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카드보드는 현존하는 가장 경제적이고 사용자 편의성이 뛰어난 VR 헤드셋이다. 단돈 만원 안팎만 투자하면 누구나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VR 세상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거실에 앉아 심해를 탐험할 수도, 지구 반대편의 미술관을 둘러볼 수도, 롤러코스터의 스릴을 만끽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구글 카드보드가 VR에 대한 대중적 관심 제고와 관련산업의 활성화에 커다란 기여를 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구글 카드보드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만큼 연산능력에 있어 여타 VR 기기보다 뒤쳐진다는 게 그것이다. 또한 가상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도 측면의 버튼 하나가 유일하다. 그나마 머리에 고정할 수가 없어 손으로 들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머지않아 바뀔 것이다. 최근 구글이 VR 분야에 좀더 진지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최전방에 VR 부문을 총지휘하고 있는 클레이 베이버 부사장이 있다. 그의 팀은 머지않아 올인원 형태의 VR 헤드셋을 세상에 내놓을 예정이다. 구글은 그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PC도, 휴대폰도 필요 없는 제품이 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 얼마 전 개발자 컨퍼런스 ‘구글 I/O 2016’에서 VR 플랫폼 ‘데이드림(Daydream)’이 공개되기도 했다.
베이버 부사장이 파퓰러사이언스 독자들을 위해 차기 VR 제품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짝 귀띔해줬다.
Q. 현재 대부분의 VR은 게임과의 접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게임회사가 아닌 구글이 VR에 투자하는 이유가 뭔가?
구글은 항상 ‘정보’에 관심이 많다. 구글의 설립 취지도 세상의 모든 정보를 조직화해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정보는 기본적으로 활자화된 텍스트를 말하지만 이미지도 훌륭한 정보다. 예컨대 글보다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볼 때 호랑이의 생김새가 더 쉽게 이해된다. 유튜브에서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카테고리 역시 강좌다. 사람들은 여기서 양변기의 부품 교환이나 자동차 엔진의 점화 플러그 교체처럼 평상시 어렵게 생각하고 포기했던 일들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정보의 형태 중 최상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프랑스 파리에 관한 글을 읽는 것과 영상을 보는 것, 그리고 파리의 거리를 직접 걸어 보는 것은 엄청나게 다르다. VR을 활용하면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경험을 통해 더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구글이 지금껏 추구해왔던 목표와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다.
Q. 이미 출시한 구글 카드보드의 궁극적 지향점은 무엇인가?
카드보드를 통해 배운 것이 많다. 아직 자세히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VR이 모바일화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카드보드를 이용하면 VR 체험을 위해 어디로 가야할 필요 없이 자신이 있는 곳에서 체험이 가능하다.
사용 편의성도 중요한 강점이다. 카드보드를 통해 사람들은 VR을 쉽게 이해하고 수용했다. 두려움이나 거부감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카드보드로 VR을 체험하며 즐거움을 느꼈다. 카드보드는 휴대폰을 영화관으로도, 아케이드 게임기로도, 어디든 데려다주는 텔레포테이션 기기로도 바꿔놓았다.
그러나 카드보드는 스마트폰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은 어디까지나 스마트폰이다. VR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기기가 아니다. 만일 우리가 휴대폰과 소프트웨어의 설계에 적극성을 가진다면 한층 뛰어난 품질과 성능을 가진 마법 같은 기기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휴대성과 편의성, 유용성, 접근성, 저렴함 등 카드보드가 가진 장점들을 계속 유지하면서 말이다.
Q. 그 외에 어떤 특징들을 더 추구하고 싶나?
카드보드의 성능을 제한했던 또 하나의 요소는 버튼이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VR은 그 자체로도 강렬한 몰입감을 주지만 사용자들은 VR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더 풍부한 경험을 원한다.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처음 접하는 순간부터 누구나 편안하고 친숙하게 느끼며, VR의 표현력을 충분히 살리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도록 만드는 것은 분명 어렵지만 도전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과제다.
VR을 통해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열의를 갖고 이 과제를 균형감 있게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Q.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나 구글의 미래 전략과 VR을 어떻게 매칭시킬 계획인가?
오픈소스인 안드로이드 OS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개발자나 생산자들이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안드로이드와 카드보드에서 그랬듯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완전한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해 사람들이 탐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Q. 구글은 증강현실(AR) 기업 매직리프에 5억4,200만 달러의 거금을 투자했다. 이것이 VR 연구와 관련이 있나?
그건 그냥 투자다. 매직리프는 우리와는 별개의 회사다. 물론 AR도 흥미로운 분야며, 매직리프를 대단한 회사라 생각한다.
다만 우리 팀은 AR이 아닌 VR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카드보드를 통해 알게 된 VR의 면면에 집중하고 있다.
Q. 구글이 내놓은 AR을 접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인가?
구글의 사업분야는 다양하다. 그리고 ‘전혀’는 모든 여지를 차단하는 단어라 생각한다. 현 상황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VR에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카드보드와 관련해 구글이 지금껏 해왔던 일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유튜브의 VR 콘텐츠나 스포트라이트 스토리(Spotlight Stories) 앱 등 구글이 다른 프로젝트를 통해 내놓은 결과물들의 최종 집결지는 VR이 될 것이다. 지난해 고프로와 제휴해 고해상도 VR 동영상 제작 플랫폼 ‘점프(Jump)’를 선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Q. 이미 집중적 관심을 받고 있는 게임 이외의 VR 킬러 앱은 무엇인가?
