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사는 이강숙(39·가명)씨는 최근 전세살이를 접고 27평짜리 집을 4억5,000만원에 샀다. 전세대출을 받아 또 한번 전세를 살까 고민도 했지만 이자 부담이 낮아 집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은행에서 1억원 대출을 받았더니 한 달 이자는 23만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수준으로 낮췄다는 소식에 이씨는 이자 부담이 더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실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보다는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세가가 급등하면서 전세대출이 가파르게 늘고 아파트 분양시장에서는 신규 물량이 대거 공급되며 중도금 집단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은이 기준금리를 1.25%로 0.25%포인트 전격 낮추면서 금리 상승기에 진입하기 전 ‘막차를 타자’는 시중자금이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버블현상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는 이미 양과 증가 속도 모두 위태로운 상태다. 지난 1·4분기 현재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은 1,223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 기록을 경신했다. 증가 속도도 신흥국 1위다. 국제결제은행(BIS)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8.4%로 1년 전보다 4.2%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전체 조사 대상국 42개 중 노르웨이·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3위이고 신흥국 중에서는 단연 1위다.
특히 금리에 민감한 전세대출 증가세가 가파르다. 시중은행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기업 등 6대 은행의 전세대출은 지난 1~5월 3조4,974억원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2조248억원)에 비해 72%(1조4,726억원)이나 폭증한 것. 은행별로 우리은행이 1조2,221억원으로 가장 많이 늘었고 KB국민(7,313억원), 농협(6,713억원), 신한(5,767억원) 등의 순이다. 기준금리 인하는 이자만 갚아도 되는 전세대출에 기름을 부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1.75%에서 1.50%로 0.25%포인트 인하했을 때도 전세대출 비수기인 7~8월 6대 은행의 전세대출은 1조원 넘게 급증했다.
빚진가구 중 고령층 많아져 금리인하發 부실 악화 우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싼’ 시중자금은 부동산 버블을 자극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여신심사 규제에서 제외된 집단대출의 급증세가 단적인 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9조6,000억원 중 집단대출은 5조2,000억원으로 사실상 주택대출 증가세를 주도했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집단대출은 올해 4월 연체율이 0.44%로 가계대출 연체율(0.36%)보다 높다. 대출자의 소득심사 과정이 생략된 대출이다 보니 상환능력도 그만큼 취약한 것이다.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은 가계대출이 금융 시스템 전체의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지만 가계부채의 ‘3대 취약고리’로 꼽히는 자영업자대출·저소득자대출·고령자대출에서는 벌써 이상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금감원 집계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소호대출(자영업자대출)은 △1월 1조1,000억원 △2월 1조5,000억원 △3월 1조8,000억원 △4조 2조3,000억원 등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4분기 2금융 대출은 전년 대비 11.7% 급증하며 지난해(9.5%)에 비해 오름폭이 커졌다. 은행 문턱이 높아진 데 따라 ‘풍선효과’가 나타나며 저소득자들의 고금리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빚진 가구가 점점 늙어가는 것도 부담이다. 한은에 따르면 현재 60~70대 가구의 금융부채 점유 비중은 17.3%에서 5년 후 21.8%, 10년 후 26.7%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뚜렷한 소득이 없는 고령층이 빚을 떠안은 채 한계가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구조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는 부채 가구를 더 늘리고 고령층의 이자소득을 줄여 결과적으로 소비를 더 위축시킬 것”이라며 “가계부채 취약고리의 문제를 더 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연선기자 bluedas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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