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을 이끌며 무에서 유를 창출한 국내 대기업들은 여전히 우리 경제를 굳건히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경제적 측면에서는 이들의 성장이 국내 고용 증가로 이어지고 있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의 국내 생산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반면 지난해 대기업의 해외 투자는 220억달러로 10년 전에 비해 5배나 증가했다.
이는 과거처럼 대기업 성장으로 인한 ‘낙수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고 이제는 우리 경제가 중소·중견기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라는 방증이다.
이미 중소·중견기업은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 기업 수에서 99%, 종사자 수에서 88%, 생산 및 부가가치에서 50%를 넘어섰고 수출액 비중도 지난해 36%, 올해 38%로 매년 급증해 오는 2020년쯤에는 5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만 보더라도 대기업의 수출 부진에도 우리나라의 세계 수출 순위가 6위로 한 계단 상승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약진 덕분이다.
중소기업의 국내 일자리 기여도는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간 대기업의 고용이 32만명에 그친 반면 중소기업의 고용 증가는 195만명으로 전체 고용 증가의 89.5%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경제 구조가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정책 방향도 시대적 상황에 맞춰 변해야만 한다. 1970~1980년대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 전략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면 이제는 중소·중견기업을 경제의 주역으로 키워야 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이자 최선의 선택이다.
우선 정부의 정책 방향이 단순 지원에서 육성으로 변해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은 과거 대기업 중심 경제에서는 약자이고 조연이었지만 이제는 주역이 되고 있다. 주역에게 필요한 것은 배려와 보호가 아니다. 우리 경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이 좁은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고 지속적인 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제는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능력을 길러줘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소·중견기업 육성 정책은 민간의 시장·기술 전문성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연구개발(R&D), 마케팅, 금융, 인력, 법·제도 등 정책 수단을 연계하는 성과 창출 중심의 패러다임 혁신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책을 민간과 시장 중심으로 기획·운영하는 한편 육성 대상 기업의 선정과 평가에도 민간의 전문성을 십분 활용함으로써 정책에도 효율성과 적시성을 담아내야 한다.
아울러 우수 인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조기에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대학·출연연구원·기술전문기업 등 산업 생태계와의 R&D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들이 독자적 역량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량이 내재된 산업 생태계와의 협업에서 성장할 때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가속화할 수 있다. 시대적 요구인 중소·중견기업의 한국 경제 주역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 제시를 통해 산학연관이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다시 뛰자, 대한민국!
주영섭 중소기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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