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미국 노스다코타주 최대의 도시 파고, 이곳 도심에 위치한 신생기업 봇링크(Botlink)의 회의실에 이 회사의 임원과 엔지니어, 프로그래머들이 모였다. 이들은 필자 앞에 항공교통관제 인터페이스 앱이 실행되고 있는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텐디라는 이름의 한 엔지니어는 이 앱을 이용하면 초보자도 다른 항공기와의 충돌 우려 없이 드론을 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실시간 데이터 분배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주황색 원은 공항 주변의 비행제한 공역을 의미합니다.”
임원을 제외하면 모두가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후드 티와 스니커즈 차림이었다. 자신들이 개발한 혁신 기술과 그로 인해 고객들이 누리게 될 경제적 이익을 설명하고자 열변을 토하는 모습은 저커버그 시대의 순수한 긱(geek) 그 자체였다.
지난해 금융전문 온라인 매체 마켓워치는 노스다코타주를 ‘드론 산업의 실리콘밸리’라 칭했다. 드론 기술의 얼리어답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필자 역시 이곳에서 ‘와해성 기술’, ‘처녀지’, ‘인큐베이팅’, ‘엑셀러레이팅’ 등 드론의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표현들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실제로 노스다코타주는 미 연방항공청(FAA)이 지정한 6곳의 공식 드론 테스트 구역 중 하나를 갖고 있다. 또한 주 내에서는 1,200피트(356m) 고도까지 드론 비행이 허용된다. 야간 비행도 가능하다. 여타 지역의 경우 FAA는 200피트(61m)의 고도제한과 야간비행 금지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미 공군과 주 방위군, 국경순찰대 모두 노스다코타주 그랜드 포크스 공군기지에서 드론을 운용한다. 기지 인근에는 노스롭그루먼 등 유명 항공기업들의 입주가 확정된 미국 최초의 드론 산업단지 ‘그랜드 스카이(Grand Sky)’도 건설 중이다. 또 노스다코타대학은 지난 2009년 미국 최초로 무인기 조종 학부를 개설해 교육하고 있다.
봇링크는 주정부 상무국이 이런 드론 분야의 활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기업이라며 추천한 곳이다. 필자는 시연을 보여주겠다는 엔지니어팀을 따라 회의실을 나와 공원으로 이동했다. 공원에 도착한 팀원들은 자동차 트렁크에서 쿼드콥터를 꺼내 잔디 위에 올려놓고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스마트폰 앱과의 연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듯 했다. 텐디가 드론의 시동을 끄기 위해 손을 뻗었고, 비명소리가 들렸다. 고속 회전 중이던 로터에 손을 다친 것이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어서 간단히 지혈을 하고, 시연이 이어졌다. 하지만 드론이 하늘로 떠오르자마자 조종을 맡은 팀원은 앱이 드론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방금 전의 사고로 안테나가 고장난 것이다. 그렇게 시연은 시작도 못한 채 사무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기대했던 혁신기술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지만 필자의 노스다코타주 드론 여행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게다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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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오일 붐 덕분에 노스다코타주는 한때 미국 최고 수준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인구 유입도 늘어나 알래스카주를 제치고 미국 내 47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한 주가 됐다.
당시 셰일오일이 채굴될수록 파고와 그랜드 포크스 같은 동부지역으로 돈이 흘러들었다. 새로 유입된 노동자들이 기름에 찌든 채굴 지역과 멀리 떨어진 곳에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가의 급락과 원유 생산량 감소가 이어지면서 경기부양 효과도 함께 사라져갔다. 주정부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드론을 선택한 것도 셰일오일에 비해 외부적 영향을 적게 받는 기술 산업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 가지 독특한 사실은 노스다코타주에선 누구도 드론을 드론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무인항공기(UAV), 무인항공기시스템(UAS), 원격조종항공기(RPA)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드론을 마치 육두문자 수준의 불쾌한 단어로 받아들인다. 아마도 드론에 대한 일반 대중의 부정적 이미지를 경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랜드 포크스는 따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구수 5만6,000여명의 작은 마을이다. 부티가 흐르지도, 그렇다고 빈티가 나지도 않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주변 어디에나 번영의 증거가 보였다. 한 예로 이 작은 마을에 횟집 타운이 3개나 있다.
