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브랜드 삼성전자가 세계 주요 시장의 현지화 전략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역량과 조직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철저히 시장을 분석하고 현지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있다. 그 결과 현지인들의 기호에 맞는 혁신적인 제품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우수한 아이디어와 제품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소비자들의 호평을 다각도로 이끌어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4년 연속 베스트 코리아 브랜드(BKB)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전 세계 톱 브랜드 중에서도 선두그룹에 올라 있는 글로벌 강자다. 인터브랜드가 전 세계 100대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는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BGB)’에서도 지난해 7위에 오른 바 있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84개국에 생산법인, 판매법인, 디자인센터, 연구소 등 210여 개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해외 임직원 숫자만 무려 32만 명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지역별 매출 비중은 미주 지역 33%, 유럽(CIS 포함) 21%, 아시아·아프리카 20%, 중국 16%, 한국 10% 순이다.
삼성전자는 이처럼 방대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운영·관리하기 위해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해외에 생산기지를 세운 뒤 현지 임직원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기술을 전수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내는 식이다. 외주 업체에 제품 생산을 맡기는 다른 해외 업체들의 일반적인 행보와는 다소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진출 통한 ‘현지화 전략’
삼성전자는 지금도 ‘현지화 전략’을 통해 해외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특히 모바일 제품 생산기지로 베트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하노이시 동쪽 박닌성에 제 1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북쪽 타이응우옌성에는 2공장을 짓고 이를 복합단지로 조성했다. 삼성전자와 협력업체가 고용한 베트남 인이 12만 명 이상일 정도로 많은 현지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이들은 삼성전자가 전세계로 수출하는 스마트폰, 태블릿, 카메라, 청소기, PC 등을 생산하고 있다.
그 밖에도 삼성전자는 베트남 하노이에 소프트웨어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1,200여 명에 이르는 연구인력을 고용해 동남아 지역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와 앱을 개발 중이다. 현지 기업들이 부품 제조 분야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 및 기술이전, 업무 환경 개선 등도 지원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와 현지 기업 20여 곳, 삼성전자의 1·2차 협력사들이 함께 부품산업 관련 세미나도 열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지 연구개발을 해야 하는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 동안 국내 제조업계는 주요 기술의 해외 유출을 우려해 생산 기능만 현지화 하는 방식을 취해 왔지만, 최근에는 경쟁이 심화 되고 있어 현지 시장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기능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전자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화 전략을 통해 다시 승부수를 던질 채비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장에 내놓을 새로운 보급형 스마트폰 ‘갤럭시C’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5월 중국에서 공개될 것으로 보이는 이 제품은 삼성전자가 중국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기 위해 만든 ‘전략폰’이라 알려져있다.
삼성전자가 중국이라는 특정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새 보급형 라인업을 갖춘 건 그만큼 현지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저가 정책을 펼치는 샤오미, 화웨이 같은 현지업체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1년부터 중국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해 오다가 지난해 5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C를 출시해 본격적으로 저가 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샤오미의 최신 스마트폰 ‘미5’ 의 최저가격이 1,999위안(약 36만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갤럭시C’의 가격도 1,000~2,000위안(약 18만~36만 원)대에서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제품 생산에 이어 부품 조달도 현지화를 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외 생산 제품의 현지화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예로 러시아를 꼽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서남부에 위치한 칼루가 공장에서 드럼세탁기를 생산하고 있다. 