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는 돌고 돈다. 복고 패션이 최근 들어 다시 유행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IT 트렌드는 패션과 다르다. 과거의 트렌드가 미래에 다시 유행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 더 진일보한 기술과 서비스가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션과 IT의 만남은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문인석 멋집(MutZip) 대표는 동대문과 홍대, 압구정 등 패션트렌드 핫 플레이스의 부흥을 이끈 1세대 인디 디자이너다. 그리고 이제 패션과 IT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포춘코리아가 문 대표를 만나 그의 비즈니스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꼭 좀 반영해주세요.” 기자를 만난 문인석 대표가 던진 첫 마디다. 무슨 부탁일지 궁금했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는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이 문인석이잖아요. 제 이름 대신 ‘문군’이라고 언급해주세요. 전 그게 편합니다. (웃음)”
통상 기사에는 예명보단 본명을 쓴다. 그러나 문 대표가 원한 자신의 이름은 문인석이 아닌 ‘문군’이었다. 통상적으로 젊은 남성의 성이 문 씨일 때 우리는 ‘문 군’이라고 말한다. 문 대표는 말한다. “문군은 저의 상징입니다. 문군이라는 브랜드로 패션시장에 진입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고, 또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었으니까요. 사실 문군으로 개명을 할까 생각도 했었어요. 일단 제 이름 대신 문군으로 표기 부탁드리겠습니다.”
문인석 대표, 아니 문군의 사업 과정은 그야말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1세대 인디 디자이너로 출발해 패션업계에서 성공신화를 썼지만, 한순간에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그리고 다시 재기해 확고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했고, 이를 기반으로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사실 문군이라는 이름은 패션에 관심이 많은 30~40대에겐 결코 낯설지 않은 브랜드다. 그만큼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패션을 잘 모르는 사람 중에도 어렴풋이 문군이라는 브랜드가 있었음을 기억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문군은 말한다. “지난 1998년 동대문 패션상가에 ‘문군 네’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매장을 열었습니다. 자본이 없어 하루 2만5,000원 일세(日貰)를 내고 오픈한 매장이었죠. 제가 1세대 인디 디자이너로 불리긴 하지만, 당시 저에겐 디자인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디어만 있었을 뿐이었죠. 옷을 제작하는 방식도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가 멋대로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국내 패션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는 점입니다.”
돌풍을 일으켰다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패션에 별로 관심이 없는 기자도 분명 알고 있을 내용일 거라고 내심 자신만만했다. 과연 무엇이었을까? ‘문군’이 말을 이어갔다. “제가 ‘문군 네’에서 판매했던 옷은 대부분 보세옷이었습니다. 특히 수입 니트가 많았죠. 당시 국내에서 생산되는 니트보단 수입 니트가 재봉도 꼼꼼했고 실의 품질도 좋았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거래처에서 수입 니트 한 벌을 받아 가게로 왔어요.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죠. ‘이 니트를 리폼(Reform)해서 뭔가를 만들어 볼 순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다 불현 듯 떠오른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발 토시’였어요. 일본 영화와 쇼 프로그램에서 여성들이 발 토시 하고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니트를 활용해 발 토시 만들어보자고 마음 먹었죠. 그리고 그게 소위 대박을 친 거예요.”
발 토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독자들은, 대형마트에서 제품 홍보를 하는 여성 나레이터 모델을 생각하면 금방 떠올릴 수 있다. 대다수 나레이터 모델들은 무릎 아래로 조금은 헐렁해 보이는 긴 양말 모양의 무언가를 신고 있다. 그게 바로 발 토시다.
‘문군’이 내놓은 발 토시는 패션업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방송에 등장하는 여성 아이돌 가수 대다수가 발 토시를 착용할 정도였다. 길거리는 짧은 치마와 발 토시를 착용한 여성들로 넘쳐났다. 문군을 향한 러브콜도 쏟아졌다. 방송 출연 섭외가 이어졌고, 패션과 관련된 모든 언론기사에 ‘문군’이라는 두 글자가 연일 오르내렸다.
그는 이 여세를 몰아 사업 확장에 나섰다. 문군 네 매장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전성기에는 월 매출 3억 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잘 나갔던 문군은 그때부터 고민에 빠졌다고 말한다. 무엇이 고민이었을까? 그는 말한다. “사업이란 게 결코 쉽지 않더라고요. 방송에 출연하고 언론 노출이 잦아지면서도 문군이라는 브랜드가 일반 소비자들에게 더욱 각인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희 브랜드는 인디 패션을 지향했거든요. 일반적인 소비자들이 입기에는 다소 난해했어요.