이 평탄한 지형의 마을이 드론 산업의 요람으로 부각된 원천은 뭔가 특별한 것을 가져서가 아니다. 뭔가가 없어서다. 인구도 적고, 건축물도 많지 않아 드론이 비행 중 추락해도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적은 것이다. 주방위군의 한 공군장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추락하더라도 땅 말고는 부딪칠 게 없답니다. 다른 데서는 하지 못할 위험한 일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곳이죠.”
과거의 드론은 군인이나 동호회 회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들의 활동 대부분은 법에 의해 제약 받지 않았다. 하지만 드론의 활용이 늘면서 사생활 침해, 추락, 항공기와의 충돌 등 사회적 문제가 빈발하자 고도제한 등의 규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는 다시 드론의 기술발전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결국 FAA는 지난 2014년부터 드론 관련 규정에 특례조항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그랜드 포크스를 방문했을 작년까지만 미 전역의 664개 기업이 혜택을 누리고 있었고, 현재는 그 숫자가 3,000여개 기업으로 늘어난 상태다.
다만 이런 기업들도 드론의 운용범위는 조종사의 가시권 이내로 제한된다. 시야를 벗어난 운용은 불법이다. 아마존이 드론 배송서비스 ‘프라임 에어(Prime Air)’의 기술 테스트를 캐나다와 영국, 덴마크 등지에서 진행해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나마 아마존은 나은 편이다. 돈 없고 영세한 기업들에게 해외에서의 실험은 그저 꿈이다. 때문에 이들에게 FAA가 지정한 공식 드론 테스트 지역 6곳은 빛과 같은 존재며, 그랜드 포크스에 그중 하나인 ‘북부 평원 UAS 실험장(NPUASTS)’이 있다.
이곳의 책임자인 전투기 파일럿 출신의 로버트 베크런드는 최근까지 민간단체가 드론을 날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노스다코타주의 경우 현재 민간단체의 드론 운용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쯤이면 떠나기 싫을 만큼 NPUASTS가 좋아질 겁니다. 두고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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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의 한 식당에서 드론 항공촬영 전문 신생기업 스카이슬로프스 관계자와 약속이 잡혔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최고경영자(CEO) 매트 던레비와 최고정보관리 책임자(CIO) 잭 윌콕스가 필자를 반갑게 맞아줬다.
두 사람 옆에는 수석 드론 조종사인 코너 그래피어스가 한쪽 귀를 손가락으로 막은 채 통화에 한창이었다. 필자와 살짝 눈인사를 나눈 그는 휴대폰에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행고도를 연장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소형 UAS의 200피트(60m) 고도제한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요. 특례 조항 마련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덴레비 CEO는 그가 FAA 관계자와 통화 중이라고 알려줬다.
“이틀 전 저희 회사의 첫 번째 드론 항공촬영이 있었어요. 여기서 480㎞ 떨어진 셰일오일 채굴 지대의 휴대폰 기지국 타워 검사 작업을 수주했거든요.”
모든 신기술이 그렇듯 현행 법규는 드론의 발전 속도를 쫓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드론 기업들은 그래피어스처럼 자신이 뭘 하려 하는지 FAA에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상황에 자주 처하게 된다. 아마도 FAA의 담당자는 그래피어스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드론으로 휴대폰 기지국을 점검하는 상황을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전화를 끝낸 그래피어스가 답답한 듯 콜라를 들이켰다.
“우리가 처음이다 보니 누구에게도 조언을 받을 수가 없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직접 부딪치며 해결해야 해요.”
그는 노스다코타대학 UAS 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인 20세의 청년이었다. 스카이슬로프스의 설립자들도 그와 겨우 몇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에겐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맨손으로 세상에 도전하는 열정이 있었다.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언젠가 스카이슬로프스에 의해 고압전선 점검원이나 헬리콥터 조종사들이 위험에 처하는 일은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던레비가 사업가적 기질을 타고 났다면 그래피어스는 드론의 얼리어답터이자 조종의 고수였다. 15살 때부터 무선조종 모형항공기를 제작해 조종했으며, 모형항공기에 카메라를 부착한 뒤 고글을 통해 실시간 전달되는 영상을 보며 조종하는 방식을 거의 처음 시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마치 제가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죠. 당시만 해도 눈을 가린 채 원격조종기를 조작하는 모습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은 제가 뭘 하는지 물어왔어요. 그러면 이렇게 대답했죠. ‘이거 한 번 써보시면 환장하실 걸요’라고요.”
