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동조합과의 합의 없이도 성과연봉제 도입이 가능하다고 쐐기를 박으면서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싼 정부와 노조 간 갈등은 결국 소송전으로 번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획재정부는 23일 예정에도 없던 브리핑을 열고 대법원 판례를 제시하며 성과연봉제 등 취업규칙 변경이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지 않으면 노사 합의 없이도 도입할 수 있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대법원 판례에서 말하는 ‘사회적 통념’으로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 정도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동종 업계의 일반적인 상황 등을 열거했다.
성과연봉제를 두고 정부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4대(공공·노동·금융·교육) 개혁 가운데 노동과 금융개혁은 성과가 지지부진하다. 특히 지난 19일 끝난 19대 국회에서 노동개혁법안마저 자동폐기되면서 정부가 임기 내 성과를 낼 분야는 공공개혁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성과연봉제의 핵심은 기관장과 2급 이상 간부(전체 7%)에만 적용되던 성과연봉제를 올해 말 4급 이상 직원(전체 70%)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고성과자와 저성과자의 기본 연봉 인상률 차이는 평균 3%로 벌어지고 성과연봉 비중은 1~3급까지는 20~30%, 4급은 15~20%까지 늘어난다. 정부는 지난해 임금피크제에 이어 성과연봉제까지 도입을 완료해 공공 부문 효율화와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공공 노조는 국회가 노사정 합의를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노조와의 합의 없는 성과연봉제’ 강행 의지를 밝힌 데 대해 격앙된 분위기다. 특히 금융노조 측은 총파업과 함께 강력한 법적 투쟁을 예고했다. KDB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캠코)·기술신용보증기금·주택금융공사 등 금융위원회 산하 9개 공공기관 중 4곳은 노사 합의를 거치지 않고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상태다.
노조는 성과연봉제가 전체 직원의 인건비를 절감해 신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대의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꼼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94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결국 근로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을 노사 합의 없이 통과시켰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논리다.
금융노조 측은 직원들에게 동의서를 받고 있는 경영진과 간부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소송전을 계획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의 강제성 및 직원들에 대한 불이익 여부 등을 둘러싸고 치열한 법적 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는 특히 성과연봉제가 직원들에게 불리한지 아닌지와 동의서를 받을 때 강제성이 있었는지를 따질 계획이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지점장부터 시작해서 범위를 가리지 않고 개별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 강압이 없었는지 앞으로 고소·고발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은행도 지난주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개별 동의서를 직원들에게 징구한 데 이어 이날 이사회를 열어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다.
이에 대해 정부도 성과연봉제 미도입 기관에 대해 임금 삭감 등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맞서면서 정부와 공공 노조와의 갈등은 점차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성과연봉제 도입 시기·방법과 관련해 정부의 입장은 어떤 변화도 없다”면서 “시한 내에 도입하지 않는 기관은 경영평가를 통해 내년도 전체 기관 임금을 동결하는 동시에 경영진은 임금의 절반을 삭감하겠다”고 강조했다. /세종=구경우기자 양철민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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