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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1위 현실 안주하다… 정식품·국순당의 닮은꼴 추락

■ 정식품 - 국순당 창사 이래 최악 위기 왜

정성수 정식품 회장
정성수 정식품 회장
배중호 국순당 사장
배중호 국순당 사장

주력 베지밀·국순당 매출 뚝 신제품은 시장에서 외면

3년 연속 실적 내리막길

트렌드 못읽고 혁신 외면… 지난해엔 갑질논란 까지

2세 경영인 능력 도마에


국내 1위 두유업체 정식품과 전통주 전문업체 국순당이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주력인 '베지밀'과 '백세주'의 매출이 급감하고 반전을 노린 신제품도 줄줄이 시장의 외면을 받으면서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시장이 침체된 탓도 있지만 창업주의 뒤를 이은 2세 경영인들이 시장 1위에 안주한 나머지 급변하는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연구개발과 혁신을 도외시한 게 치명적이라는 지적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정식품은 지난해 매출 1,722억원에 영업이익 16억원을 기록, 3년 연속 실적이 뒷걸음질쳤다. 2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은 20% 가량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3분의 1이 줄었다.

아직까지 두유시장에서 점유율 40%대로 1위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후발주자인 삼육식품, 남양유업, 매일유업 등의 공세에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국순당도 지난해 매출 918억원, 영업이익 10억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며 3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한때 국순당은 백세주를 앞세워 연매출 1,600억원까지 기록했지만 지난해 백세주 매출은 19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 3·4분기에는 '가짜 백수오' 파동의 영향으로 4,600만원의 영업손실까지 냈다. 이엽우피소가 들어간 기존 백세주를 회수하느라 손실이 커졌다는 설명이지만 전통주의 대명사인 백세주의 신뢰도는 직격탄을 맞았다.

야심차게 내놓은 신제품도 잇따라 고배를 마시고 있다. 정식품은 위기감이 높아지자 녹차와 과즙을 넣은 두유를 출시한 데 이어 최근에는 우유를 넣은 제품도 선보이며 뒤늦게 변신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소비자들이 과일주스와 발효유 등으로 눈을 돌린 상황이어서 시장 대응이 안일했다는 지적이다. 정식품 내부에서는 우유를 섞은 제품까지 만들자 식물성 단백질인 두유의 우수성을 강조한 정식품의 창립이념과 배치되는 게 아니냐는 불만도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순당도 백세주 의존도를 줄이고 제품군 다양화를 위해 신제품을 내놨지만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다. 2000년대 중반 젊은 세대를 겨냥해 출시한 '삼겹살에 메밀한잔'과 '별'이 대표적이다. 당시 국순당은 소주를 마시는 젊은 층을 전통주로 끌어들이겠다며 자신했지만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뒤이어 선보인 '백세주 담'도 출시 초기 반짝 인기를 끌다가 지금은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제품만 좋으면 고객이 알아줄 것이라는 근시안적인 마케팅 전략이 결정적 패인이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정식품과 국순당의 연이은 실적 악화는 대리점 '갑질 논란'으로도 번져 홍역을 치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일선 대리점에 제품 구입을 강제한 정식품에 2억3,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정식품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대리점에 매달 집중관리 품목을 지정하고 할당량까지 배정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대리점은 본사의 제재가 두려워 물량을 반품하지도 못한 채 손해를 보고 제품을 팔거나 폐기처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올 초에는 인기 제품인 '베지밀A'의 용량을 몰래 줄여 판매하다가 '꼼수 가격인상'이라는 비난에 휩싸였다.

국순당도 도매점에 매출 목표를 강제로 할당하고 이를 채우지 못하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 논란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국순당은 퇴출 대상 도매점의 거래처 전화번호까지 빼내 해당 도매점의 물건을 반품하라며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순당의 횡포를 견디지 못한 도매점주들이 검찰에 고소하면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말 배 사장을 비롯한 전현직 간부 3명을 공정거래법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업계에서는 정식품과 국순당이 위기에 내몰린 이유로 시장 1위 자리에 안주한 게 가장 크다고 입을 모은다. 1973년 출시된 베지밀은 올해로 42주년을 맞았고 백세주도 1992년에 첫선을 보인 이래 브랜드 역사만 23년에 달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시장의 절대강자로 자리잡은 게 오히려 변화와 혁신을 가로막는 독배가 됐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창업주인 부친의 뒤를 이어 2세 경영에 나선 정성수 베지밀 회장과 배중호 국순당 사장의 경영능력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정 회장은 2010년 정재원 명예회장의 후임으로 정식품 수장에 오른 뒤 미국, 캐나다, 호주 등 글로벌 진출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국내 시장만 붙들고 있는 상황이다.

배 사장도 아버지 배상면 회장과 함께 백세주를 개발한 주역으로 꼽히지만 1992년 국순당 사장에 취임한 후 주력인 백세주는 물론 막걸리 시장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식품과 국순당은 단일 제품으로 출발해 입지를 닦은 보기 드문 장수 기업이지만 변화와 혁신을 외면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라며 "시장 1위 브랜드로 올라서는 것보다 이를 지키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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