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구조조정의 완성은 ‘합병’ 카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다. 제3 해운동맹인 ‘디(THE) 얼라이언스’ 가입 문제를 빼더라도 주요 선사를 3개로 대형화한 유럽(머스크·2M·하파그로이드)과 국적선사를 하나로 통합해 해운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중국(코스코차이나시핑)을 볼 때 한국도 운임료를 낮출 수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으로 무장한 대형 국적선사를 만들 필요가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두 개(현대상선·한진해운)의 국적선사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두 개 선사 유지가) 만고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라며 합병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안이 현실이 될지는 구조조정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양사 가운데 용선료 인하-채무재조정-자율협약 등 구조조정의 고비를 제대로 넘지 못하는 곳이 법정관리 등의 절차를 거쳐 살아남은 다른 곳에 합쳐질 공산이 큰 상태다.
◇용선료 협상 현대 ‘깔딱고개’, 한진 ‘시작’=현재 진행되는 해운사 구조조정에서 채권단 지원의 핵심 전제조건은 용선료 인하다. 이달 말, 또는 다음달 초께 글로벌 선주들과의 용선료 협상이 결론 날 것으로 관측되는 현대상선과 달리 한진해운은 이제 막 협상 테이블을 꾸린 상황이다. 설득해야 할 컨테이너 선주들 수는 한진해운(9곳)이 오히려 현대상선(5곳)보다 많다. 처음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캐나다 선주사 시스팬은 공식적으로 “용선료 인하 불가” 방침을 밝혔다. 당장 이달부터 용선료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한진해운은 앞으로 매달 1,000억원씩 용선료 연체가 발생한다. 채권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대상선의 경우 과거 용선료를 다 지급하면서 앞으로의 용선료를 조정해달라고 요구한 반면 한진해운은 이미 용선료 체납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협상 테이블에서 한진해운은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어 협상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채무조정도 만만찮아=사채권자 채무조정도 한진해운이 불리한 구조다. 현대상선이 발행한 공모회사채 8,050억원 중 개인투자자 보유액은 1,400억원으로 비중으로 따지면 17%다. 반면 한진해운 공모회사채(4,500억원) 중 개인투자자(1,000억원) 비중은 22%로 더 높다. 채무 조정이나 만기 연장을 위해서는 미상환 잔액 기준 3분의1 이상이 사채권자 집회에 참석해 이 중 3분의1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각기 다를 뿐만 아니라 소재 파악도 어려운 개인투자자 비중이 많을수록 채무조정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현대상선의 회사채는 농협과 신협 등 상호금융회사가 상당 부분 보유했고 이들은 채무조정에 동의하는 분위기여서 31일과 다음달 1일 열리는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조정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한진해운은 지난 19일 신주인수권부사채(BW) 358억원에 대한 만기연장에 성공했다. 또 다음달 17일에는 회사채 1,900억원에 대한 사채권자 집회가 열린다.
◇숨겨진 조건 자구책 ‘1조원’=한진해운은 터미널과 부산사옥 등의 매각을 통해 4,000억원 수준의 자구안을 마련한 상태다. 현대증권 매각대금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사재 출연을 통해 약 1조4,200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한 현대상선에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와 채권단은 최근 한진해운에 어려운 과제를 하나 더 던졌다.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한진해운도 현대상선 수준의 대주주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이는 조건부 자율협약 신청 전 보유 주식을 매도해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비난을 받고 있는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을 겨냥한 것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지금의 한진해운은 자금 지원 없이는 6개월도 못 버틴다”면서 “대주주 사재 출연과 추가 자구책을 통해 현대상선 수준인 1조원가량은 마련돼야 채권단이 지원할 명분이 생긴다”고 말했다. /세종=구경우기자, 조민규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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