그래피어스의 말을 듣다가 왜 다른 기업들은 스카이슬로프스와 유사한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건지 의문이 일었다. 그의 판단은 간단했다.
“우리는 배고프지만 그들은 배가 부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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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다코타주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카이슬로프스도 드론의 밝은 미래에 관해서는 조금의 논쟁도 허용치 않았다. 확신에 찬 믿음을 보였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아직 긍정론과 부정론이 분분하다. 저렴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드론이야 말로 아웃도어 스포츠와 레크리에이션 촬영을 위한 최적의 도구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탄저균 살포나 스토킹 같은 테러 및 범죄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며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필자는 후자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어느 항공학과 교수가 노스타코타주에서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맞기를 바랐었다.
노스다코타주의 상공에 처음 출현한 드론은 군용이었다. 이곳에 배치됐던 제트 전투기와 핵미사일 기지의 퇴역에 따른 후속조치였다.
필자가 그랜드 포크스 공군기지를 방문하던 날에도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가 격납고 안에서 출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담당 조종사에 따르면 연료를 가득 채울 경우 파나마까지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저는 이 녀석을 출격시키고 퇴근을 해서 아내와 저녁식사를 한 뒤에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출근해서 착륙시키죠.”
이러한 군용 드론은 많은 군사적 이점을 제공하지만 대중들의 불안감을 자아내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2013년 미 연방수사국(FBI)의 로버트 뮐러 전 국장이 의회에 출석해 FAA의 허가를 받아 미국 내에서도 감시 목적으로 드론을 운용하고 있음을 시인했을 때 필자를 포함한 많은 시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제가 미국 대통령이라면 알카에다나 이슬람 국가(IS)의 조직원이 되려는 국민이 발견됐을 때 법정에서 심판하는 대신 드론을 보내 죽여 버릴 수도 있겠군요.”
그랜드 포크스 공군기지에서 필자는 시뮬레이터를 통해 드론 조종 훈련을 받아볼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시뮬레이터의 화면을 보며 드론을 조종하는 동안 국가를 위해 정보를 취합하는 애국자가 된 느낌보다 필자 또한 드론의 감시망을 피하기 힘든 나약한 소시민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이 더 크게 들었다.
하지만 노스다코타주 어딜 가든 사람들은 필자의 두려움을 듣기 좋은 말로 달래려 했다. NPUASTS의 베크런드도 그랬다.
“사생활 침해 문제는 법정에서 다뤄질 겁니다.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손에 드론이 쥐어지게 될까봐 두렵다고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정부 입장에서 보면 사생활 침해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문제일 뿐이에요.”
게다가 노스다코타주 사람들은 필자가 진정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한 얘기를 꺼렸다. 글로벌 호크의 조종사는 자신이 북미지역 상공에서 수행하는 임무의 목적을 알려주지 않았고, 베크런드는 기밀유지 협약 때문에 NPUASTS에서 드론을 테스트 중인 기업들과 그들의 목적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봇링크 또한 자신들이 주방위군 공군기지에서 프레데터 무인기를 조종했다면서도 자세한 이유는 공개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여러 기관들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NPUASTS의 운용 구조는 이런 불투명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무슨 소리냐고? NPUASTS는 단순히 격납고와 활주로로 이뤄진 장소가 아니다. FAA의 통제를 받고 있는 무정형의 조직에 가깝다.
구체적으로 NPUASTS는 노스다코타대학 항공학과, 노스다코다주립대학, 노스다코타주 항공위원회, 노스다코타주 항공협의회, 노스다코타주 주방위군 참모부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그럼에도 예산의 상당부분은 노스다코타 주정부 상무국으로부터 지원 받는다.
