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일부터 구조조정 실탄 지원의 중추적 역할을 맡은 11조원 규모의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가 가동된다. 한국은행이 담보대출을 통해 10조원을, 정부도 후순위대출 형태로 1조원을 지원한다. 정부는 여기에 더해 오는 9월까지 수출입은행에 1조원 규모의 현물출자를 단행하는 한편 필요할 경우 내년 예산안 마련에서 재원을 더 확보할 계획이다.
정부와 한은이 한 달여간의 진통 끝에 밑그림을 내놓았지만 발권력 동원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민간 회사 회생을 위해 결과적으로 국민 혈세가 동원되는 나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8일 정부는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방안 기본계획을 공개했다. 기본계획의 골자는 한은과 기업은행의 대출로 마련되는 11조원 규모의 간접출자 방식인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와 정부의 ‘1조원+α’ 직접출자 방안이다.
산은과 수은의 구조조정 실탄 마련의 중추적인 역할은 자본확충펀드다. 다음달 1일부터 11조원 한도로 펀드가 출범한다.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은과 수은이 ‘실탄’이 필요할 경우 코코본드 등 조건부 자본증권을 발행하고 다시 펀드가 이 증권을 사들이기 위해 대출을 받는 ‘캐피털콜’ 방식으로 2017년까지 한시 운용된다. 한은이 담보대출을 통해 지원하는 10조원은 자본확충을 위해, 정부가 후순위대출 방식으로 지원하는 1조원은 자본확충펀드의 초기자본금 형태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과 정부가 마련한 11조원의 금액이 펀드로 흘러들게 하기 위한 도관은행 역할은 기업은행이, 펀드를 운용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소유와 운영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맡는다. 펀드의 구조 자체는 선례인 지난 2009년 자본확충펀드와 유사하지만 도관은행의 주체는 산은에서 기은으로 바뀌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수은에 대한 선제적인 현물출자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수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10.5%를 맞추기 위해서는 올해 안에 1조원 규모의 출자가 필요하다는 게 정책당국의 설명이다. 수은은 기업의 수출입금융을 지원하는 유일한 정책금융기관이다.
정부가 직접출자와 간접출자 방식을 통한 2조원가량의 지원방안을 내놓은 것은 한은 발권력 동원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간접대출 형태를 띠기는 했으나 국책은행 지원을 위한 것으로 용도가 정해진 상태에서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와 관련,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최근 “1980년대 개발연도에 한은에서 무조건 발권해 그걸로 부실기업(의 손실)을 메워나가는 역할을 했는데 그런 악몽이 다시 살아나지 않나”라고 날 선 발언을 한 적도 있다.
한은의 발권력 동원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상 한은의 모든 결정은 최고의결기관인 금융통화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10조원이라는 구체적 지원방안이 확정됐음에도 이 같은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한은 관계자는 “정부와 협의 과정에서 금통위원들에게 중간보고를 해왔고 이를 통해 기본계획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향후 세부계획을 확정하고 실제 금액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금통위 의결을 거치는 만큼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막판에 국책은행에 대한 한국은행의 직접출자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논란의 불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방안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시장불안이 금융 시스템 위험으로 번질 경우 한은이 수출입은행 직접출자를 할 수 있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 한은 관계자는 “구조조정 지원과 상관없이 한은이 금융불안을 잠재우는 최종대부자 역할을 한다는 선언적 의미”라고 선을 그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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