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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숨 쉬는 미래의 공항







공항은 한 도시, 더 나아가 한 국가의 얼굴이다. 방문객들이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에 공항들은 더 즐겁고, 쾌적하며, 편안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진화의 중심에는 항상 과학기술이 있었다.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의 시대를 맞아 과학기술이 바꿔놓을 미래의 공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세계 최초의 공항은 1909년 라이트형제가 미 세 공군장교들의 비행훈련을 위해 건설한 ‘칼리지 파크 공항’이다.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 공항은 4만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국제공항만 1,200여개에 이른다. 이용객 역시 폭발적 증가가 나타났다. 국제민간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지난해 항공기 탑승객수는 35억명에 달한다. 배웅객을 제외해도 최소 35억명이 공항을 이용했다는 얘기다. 오는 2034년에는 그 숫자가 70억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공항을 거쳐 세계 각지로 이동하는 물류량도 2014년 기준 하루 14만톤, 연간 5,100만톤을 넘어섰다.

기술과의 아름다운 동행
항공기 탑승을 위한 대기 장소 정도에 머물렀던 공항은 이렇듯 한 세기를 거치며 세계를 이어주는 관문이자 항공운송 산업의 허브로 환골탈태했다. 공항의 이 같은 진화는 기본적으로 과학기술과 궤를 같이 한다. 오늘날의 공항이 제공하는 편의성과 신속성, 안전성, 효율성은 과학기술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1930년 미국 클리블랜드 홉킨스 국제공항에 처음 도입돼 항공기 이착륙의 안전성을 대폭 높여놓은 활주로 조명은 고광도 전구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화했다.

초기에는 천연가스 발전기로 5,000와트(W)의 전구들을 밝혔지만 스트로보 전구와 할로겐램프 등을 거쳐 최근에는 고효율 LED로의 대체가 본격화되고 있다. 또 1960년대 산업용 금속탐지기의 상용화는 공항 보안시스템 강화로 이어졌다. 1969년 미국 이스턴항공이 처음으로 승객과 화물의 검사에 금속탐지기를 이용했고, 1976년 쿠바항공 455편 시한폭탄 테러를 기점으로 금속탐지기와 X-레이 투시장치를 구비한 보안검색대가 전 세계 공항에 속속 세워졌다. 1990년대에 개발된 무빙워크의 첫 시범운용 무대도 호주 브리즈번 공항이었다.

특히 퍼스널 컴퓨터(PC)와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20세기 정보기술(IT) 혁명은 공항의 모습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았다. 항공관제와 출입국 수속, 발권, 수화물 관리, 보안 등 전 분야에서 자동화, 전산화, 정밀화, 네트워크화가 이뤄졌다. 이용객들이 가장 피부로 느꼈던 변화는 아마도 전자항공권의 도입일 것이다. 1994년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이 시범발행한지 14년 만인 2008년 6월, 종이티켓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로써 글로벌 항공업계는 연간 최대 30억 달러의 비용 절감을, 고객들은 항공권 분실·훼손의 우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차세대 공항의 화두 ‘패스트 트레블’
기술의 발전이 멈추지 않듯 공항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기술 파트너의 이름이 IT에서 ICT로 바뀌었을 뿐이다. ICT는 기본적으로 학문적 경계를 넘나드는 융복합이란 무기로 중무장한 녀석이라 공항에 접목되는 기술의 혁신성과 파급력은 더욱 향상됐다.

현재 전 세계 주요 공항들의 최대 화두는 ‘패스트 트레블(Fast Travel)’이다. 출입국 심사, 탑승권 발권 등 기존의 대면(對面) 업무를 무인 자동화기기를 통해 이용객 스스로 처리토록 하는 것이 핵심 골자다. 승객들의 공항 내 대기시간을 줄여 신속하고 편리한 이용을 가능케 하는 동시에 공항은 비용절감과 여객 수용능력 증진이 가능한 윈-윈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패스트 트레블의 등장은 신규 공항 건설의 한계에 기인한다. 부지 확보 등의 문제로 인해 이용객 증가에 맞춰 충분한 숫자의 신규 공항 건설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인화를 이뤄 기존 공항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IATA가 표방하는 패스트 트레블은 탑승수속(체크인), 수하물 위탁, 여행서류심사, 리부킹(예약 변경), 항공기 탑승, 수하물 회수의 자율화로 구성된다. 2020년까지 이 6가지 업무의 자율화 80%를 달성함으로써 연간 21억3,600만 달러(약 2조4,800억원)의 비용절감을 꾀한다는 게 IATA의 목표다.



국내에도 이미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 김해공항, 제주공항 등에 무인 자동출입국 심사대와 자동 탑승권(보딩패스) 발권기, 자동수화물 위탁기기가 설치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키오스크 형태의 이 기기들을 활용하면 이용객 스스로 좌석 배정부터 발권, 수하물 위탁을 처리할 수 있어 공항 도착 후 항공기 탑승까지의 시간이 대폭 단축된다. 덧붙여 자동 예약변경 및 모바일 탑승권 발권서비스를 운용하는 국내 공항과 항공사도 계속 늘고 있다.



도시로서의 공항
자동화, 무인화의 바람은 IATA의 6대 과제에 머물지 않는다. 예컨대 런던의 개트윅국제공항은 청사 내에 비컨을 설치, 이용객이 휴대한 스마트폰으로 위치와 신원을 파악한 뒤 탑승 게이트까지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또 독일 뒤셀도르프 국제공항의 주차장에는 ‘레이(RAY)’라는 주차로봇이 이용객 대신 귀찮은 주차를 처리하고 있다. 지정장소에 차량을 세우고 떠나면 레이가 빈자리를 찾아 주차해놓는다. 이용료가 하루 29유로로 비싼 편이지만 돈보다 시간이 더 귀한 출장객과 여행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외에도 이동식 체크인 카운터, 전자여권과 연계한 안면인식 모바일 탑승권, 주차대행 예약 어플 등 패스트 트레블의 구현을 위한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의 개발이 진행 중이다.

패스트 트레블이 차세대 공항의 모습이라면 미래의 공항은 어떻게 진화하게 될까.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궁극의 지향점은 여행과 물류에 더해 레저와 쇼핑, 관광, 마이스 (MICE)를 아우른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공항 내부 또는 지근거리에 쇼핑센터와 숙박시설, 컨벤션센터, 카지노, 영화관 등 대규모 복합시설을 조성함으로써 이용객 추가 유치와 경제·산업적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복안이라 할 수 있다. 국내만 해도 인천국제공항이 오는 2020년까지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인천공항국제업무지구에 최고급 숙박시설과 카지노, 테마파크, 워터파크, 아쿠아리움 등이 들어선 복합리조트를 개발할 계획이다. 제주 제2공항 건설예정지 일대에도 카지노, 쇼핑센터, 마이스 등의 시설을 갖춘 공항복합도시 ‘에어시티’의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결국 미래의 공항은 도시로 가기 위한 관문이 아닌 도시 그 자체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머지않아 우리는 여행을 함께한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내뱉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공항에서 하루 더 머물까?”

5,800만명
2014년 현재 민간항공 업계 종사자. 이들이 글로벌 경제활동에 기여하는 가치는 2조4,000억 달러에 이른다. 2034년에 이르면 그 수치가 1억500만명, 6조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마이스 (MICE) - 기업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s), 컨벤션(Convention), 전시(Exhibition).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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