또한 NPUASTS가 위치한 장소는 노스다코타대학의 UAS 연구교육훈련센터 인근이며, 두 곳 모두 주정부 상무국이 일부 자금을 지원하는 노스다코타주 혁신센터와 터널형 다리로 연결돼 있다. 덧붙여 주방위군 공군과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이 그랜드 포크스 공군기지에서 여러 종류의 프레데터 무인기를 운용하고 있는데, 노스다코타대학 연구팀은 이 기지에서 드론 비행 시뮬레이터를 개발 중이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나? 질문을 하면 할수록 더 헛갈릴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왜 미국이 캐나다로 드론을 보내고 있는지, CBP가 노스다코타주의 한 농장주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MQ-9 리퍼(프레데터 B)를 띄웠다는데 무슨 문제였는지가 정말 궁금했지만 누구에게도 답을 들을 수 없었다.
특히 필자가 알기로는 미국 내에 총 660개 이상의 드론 운용업체가 활동 중이다. 그런데 노스다코타주에 둥지를 튼 곳은 단 3개사에 불과하다. 드론 스타트업의 메카로 불리기에는 창피할 만큼 적은 숫자다. 그나마도 3개사 중 두 곳은 원래부터 있었고, 신생 창업기업은 스카이슬로프스 하나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초 미 국토안보부(DHS)는 CBP가 국경순찰용 드론의 운용에 당초 예상보다 5배나 많은 연간 6,250만 달러, 시간당 1만2,255달러의 막대한 돈을 썼지만 실제로 국경 보안이 강화됐다는 증거를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CBP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감안하면 노스다코타주는 실리콘밸리보다 펜타곤을 더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든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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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틀 뒤 필자는 스카이슬로프스의 던레비 CEO와 윌콕스 CIO, 그리고 그래피어스와 함께 셰일오일 채굴 지대를 찾았다.
그리고 유전의 배출가스 연소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을 바라보며 노란색 안전조끼를 착용한 뒤 휴대폰 기지국 검사 현장으로 이동했다. 어떠한 사고에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작성했다.
그들의 손에 들려 있던 드론은 사악한 무기라기보다는 삶을 즐겁고 편안하게 만들어줄 멋진 물건처럼 보였다. 이날 아침 드론의 긍정적 활용에 대한 뉴스들을 접했기 때문인 듯했다. 드론으로 상어를 조기 발견해 해수욕객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는 캘리포니아주 인명구조대, 우간다에서 드론을 이용해 수혈용 혈액을 긴급 수송함으로써 인명을 지키려는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에 관한 것이었다. 이 뉴스들을 접하며 내 자신이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기지국 타워로 향하는 동안 기지국 운영 관계자는 물이 문제의 원인이었을 것이라 추정했다. 타워의 위쪽에는 검은색 케이블이 뱀처럼 꼬여 있는데, 빗물이 케이블의 피복을 타고 아래쪽 회로박스에 유입됐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회로박스의 방수재가 문제인지, 케이블 설치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휴대폰 기지국 타워 수천 개의 운명이 거기에 달려 있어요. 기존처럼 조사원을 직접 올려 보내 검사하는 데는 한 번에 1,500달러나 듭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항상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는 것도 아니에요.”
기지국 아래에 도착한 그래피어스가 검은색 케이스를 열고 옥타콥터를 꺼냈다. 스카이슬로프스가 개발한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구입한 제품이다. 그래피어스의 재능은 이 옥타콥터에 적절한 카메라와 짐벌,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높은 건축물과 고압전선의 점검에 최적화시키는 데 있었다.
기지국 관계자가 그래피어스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전에도 기지국 타워에서 작업해본 경험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드론 조종은 쉬운가요?”
“타워 근처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타워에 얼마나 접근시킬 수 있나요?”
“아주 가까이 갈 수 있어요. 혹시 이 타워에서 2.4㎓ 대역의 주파수가 나오고 있지는 않죠?”
관계자는 대답 대신 다시 질문을 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보험은 들어놓으신 거죠?”
던레비 CEO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최대 200만 달러짜리 보험에 가입돼 있습니다.”
옥터콥터를 들여다보던 관계자의 눈에서 의심의 눈빛이 조금씩 가시고 있었다. 그 순간 그래피어스가 무인기의 전원을 켜고 목소리를 높였다.
“드론에서 떨어지세요. 출력을 높입니다.”
8개의 로터가 회전하면서 드론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를 낀 그래피어스가 드론을 조종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놀라움에 가득 찬 눈으로 드론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것뿐이었다.