제가 문군이라는 브랜드로 만든 옷을 처음 패션쇼 무대에 올렸을 때 저희 주제가 뭐였는지 아세요? ‘샤머니즘’이었어요. 이 말만 들어도 어떤 느낌이었는지 아시겠죠?(웃음) 문제는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보니 사업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거였어요. 매장이 하나였다면 상관없었겠죠. 하지만 당시 문군 네 가게는 전국에 약 30여 개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제가 데리고 있는 직원들의 생계는 내팽개치고 제 살길만 찾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든 외부 일정을 접고 오롯이 사업에 집중하기로 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그 같은 결심을 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수년간 옷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옷감 수급부터 유통망까지 모든 것을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마침 홍콩에서 알고 지낸 바이어가 중국 시장에서 사업을 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문군은 과감히 ‘문군 네’ 사업을 접고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001년 시작한 중국 사업도 성공 가도를 달렸다. 한때 중국 현지에 20곳이 넘는 매장을 열 정도로 번창했다. 패션에 별 관심을 두지 않던 중국 현지인들도 문군 브랜드에 열광했다. 현지 패션업계에서 ‘한국에서 온 ‘문군’이 중국의 패션 붐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잘 나가던 문군의 중국 사업도 2008년경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를 피해갈 순 없었다. 결국 중국 시장 진출 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문군은 국내 개성파 디자이너들의 옷을 떼어와 판매하는 ‘편집숍’을 오픈하고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그렇게 심기일전해 시작한 문군의 편집숍 사업은 순항을 거듭했다. 특히 그가 처음 편집숍을 연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매장이 패션 피플들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코엑스몰에 잇달아 매장을 열며 승승장구했다. 지금도 문군의 편집숍은 패션 마니아들의 아지트로 각광 받고 있다.
하지만 문군의 욕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사업 아이템을 현실화시키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바로 패션과 IT의 조합이었다. 문군은 말한다. “처음 창업을 결심했을 때, 저는 두 가지 시장을 놓고 고민했습니다. 바로 패션과 IT였죠. 패션은 전통산업으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분야였고, 반면 IT는 트렌드에 민감한 떠오르는 시장이었죠. 패션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 더 컸기에 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IT 분야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봤습니다.”
그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분야는 다름 아닌 광고홍보였다. 사실 문군의 꿈은 방송국 PD였다. 대학시절부터 PD에 대한 꿈을 갖고 소위 ‘언론고시’를 준비했지만, 번번이 낙방의 쓴맛을 봤다. 결국 그는 차선책으로 대기업 계열의 광고홍보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문군이 지원한 분야는 동영상 광고를 제작하는 PD 분야였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PD와는 전혀 무관한 AE(Account Executive)였다. 그는 AE 업무를 담당하며 운명처럼 패션업계와 처음 대면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군은 패션이라는 시장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어릴 적부터 꾸미는 것을 좋아했던 문군에게 패션은 맞춤옷과 다를 바 없는 분야였다.
문군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패션업체의 AE로 일하며 패션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광고홍보회사에서 일했던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국내 패션시장은 몇몇 대기업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그러나 당시 저에겐 작은 기업도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이 분명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턴 소위 벤처붐이란 것도 일기 시작했고요. 저도 이 열풍을 타고 ‘패션벤처’를 만들어 보고 싶어졌죠. 그래서 입사 1년 반 만에 과감히 사표를 내고 창업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문군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잇달아 네이버, 다음, 엠파스 등 벤처 기업으로 둥지를 옮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꿈을 실현하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 자신은 패션업계에 뛰어들었지만,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IT시장에 대한 끈도 놓지 않았다.
문군은 지난 2014년 패션과 IT의 결합이라는 자신의 꿈을 현실로 옮길 스타트업 ‘멋집’ 을 창업했다. 멋집의 핵심 서비스는 개성 있는 옷을 제작하는 디자이너 홀셀러(Wholeseller)와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옷을 원하는 옷가게, 즉 리테일러(Retailer)를 연결해주는 온디맨드(On-Demand)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핫소스’다. 기자는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그러자 문군이 설명을 이어갔다. “쉽게 말해 역량은 갖추고 있지만 판매처를 찾지 못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옷가게를 연결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옷가게들 역시 개성 있는 디자인의 옷을 팔 수 있기 때문에 경쟁 가게와 차별화할 수 있게 되죠. 특히 옷가게 사장들은 앱에 올라온 디자이너의 제품을 보고 주문할 수 있어 발품을 파는 수고를 덜 수 있어요. 디자이너들 역시 한 번의 클릭으로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더 많은 거래처에 선보일 수 있고요. 양쪽 모두 시간과 수고를 아낄 수 있는 편리한 서비스입니다.”
현재까지 ‘핫소스’에는 600개 홀셀러가 입주한 상태다. 문군은 향후 더 많은 홀셀러와 리테일러를 입주시켜 글로벌시장까지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문군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원하는 디자인의 옷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글로벌 패션 소싱 플랫폼으로 키울 것”이라며 “숙박에 에어비엔비, 택시에 우버가 있다면 패션에는 핫소스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 문군이 기자의 팔을 잡아끌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문군은 광고홍보맨으로 시작해 옷가게 사장, 패션 디자이너, 패션벤처 CEO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후배 창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단 한 번도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사업을 시작해 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게 처음이었죠. 그랬기에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요즘 제 주변의 후배들이 ‘확실한 아이디어가 있으니 창업하면 대박이 날 것 같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합니다. 저는 무조건 말려요. 먼저 시작한다고 해서 꼭 먼저 성공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철저하게 준비하고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업을 시작해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지, 사업이 잘 안 되면 어떻게 이를 돌파하고 해결할 것인지를 미리 머릿속에 그려놓고 창업에 도전하길 바랍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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