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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 두지 않겠다"...치킨게임 치닫는 현대상선 용선료 협상

임종룡 현대·채권단에 데드라인 족쇄 풀어줘

"협상 실패하면 법정관리 갈 것" 다시 강조도

선주들 사이선 '덜 깎아주기' 치열한 눈치작전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2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지역금융 활성화를 위한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로부터 현대상선 구조조정에 관해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상선·채권단과 해외 선주 사이의 용선료 협상이 양보 없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당초 이달 중순을 협상의 데드라인으로 제시했던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20일 “협상에 물리적 시한을 두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현대상선과 채권단이 시한에 구애받지 않고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선주VS채권단, 양보 없는 치킨게임=현재 해외 선주들과의 협상 전면에는 현대상선이 나서고 있지만 실제 우리 측 협상의 키는 채권단이 쥐고 있는 상태다. 쟁점은 용선료를 얼마나 깎느냐다. 채권단 측은 28.5%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선주들은 20% 미만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는 강 대 강 구도가 계속되면 결국 현대상선은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채권단은 돈을 떼이고 선주들도 용선료를 받을 수 없다.

결국 한쪽이 양보해야 파국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치킨게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치킨게임이 항상 승자(용감한 자)와 패자(겁쟁이)로 결론 나는 것은 아니다. 양쪽이 조금씩 양보해 파국을 비켜갈 수도 있다. 용선료 인하 폭을 조절할 수도 있으며 용선료를 인하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선주VS선주, 죄수의 딜레마=용선료 협상의 구도는 크게 보면 채권단과 선주들이지만 선주들 간에도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게임 플레이어를 선주들로만 한정하면 죄수의 딜레마에 가깝다. 현대상선의 용선료를 모든 선주가 같은 비율로 깎아야 할 필요는 없다. 선주 A의 입장에서는 선주 B보다 덜 깎이는 게 이득이다. 배를 빌려준 다른 해운사들까지 용선료 인하를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을 고려하면 용선료를 내려주고 법정관리를 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협상이 결렬되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대한 용선료 수입 비중이 낮은 영국계 조디악이 이런 상황이다.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 타결을 장담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데드라인 족쇄 풀어준 정부=치킨게임에서는 특히 상대방의 패를 읽는 것 못지않게 내가 가진 패를 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손발을 묶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결정권이 없는 대리인을 협상장에 내보내고 최고의사결정자는 연락을 끊어버리는 게 대표적이다. 줄곧 법률대리인만 내세우고 용선료 협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조디악이 이런 전략을 쓰고 있다.



이날 임 위원장은 기자들을 만나 “물리적 시한을 두지 않고 협상을 진행하겠다”며 “협상을 잘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고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있는 만큼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선주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현대상선과 채권단에 ‘데드라인’이라는 족쇄를 풀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한 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이보다는 시한에 쫓겨 선주들의 주장을 서둘러 수용하지 말고 끝까지 협상을 진행하라는 메시지다. 임 위원장은 협상이 실패하면 법정관리로 간다는 원칙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용어설명>

◇치킨게임=어떤 사안에 대해 대립하는 두 집단이 있을 때 한쪽이 먼저 포기하면 상대방에 비해 손해를 보지만 둘 다 포기하지 않으면 가장 나쁜 결과가 벌어지는 게임.

◇죄수의 딜레마=참가자들이 모두 약속을 지키면 최적의 결과가 도출되지만 자신의 이익만 고려해 약속을 깬 결과 결국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게도 불리한 결과를 유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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