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의 용선료 협상이 중반전으로 치닫고 있다. 한진해운은 시스팬을 비롯한 해외 선주들에게 용선료 조정의 필요성 등을 설명하는 1차 협상을 최근 완료했으며 구체적인 조정 내용을 협의하는 후속협상을 진행 중인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 선례가 한진해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진해운의 조건부 자율협약 시한은 오는 8월4일이다. 앞으로 남은 52일간 용선료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면 법정관리행이 불가피하다.
◇한진 추가 지원 나설까=한진해운에 배를 빌려준 선주는 캐나다 시스팬 등 22곳이다. 한진해운은 총 5조6,000억원 규모인 용선료의 30%를 깎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진그룹은 14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방한한 게리 왕 시스팬 회장을 직접 만나 용선료 조정과 양사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꼭 도와달라”는 e메일이 가장 깐깐한 협상 상대였던 영국계 선주 조디악의 마음을 돌렸던 대목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시스팬은 120여척의 컨테이너선을 보유한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선주사로 한진해운은 1만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7척을 이 회사로부터 빌려 운영 중이다. 조 회장의 적극적인 설득이 협상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주목된다.
하지만 용선료 협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구노력이다.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현대상선은 현대증권을 매각하면서 애초 현대그룹이 예상한 4,600억원을 훨씬 뛰어넘은 1조2,000억원을 마련해 중장기 생존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도 선주에게 이 돈을 바로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협상력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큰돈을 보여주되 손에 쥐어주지 않은 ‘밀고 당기기’가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채권단에 따르면 지난달 한진해운 측과 만난 선주들은 용선료를 인하하려면 3~4년간 생존할 수 있는 증거를 가져올 것을 요구했다. 채권단은 한진해운이 2017년까지 부족한 1조2,000억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은 조 회장을 설득하기 위해 대규모 신규 자금을 투입하면 나중에 되찾을 수 있도록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한진해운에 1조원을 쏟아부은 한진그룹이 더 모험을 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주주인 대한항공의 상황이 나쁘고 조 회장의 개인지분을 담보로 대출받는 것도 위험이 크기 때문에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법정관리 지렛대, 이번에도 통할까=현대상선 선주들을 움직인 두 번째 요소는 법정관리 가능성이다. 협상에 관여한 인사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법정관리 가능성을 수차례 언급했지만 선주들은 설마 그렇게 하겠느냐는 반응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자율협약 상태인 한진해운은 용선료에 대한 채권은 보장돼 있기 때문에 선주가 먼저 깎아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해외 선주들은 초반기 현대상선 측의 e메일 문의에도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회신을 미루기 일쑤였다. 이런 선주들이 지난달 27일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를 본 뒤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자율협약과 달리 법정관리에 가면 용선료는 대부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현대상선도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졌고 결국 용선료 협상 타결로 이어졌다.
다만 현대상선이 용선료를 21% 깎는 데 성공한 점은 거꾸로 한진해운에 불리할 수 있다. 현대상선에 비해 유동성이 부족한 한진해운은 용선료라도 많이 깎아야 하지만 선주들은 현대상선 수준보다 더 깎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이 미국 로펌 밀스타인의 마크 워커 변호사와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를 협상단으로 내세웠다면 한진해운은 영국계 로펌 ‘프레시필즈’가 맡고 있다. ‘프레시필즈’는 2014년 이스라엘 해운사 짐이 1년여 매달린 결과 성공했던 용선료 협상을 주도했던 법무법인이다. 이달 안에 선주들과 2차 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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