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남이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한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직했다며 기뻐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리 말년 차다. 이것저것 합쳐 초봉이 5,000만원 가까이 된다고 하기에 조선사들이 잘나가는구나 싶었다. 지난 2000년대 말과 2010년대 초반 무렵은 조선사들의 전성기였다. 수주물량이 쌓여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고 울산과 거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높은 도시로 꼽혔다. 국민소득이 수년째 3만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지만 울산과 거제는 5만달러가 넘는다는 이야기도 떠돌았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돈이 넘치는 도시는 늘 흥청거렸다. 처남도 결혼과 함께 구입한 낡은 아파트를 4년 만에 5,000만원 넘게 남기고 팔고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다른 아파트 한 채도 투자 목적으로 분양받았다.
지난주 말 연휴 기간에 들른 처갓집에서 처남을 만나 밤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회사 분위기가 엉망이라고 했다. 회사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임박하면서 직원들이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며 이직과 전직을 고민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처남은 “대리급을 자르기야 하겠느냐”면서 실직 우려는 하지 않았지만 회사의 미래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앞으로 조선업의 슈퍼 사이클은 오지 않고 최소 5년간은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정규직인 처남이야 월급이 깎여도 직장에 다닐 수 있지만 실직자가 된 하청업체 직원들과 비정규직은 당장 생계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에 비해 사정이 낫다고는 하지만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환골탈태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처남과 통음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건조 능력을 자랑하던 우리 조선업이 왜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를 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황에 취해 중국 조선업의 부상과 해운 불황 등 미래에 다가올 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경영진과 임직원들의 잘못도 있지만 조선산업의 선제적 구조 개편을 실행하지 못한 정부의 실책도 크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무엇보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대우조선해양은 정치권과 채권단의 합작품이다. 정치권은 주인 없는 회사에 전문성이 전혀 없는 측근과 지인을 낙하산으로 떨어뜨리고 산업은행을 위시한 채권단은 이를 묵인했으며 경영진이 분식회계를 해도 눈감아줬다. 모두 청문회로 불러내 국민 혈세를 낭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잔치는 끝났다. 흥겨움이 지나간 자리에 을씨년스러운 풍경만 남았다. 장막을 치우고 빈 접시를 닦아 챙겨 넣어야 한다. 구조조정은 고통스럽지만 제대로 해내야 한다. 체질을 바꾸고 본원 경쟁력을 회복한다면 한국 조선의 저력을 다시 과시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영국 군함을 건조하러 거제로 돌아가는 처남에게 “힘내라”고 딱 한 마디 했다. 모든 조선업 종사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sain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