VR의 진가를 만끽할 수 있는 이른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하나뿐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여러 개의 킬러 앱이 있듯이 말이다. 종국에는 VR도 상호작용형 엔터테인먼트와 게이밍, 문서작업 등을 포괄하는 일반적인 컴퓨팅 디바이스의 하나로 자리매김 하리라 예상한다.
상상해봐라. VR 고글을 착용하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최대 크기의 모니터가 눈앞에 펼쳐진다. 게다가 당신이 앉아 있는 거실이 아닌 하와이나 알프스 설원을 배경으로 키보드가 나타난다. 정말 환상적이지 않을까.
단기적 관점에서 이미 우리는 꽤 강력한 앱들에 주목해 왔다고 본다.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은 직접 경험하기에는 너무 멀거나 너무 비싸거나 혹은 너무 무서운 곳을 가볼 수 있게 해주는 VR 앱이 아닐까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와 한 무대에 서거나 좋아하는 스포츠팀의 구단주가 되어 보는 앱도 가능하다. 이런 것들을 VR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의 확보가 눈앞에 와 있다.
Q. 팝가수 프린스의 라이브 공연을 VR로 경험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
지난달 갑작스레 팬 곁을 떠난 분이라 다소 슬픈 얘기지만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예컨대 수년 전에 있었던 그의 라이브 콘서트를 VR로 녹화했더라면 누구나 맨 앞자리에 앉아 현장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해 VR 세상에서는 그를 포함해 이미 세상을 떠난 수많은 천재 음악가들과 전 세계의 랜드마크, 역사적인 순간 등을 언제라도 만나볼 수 있다.
Q. VR을 컴퓨팅 소스와 연동시키지 않고 모바일로 구현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멋진 제품을 개발해 멋진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 목적을 이루려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부지기수다. 편의성부터 퍼포먼스의 품질, 지연 속도의 최소화, 빠른 프레임 속도, 그리고 VR 기기 그 자체까지 두루 살펴야 한다. 그렇게 누구나 탐내고, 누구나 사용하고 싶으며, 누구나 어디든 가져가고픈 물건으로 완성해야 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정말이지 대단한 경험을 제공하는데 모든 초점을 맞춰 왔다고 생각한다.
카드보드는 모두를 위한 VR 기기였지만 이제는 한층 고품질을 가진 고성능 기기, 그러면서도 사용이 편하고 매력적이며 누구에게나 잘 어울려는 기기를 내놓고자 한다. 과거 구글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모든 사람에게 전해주려 했듯 세상 모든 이에게 VR을 전해주고 싶다.
Q. 구글의 VR 책임자가 된 이후 새로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가 배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VR을 연구하면 할수록 실제 세계로부터 더 많은 영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VR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게 된다는 얘기다.
일례로 우리는 문을 열 때 손잡이를 돌린다. 손잡이는 마치 ‘이 문을 열어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를 학문적 용어로 ‘행동 유도성(affordance)’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VR에서도 ‘이걸 열어봐’, ‘이걸 가리켜봐’, ‘이걸 터치해봐’와 같은 행동 유도성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이미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하면서 작동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때문이 이를 VR 세상으로 가져오는 것이 누구나 직관적으로 VR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이라 보고 있다.
행동 유도성은 청각적으로도 자극 가능하다. 만일 등 뒤에서 ‘이봐!’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해보자. 그러면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뇌가 소리의 의미를 해석해 뒤에 사람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이처럼 음향신호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할 수도, 특정 지점에 주의를 집중시킬 수도 있다. 실제 세상과 동일하다. VR 세상의 디자인과 인터페이스의 설계에 있어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차용할 수 있는지 알게 되면 누구나 놀랄 수밖에 없다.
물론 오늘날의 VR에는 몇몇 한계도 있다. 햅틱 피드백이나 터치 피드백이 불가하다는 것도 그렇다. 때문에 지금은 VR에서 앞서 얘기했던 문 손잡이를 돌릴 수 없다. 손잡이의 감촉을 느낄 수 없는 탓이다.
실제 세계를 많아 알아야 VR을 제대로 설계할 수 있다는 건 새로 알게 된 수백만 가지 중 하나일 뿐이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Q. VR 연구를 하며 가장 놀랐던 것은 뭔가?
렌더링과 디스플레이, 광학, 사용자 인터페이스, 인체공학, 입력장치, 컨트롤러 등 VR 연구는 모든 것이 흥미롭다. 굳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을 꼽자면 모든 것이 새롭다는 점, 그리고 오늘날의 VR 개발은 OS의 개발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었다.
비유하자면 과거 애플은 매킨토시의 OS를 개발할 때 화면 좌측상단의 ‘X’ 부분을 클릭하면 창이 닫히도록 했다. 우리도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버튼이나 메뉴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VR은 게임인가 아니면 경험인가, VR은 앱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상인가, VR 세상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도록 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BY XAVIER HAR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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