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이어져 온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디자인 경영’이 현대차의 색깔을 바꾸고 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판매 방식을 서슴없이 자동차에 접목하고 기술 제휴가 필요한 스타트업을 직접 방문해 대화를 나누는 등 장벽을 허물고 부쩍 젊어진 모습이다.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정의선 부회장의 ‘디자인 경영’은 단순히 차량 디자인을 감각적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회사 전체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 2006년 기아자동차 수장에 오른 정의선 당시 사장은 위기에 빠진 기아차를 살리기 위해 ‘디자인 경영’을 화두로 제시했다. ‘디자인 경영’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순혈주의 타파다. 굳게 잠겼던 회사 빗장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였던 피터 슈라이어를 삼고초려 끝에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정 부회장은 “차량 라인업의 디자인을 업그레이드시키고 감성적 디자인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세계 무대에서 기아차의 경쟁력을 향상하겠다”며 국내 자동차 업체 최초로 ‘패밀리 룩’을 선보였다. 디자인을 탈바꿈한 기아차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고 현대차와 맞먹는 글로벌 완성차업체로 성장했다. 회사 안팎에서는 정 부회장의 ‘디자인 경영’이 적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현대차로 적을 옮긴 정 부회장은 최근 연이어 자신만의 색깔을 과시하며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진다.
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정의선 부회장은 오는 12일 연구소 임원을 총소집해 개발보고회를 연다. 앞으로 출시될 신차에 대해 점검하는 자리다. 평소 애플 워치를 착용하는 등 얼리어답터로 알려진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주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내수시장은 물론 해외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쇳물부터 자동차까지 만들겠다’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달리 정 부회장은 회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연이어 타업종을 벤치마킹하거나 협업을 시도하는 횟수도 늘고 있다.
지난달에는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와 손잡고 ‘커넥티드카’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달리는 자동차를 고성능 컴퓨터로 탈바꿈하기 위해 관련 분야의 최고 기업과 손을 맞잡은 것이다. 이를 위해 정 부회장은 직접 실리콘밸리를 찾아 물밑 작업을 펼쳤다.
기술 개발을 위해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신생 스타트업에도 손을 내민다. 커넥티드카 관련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최근 현대차에서 공동 기술 개발을 의뢰해왔다”며 “과거 알던 현대차와 많이 달라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스마트카 사업을 안정화하기 위해 ‘차량지능화사업부’를 신설하고 삼성전자 출신 황승호 부사장을 책임자로 선임하는 등 인재 영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 출신 외에도 순혈주의 파괴를 외친 지 10년이 흐른 현재 현대차 안에는 ‘N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영입한 BMW의 고성능 M 시리즈의 개발 총괄 책임자 출신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 벤틀리와 람보르기니를 디자인한 루크 동커볼케 디자인센터장, 람보르기니 브랜드 총괄을 담당했던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제네시스 전략 담당 전무 등 해외 인재가 대거 포진해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피터 슈라이어 영입 이후 N시리즈, 제네시스 브랜드, 커넥티드카 등 회사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위해 관련 전문가를 물색해 영입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서비스센터를 직접 방문해 직원들을 독려하는 등 스킨십도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영업 및 서비스 현장을 늘 수시로 둘러본다”고 밝혔다. 판매 강화를 위해 지난 2일에는 삼성전자가 처음 도입한 기기변경 제도를 차량 판매에 도입하며 기존 틀에서 벗어난 전략도 쏟아내고 있다. /박재원기자 wonderfu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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