세탁기 외관 금속판, 고무마개 등 부품을 러시아 현지에서 조달해 드럼세탁기 생산에 쓰고 있다(드럼세탁기 부품의 러시아 현지 조달률은 50%를 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부터는 배수펌프, 호스, 볼 베어링, 경첩까지 현지 조달 부품 종류를 늘릴 계획이다. 현지 부품업계가 이 계획에 맞춰 이미 스테인리스 금속을 비롯한 원자재 확보에 나섰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삼성전자가 부품의 현지 조달을 늘리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비용 절감 때문이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들여오는 것보다 물류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또 환율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현지 시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한발 더 나아가 “현지 산업계를 지원하고 고용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메이드 인 러시아(Made in Russia)’ 마케팅 요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니즈 먼저 읽는 ‘시장 대응력’
삼성전자는 현재 세계 7개 도시에서 생활가전 혁신 조직 ‘라이프스타일 연구소(LRL)’와 ‘프로젝트 이노베이션팀(PIT)’을 운영하고 있다. 두 조직은 애벌빨래 기능을 탑재한 전자동세탁기 ‘액티브워시’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삼성전자는 두 조직을 활용해 매년 국제 전자 제품 박람회(CES)와 세계 가전 전시회(IFA) 등에서 기술이 바꿔놓을 미래 생활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 조직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까? LRL은 개인의 의식주휴(衣食住休) 생활 전반을 연구해 현지 소비자 생활상과 문화를 분석하는 일을 한다. 일상의 작은 행동에서 혁신적인 제품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그리고 PIT는 이를 구체화한다.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하는 걸 목표로 한다. PIT는 현재 시장에 출시된 제품의 교체주기와 관계없이 1.5~2년 앞선 제품 콘셉트를 연구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단순히 기능을 추가하는 수준이 아닌 ‘게임의 룰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제품과 솔루션에 혁신을 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원래 PIT는 실험적 조직이었다. 2007년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새너제이에 처음 설립됐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 런던, 델리, 베이징, 싱가포르, 상파울루에서도 글로벌 소비자들의 행동 양식에 초점을 맞춘 혁신적인 제품을 연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LRL와 PIT에 디자인연구소까지 연계해 혁신을 위한 복합 연구개발 시스템을 만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액티브워시 세탁기는 PIT가 인도 지역 소비자를 관찰해 개발한 세계적인 히트작이다. 빨래판이 달린 세탁조 커버와 전용 급수 시스템을 적용해 애벌빨래부터 본세탁까지 한 번에 끝낼 수 있게 만든 전략상품이다. 삼성전자는 이 제품의 개발 초기부터 신성장 지역에 특화된 ‘차별화’를 강조했다. 그에 따라 생활가전사업부 선행상품기획그룹과 인도 현지 팀의 연계가 강화됐다. PIT는 인도 내 14가구를 선정한 뒤, 각 가정에서 이뤄지는 세탁과 관련된 다양한 행동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분석해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들은 그 과정에서 인도 소비자들이 세탁기 앞에서 소매나 옷깃을 애벌빨래하거나 세탁기에 쉽게 넣어서는 안 되는 섬세 의류를 별도로 욕실에서 손빨래하는 것을 포착했다. 이 같은 세탁 행동은 삼성전자 연구팀이 방문한 인도 모든 가정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연구진은 세탁기가 애벌빨래나 섬세 의류 손빨래를 완벽하게 구현해내지 못한다면, 소비자가 편리하게 손빨래를 할 수 있는 공간과 도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소비자의 생활을 한층 편리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수차례 아이디어 연구를 진행한 끝에 애벌빨래부터 본세탁까지 한 번에 해결되는 액티브워시 세탁기가 탄생했다. 그리고 액티브워시 세탁기의 현지 소비자 중심 아이디어는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4월 인도시장에 출시된 뒤, 삼성전자의 전자동세탁기 부문 매출을 전년 동기대비 약 32% 끌어올리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글로벌 판매량 200만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PIT는 액티브워시 세탁기 외에도 그동안 북미용 4도어 프렌치 냉장고, 듀얼뷰 카메라, 유럽형 스마트TV 인터페이스, 중국시장용 백라이트 키보드 노트북 등 현지화 제품 콘셉트를 수차례 발굴해왔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LRL과 PIT는 2016년도 삼성전자 조직개편에서 기능이 확대됐다. 중국에 신설되는 상품전략센터는 베이징 LRL·PIT와의 협업을 통해 중국 소비자 생활상을 반영한 상품기획과 개발을 수직계열화할 예정이다. 인도 델리 조직은 기능을 보강해 ‘제2의 액티브워시 세탁기’ 개발에 나선다. 그 외에도 신흥시장에서 현지 상품기획·개발조직을 강화해 글로벌 역량을 키울 생각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소비자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며 “삼성전자는 LRL와 PIT, 디자인연구소 같은 다양한 조직을 통해 소비자 니즈를 파악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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