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현악기 명장이 만든 바이올린이 세계 최정상급 권위의 제작대회에서 1·2위를 한꺼번에 휩쓸었다.
지난 15일 폴란드 포즈난에서 막을 내린 ‘제13회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 결선에서 한국인 박지환(34·사진)씨가 출품한 바이올린 2대가 각각 1위와 2위로 선정됐다. 제작가 1인당 최대 2대까지 출품할 수 있는 이번 콩쿠르에는 약 120대의 바이올린이 심사에 올랐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씨는 ‘오르소’라고 이름 붙인 악기로 최고상을, ‘마샤’라는 악기로 공동 2위를 각각 차지했다. 2위 악기로는 예선 격인 제작 심사에서 최고점을 기록한 출품작에 별도로 수여되는 ‘최고제작상’도 함께 받았다. 이 콩쿠르에서 한국 제작자가 1·2위를 휩쓴 것은 박씨가 처음이다. 제작자 한 사람이 출품한 바이올린 두 대가 1·2위에 나란히 입상한 것 자체가 콩쿠르 역사를 통틀어 1972·1996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일 정도로 드문 일이다.
그는 “이렇게까지 큰 상을 받을 줄 몰랐는데 감사할 따름”이라며 “보통 바이올린 제작가의 전성기를 40∼50대로 잡는데 짧은 경력에 무거운 상을 받아 부담도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1위를 한 악기는 소리가 열려 있고 연주하기 좋다”는 평가를, “2위 악기는 두텁고 힘 있는 고음에 풍부한 저음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심사위원들에게 받았다고 전했다.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는 바이올린 연주가이자 작곡가인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1835~1880)를 기리기 위해 1935년 제정됐으며 4년마다 열리는 연주 콩쿠르와 5년에 한 번 열리는 제작 콩쿠르로 나뉜다.
이번에 박씨가 수상한 제작 부문은 1957년부터 국제대회로 열려왔으며 주요 국제 현악기 제작 콩쿠르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현악기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3년마다 열리는 ‘크레모나 트리엔날레 현악기 제작 콩쿠르’, 독일의 ‘미텐발트 국제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 등과 함께 최고의 권위를 지닌 대회로 평가받는다.
비올라와 첼로까지 아우르는 다른 콩쿠르와 달리 바이올린만을 대상으로 한다. 만듦새를 평가하는 한 달간의 제작 심사와 1주일에 걸쳐 독주와 피아노·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소리를 평가하는 소리 심사를 거쳐 최종 우승작을 선정한다.
박씨는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비에니아프스키 제작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앞서 2011년 열린 제12회 대회에서 김민성씨가 한국인 최초로 1위에 오른 바 있다.
박씨는 서울시립교향악단 트럼펫 주자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음악 전공을 모색하다 바이올린 제작으로 진로를 바꿔 크레모나에 있는 국제 스트라디바리 현악기 제작학교에서 수학했다. 2010년 학교 졸업 후 현지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공방을 운영하는 그는 2012년 크레모나 트리엔날레 비올라 부문 8위, 지난해 같은 대회 첼로 부문 8위와 바이올린 부문 결선 진출 등 꾸준히 성과를 올리다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유럽 출신과 일본인들이 주로 입상해온 현악기 제작 콩쿠르에서 한국 제작가의 성가를 높인 박씨는 “이번 콩쿠르에서 2차례 연속 한국인이 우승하고 결선에도 한국 제작가 2명이 진출해 화제가 됐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인 제작가도 있다는 사실을 안팎으로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위에게 주어지는 2만유로 등 모두 2만3,000유로의 상금을 받았다. 우승작은 협회 재단에 기증돼 전시와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대여용으로 사용된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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