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소비량 감소로 사상 최악의 부진을 이어가고 있는 유업계가 오는 8월로 예정된 원유가연동제 가격 협상을 앞두고 또 다시 속앓이를 하고 있다. 농가와 업체의 상생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된 원유가원동제가 잇따른 부작용만 양산하면서 이대로라면 국내 우유산업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부터 낙농가와 유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올해 원유가연동제 가격을 협상 중이다. 아직 양측의 입장 차이가 커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동결될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농가소득 보전을 위해 가격을 내릴 수는 없고 동결하거나 소폭 올리는 것 중 하나인데 인상은 우유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에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유가연동제는 원유 생산비 증감분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원유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농가의 소득을 보전해주겠다는 취지로 2013년 8월 시행됐다. 협동조합 중심의 낙농 선진국과는 달리 국내 유업계는 대기업이 대다수라는 점도 반영됐다. 도입 첫해 리터당 원유가격이 834원에 940원으로 올랐고 2014년과 2015년 모두 가격이 동결됐다. 가격을 더 올려야 한다는 농가와 국내 우유 시장의 현실을 감안해 낮춰야 한다는 유업계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자 정부가 중재한 결과다.
하지만 원유가연동제 도입 이후 국내 유업계는 매출 부진과 공급 과잉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신세가 됐다. 앞서 도입된 원유쿼터제와 원유가연동제로 인해 각 유업체들이 매년 일정량의 원유를 정해진 가격에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유가 팔리지 않고 재고는 쌓여가도 유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낙농가의 원유를 의무적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1인당 우유 소비량(흰우유 기준)은 지난 2000년 30.8㎏이었지만 지난해 13.6% 감소한 26.6㎏에 그치며 매년 가파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유업체들은 농가로부터 구입한 원유를 우유로 판매하지 못하자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분유로 가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분유 재고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국내 유업체의 분유 재고량은 지난해 1만9,995톤으로 원유가연동제 도입 전인 2012년보다 2배 이상 급증했다.
소비자의 불만 역시 덩달아 커지고 있다. 우유 판매가 줄어 재고 우유가 남아도는데 우윳값은 내려가지 않고 있어서다. 하지만 시중 1ℓ 흰우유의 평균가격 2,500원 중 원유값이 940원으로 약 40%에 달해 각종 제조비와 물류비, 마케팅비 등을 빼고 나면 팔면 팔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라는 게 유업계의 설명이다. 원유 가격이 우윳값의 15% 내외인 낙농 선진국과는 애초부터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우유업체들은 이 제도로 인해 매년 수백억원대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국내 유업계는 우유로 인한 적자를 발효유나 치즈 등 우유 부산물 매출로 메우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부도 원유가연동제의 부작용은 공감하면서도 낙농가의 눈치를 보느라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농림부는 지난해부터 원유가연동제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1년이 넘도록 착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 현실을 외면한 원유가연동제를 지금이라도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농가소득 보전을 위해 제도를 폐지하기 어렵다면 공급 과잉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업계 역시 낙농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원유가연동제를 무조건 폐지하는 것보다 우유 소비 촉진과 재소 소진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국내 우유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좌우하는 원유가연동제와 원유쿼터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장 원리를 제대로 따르고 있지 않다는 점”이라며 “시장 상황을 무시한 채 가격을 결정하는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우유 소비를 촉진하고 원유 재고량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
■원유가 연동제=매년 8월 우유 생산비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원유가격을 책정하는 제도다. 과거 원유가격은 일정한 규정없이 대략 2~3년 주기로 낙농가와 유업체가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이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극심한 갈등만 경우가 많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같은 폐단을 막기 위해 기계적으로 원유가격을 정하고 이에 연동해 우유 가격을 조정하자며 2013년 8월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부작용만 양산하고, 시장원리를 외면한 제도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수정, 보완이 시급한 상황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