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밀물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은행 지배구조 개편은 불가능합니다.”
산업은행 고위관계자의 이 말처럼 ‘부실기업 집합소’가 된 산은은 현재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정부가 지난 2000년대 후반 산은 민영화를 추진할 당시 정책금융공사로 정책금융 기능을 떼어낸 후 어림잡은 산은의 시장가치는 약 40조원에 달한다.
2016년 현재, 그 가치를 절반으로 떨어뜨린다고 해도 산은은 부실여신에 너무 과다하게 노출돼 있어 시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연간 당기순이익이 1조원을 넘는 우리은행도 팔지 못하는데 산은 민영화나 기업공개(IPO)는 어림도 없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 등을 계기로 산은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더 이상 끌고가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산은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산은식 개발금융 모델이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기보다는 부실기업을 연명하게 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부작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조원을 쏟아붓고 결국 법정관리에 돌입한 STX조선해양이나, STX조선해양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우려되는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인 사례다.
산은은 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숙명으로 삼아야 하는 은행이다. 은행은 수익을 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어야 리스크를 관리할 체질이 갖춰진다. 하지만 현재의 산은은 ‘정권의 대리인’에 가까울 뿐 기업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은행의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산은 내에서도 이 같은 현실에 대한 회의론이 가득하다.
산은 고위관계자는 “산은을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용할 수는 있어도 시장논리가 개입돼야 한다”며 “기업은행처럼 정부 소유이기는 하되 시장의 목소리가 들어가야 정부도 눈치를 보게 되고 정부의 힘보다는 시장의 힘이 강해지는 전반적인 추세에 산은이 편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 정권 내 산은 민영화 추진은 불가능하겠지만 1~2년 안에 산은의 군살을 확실히 빼고 차기 정권이 산은 지배구조 변화를 포함한 정책금융 개편을 다시 논의할 토대를 닦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정책금융 개편은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라 산은 자체적인 자구노력이나 금융위원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라며 “차기 대선 주자들이 정책금융 개편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공약으로 이를 제시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산은은 민영화 실패 이후 정책금융에다 재무적으로 어려워진 회사까지 떠안으면서 거대한 공룡이 됐다”며 “현재로서는 IPO가 불가능하지만 시장논리를 끌어들일 모델을 다시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홍우·김보리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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