그래피어스는 드론과 드론이 촬영한 실시간 영상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가 지시를 내리면 윌콕스 CIO가 카메라의 촬영 각도를 제어했다. 함께 영상을 바라보던 관계자가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보세요. 바로 저겁니다. 제가 보고 싶었던 게 저거예요.”
그래피어스는 드론을 제자리비행 시키면서 케이블이 철제 하우징으로 들어가는 연결부위를 줌인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지상에서 20층 높이에 설치된 물체를 눈앞에 있는 것처럼 확인하는 마법과도 같은 상황에 경의를 표했다.
드론은 더욱 고도를 높여 강철 케이블 사이를 체크했다. 그래피어스가 모니터를 쳐다보며 윌콕스에게 지시했다. “앵글을 좀더 위로 올려주세요. 거기서 수평으로 맞춰보세요.”
그때 ‘콰직’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드론이 조종불능 상태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놀란 그래피어스가 엔진 출력을 높이고, 타워에서 드론을 떨어뜨려 놓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렇게 5초도 지나지 않아 드론은 풀밭에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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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점심식사를 위해 한 피자가게에 들렸다. 스카이슬로프스 임직원들은 뜻밖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예상대로 전혀 기죽지 않았다. 다친 사람도, 기지국 타워의 피해도 없었고 고장 난 드론은 단돈 35달러면 고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피어스는 예비 부품만 챙겨갔어도 현장에서 수리가 가능한 수준의 작은 고장이었다고 전했다.
35달러면 고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피어스는 예비 부품만 챙겨갔어도 현장에서 수리가 가능한 수준의 작은 고장이었다고 전했다.
“한 달 뒤에 예정된 최종 작업은 정상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드론에 낙하산을 장착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겠지만 말이에요.”
필자가 직접 접해본 노스다코타주 드론 업계의 미래는 밝아보였다. 봇링크만 해도 지난해의 방문 이후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했고, 엔지니어의 수도 4배나 늘었다. 또 어설펐던 시제품 대신 앱으로 드론을 조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솔루션을 개발, 고객들에게 판매 중이다.
이와 관련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미 전역을 뒤흔들고 있는 드론 관련 논쟁에서 노스다코타주가 한발 비켜나 있다는 것이다. 방산기업 노스롭 그루먼과 제너럴 아토믹스의 드론 개발에 항의하고 있는 사회운동가들도 노스다코타주에서 만큼은 별다른 활동을 펼치지 않고 있다. 그랜드 포스크 인근에서 드론 운용 규제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위원회의 수장은 오히려 은행이나 쇼핑몰 등의 CCTV에 의해 우리가 24시간 감시 받고 있으며, 드론보다는 휴대폰이 훨씬 뛰어난 실시간 개인 추적 수단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필자는 그녀에게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폰 구입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드론에 의한 감시를 선택한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18세기의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아미시파 교인을 보듯이 필자를 쳐다볼 뿐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탑승한 공항셔틀버스에 부착돼 있는 CCTV를 보며 필자는 많은 생각에 빠졌다. 국가가 드론을 이용해 사생활을 감시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노스다코타주를 찾았다가 필자의 사생활은 이미 노출돼 있다는 사실만 새삼 깨달은 느낌이었다. 그것도 필자 스스로의 동의에 의해서 말이다.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아닌 ‘우리 자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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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와해성 기술 (disruptive technology) 기존 산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재편할 수 있는 혁신적 신기술이나 서비스.
UAV Unmanned Aerial Vehicle.
UAS Unmanned Aircraft System.
RPA Remotely Piloted Aircraft.
NPUASTS Northern Plains Unmanned Aerial Systems Test Site.
고르디우스의 매듭 (Gordian Knot)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리지아의 고르디우스 왕이 타던 전차에 달려 있던 복잡한 매듭. 누구도 이 매듭을 풀지 못했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한 칼에 잘라내 풀었다고 전해진다. 누구도 해결하기 힘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 혹은 대담하고 과단성 있는 방법을 써야만 하는 문제를 의미한다.
짐벌 (gimbal) 구조물의 동요에 관계없이 부착된 기기나 장비가 원래의 각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by Mark Sund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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