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스타 경제학자’로 불리는 라구람 라잔(사진) 인도 중앙은행(RBI) 총재의 연임이 실패하면서 인도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집권 2주년을 맞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개혁작업이 내부 정치적 반발에 밀려 좌초된 또 하나의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라잔 총재는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정부와 논의 끝에 오는 9월4일 임기가 끝나면 학계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RBI 총재가 3년인 임기를 한 번만 채우기는 지난 1992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더구나 모디 총리가 라잔 총재를 ‘경제교사’로 부르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그의 연임 포기는 시장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다.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라잔 총재는 미국 시카고대 교수로 재직하다 만모한 싱 전 총리 때인 2013년 9월 RBI 총재에 취임했다. 그는 e메일에서 “총재 취임 때 인도는 통화가치 요동, 인플레이션 상승, 성장 둔화 등으로 ‘취약5개국(Fragile Five)’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고 회상한 뒤 루피화 안정과 은행들의 부실채권 정리를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실제 그는 2014년 1월 깜짝 기준금리 인상 시작을 통해 취임 당시 두자릿수였던 물가를 올 2월 5.18%로 낮췄다. 지난 1년간은 소비회복을 위해 세 차례 기준금리를 내리며 2015~2016 회계연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7.9% 달성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지난해 중국 성장률 6.9%보다 더 높다. 라잔 총재도 ‘병든 코끼리’였던 인도 경제의 구원투수로 인정받았다.
라잔 총재의 연임 포기는 모디 내각의 각료들과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과의 갈등 때문이다. 모디 정권은 경기부양을 위해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했지만 라잔 총재는 금융안정을 이유로 이를 번번이 거절해왔다. 시장의 신뢰를 받던 라잔 총재의 하차에 전문가들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에 빗대 ‘렉시트(라잔의 RBI 총재 연임 포기, Rexit)’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단기적으로 인도 금융시장이 동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롬바르드오디에르자산운용의 살만 아흐메드 투자전략가는 “지금은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시장 변동성이 큰 시기”라며 “20일 인도 루피화 가치가 최소 1.5~2.0%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아가 모디노믹스의 개혁 지속에 대한 시장의 의문이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외국인 투자가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모디 총리는 제조업 활성화, 외국인 투자제한 완화 등의 정책을 펼쳐왔지만 최근 노동법 개정안, 토지수용법 개정안, 부가가치세 단일화 등의 방안이 정치적 반발로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수출과 민간기업 투자가 부진한데도 GDP는 7%대를 기록하면서 통계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알게브리스투자의 알레르토 갈로 거시전략수석은 “라잔 총재가 사라지면 인도 정부는 단기 부양책을 준비할 것”이라며 “이는 나중에 물가 상승, 은행 부실 증가를 촉발하면서 인도가 한 발 전진하려다 두 발 후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주호은행의 티르탄카르 파트나이크 이코노미스트도 “인도의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라잔 총재가 없으면 거시경제 운용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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