 경우 수출품목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국의 중간재 수입 비중은 지난 10년 동안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는 반면 소비재 수입 비중은 같은 기간 10%에 가까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중국이 경제체질 개선의 일환으로 소비 및 서비스 중심으로 무역구조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 비중은 77.6%에 달해 무역 트렌드에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소기업 진출 적합한 신흥시장 개척해야=통상 전문가들은 성장 잠재력이 높고 중소기업이 진출하기에 적합한 아세안과 중남미·인도·중동 등 신흥시장으로 해외진출 사업을 확대하고 정책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중국(25.7%)과 미국(13.2%)의 수출 비중이 39%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들 두 나라 경제가 비틀거리면 우리 경제는 메가톤급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경제사절단이 개척한 해외시장에 대해 중소기업청 등 관련 부처가 협업체제를 구축해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세안은 브릭스(BRICs)를 대체하는 신흥투자처로 중국을 잇는 제조업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에 대한 수출 규모는 올 1월 51억달러에서 4월 70억달러로 되레 늘었다.
12억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는 강력한 제조업 부흥정책을 내걸며 경제발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해제된 이란 등 중동은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내 중소기업이 진출하기에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 출범한 중남미 신흥국 경제공동체인 태평양동맹은 적극적 개방정책을 전개하며 빠른 성장을 구가하고 있고 특히 멕시코는 미국과의 접근성을 활용해 제조업 생산기지로 변모하고 있다.
중기청도 이 같은 수출환경 변화를 반영해 패러다임을 꼼꼼하게 손질하고 있다. 주영섭 중기청장은 “수출확대 정책의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전환해 중소·중견기업을 무역 한국의 주역으로 육성시킬 것”이라며 “올해 중소·중견 수출기업 수를 5,000개 이상 늘리고 수출액도 2,000억달러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중기청은 △민간주도의 수출정책 수립 △저변 확대에서 벗어나 성과 창출 △연구개발·마케팅 등 정책수단을 수출과 연계 △시장과 품목 다변화 △온·오프라인 균형성장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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