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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둔 지난달 25일 LG그룹의 주요 계열사에서 사외이사 2명이 갑작스레 사임하는 일이 발생했다. LG화학에선 김장주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LG디스플레이는 같은 학부의 권동일 서울대 교수가 '일신상의 사유'를 들어 각각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지난 3월 연임한 지 6개월만의 중도퇴진이었다.
대기업에서 일신상의 사유로 사외이사가 중도사임하는 일은 흔치 않다. 이민처럼 신상에 큰 변화가 생겼거나 경영진과의 관계가 갑작스레 악화했을 때 혹은 기업 내부에 중대한 문제가 터졌을 때 뿐이다. 특히나 같은 그룹서 사외이사 2명이 갑자기 물러난다면 해당 기업에 심각한 경영위기가 닥쳤다는 우려가 불거질 가능성도 커진다.
진실은 무엇일까.
LG그룹 관계자들과 서울대 측의 입장을 종합하면 사외이사 2명이 이사직을 그만둔 까닭은 서울대가 강화하고 있는 교수들의 사외이사 겸직 제한 규정 때문이다. 학교측이 권동일·김장주 두 교수의 이사직 수행을 최종 불허한 것이다. 지난 2012년 두 교수가 나란히 LG그룹 사외이사로 선임됐을 무렵 서울대가 겸직 제한 규정을 도입했는데, 이후 소급 적용 논란이 발생한 상태에서 학교측이 판단을 수 년간 미루다 올해가 돼서야 불허 판정을 내렸다는 게 당사자들의 설명이다.
이번 사례처럼 학계 인사들의 기업체 사외이사 겸직은 앞으로도 계속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를 비롯해 주요 대학 교수들의 기업체 사외이사 겸직은 "본연의 연구·교육에 충실하지 못한 행태"로 오랫동안 여론의 눈총을 받아왔다. 기업에서 연구용역을 수주한 교수가 해당 기업 사외이사가 된다면 경영감시 책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없을 것이란 비판도 많다. 실제로 교수 출신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는 비율이 높아 '거수기' 논란을 빚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로서도 앞으로 사외이사로 적합한 학계 인사를 선정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제조업의 경우 외부인이면서도 사업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필요한데 학계 교수 외에는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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