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찌민 최대 전시장 ‘사이공전시컨벤션센터(SECC)’에서 최근 열린 K팝 커버댄스 경연대회장.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 반주가 들리자 터져 나온 베트남 소녀들의 함성으로 떠나갈 듯하다. 현지 수출을 희망하는 한국 기업들이 참여한 ‘한국상품전’의 부대행사로 열린 이 경연대회로 한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자신을 한국 이름 ‘원정민’으로 소개한 20대 베트남 여성은 “K팝에 맞춰 춤을 출 때 너무 행복하다”며 “한국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한국 스타들의 패션·집 등은 선망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류 바람이 다시 거세게 불면서 ‘한류 마케팅’을 활용한 해외 시장 공략이 가속화되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 드라마 히트작이 연이어 나오고 아이돌그룹 중심의 K팝의 인기도 한층 달아오른 것이 배경이다. 한류를 즐기는 아시아 소비자들의 지갑이 두툼해져 한류 마케팅 효과도 커졌다. 개별기업뿐 아니라 수출지원기관들도 보다 체계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한류와 융합한 영업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컨벤션과 콘서트를 결합한 케이콘(KCON), 한류 행사를 곁들인 ‘한국상품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K컬처 결합한 수출 마케팅 탄력=올해로 네 번째인 무역협회의 ‘베트남 한국상품전’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국내 소비재, 생활가전, 식음료 회사들의 상품전시 부스가 마련된 점은 지난해와 비슷하다. 그러나 K컬처를 망라한 풍성한 부대행사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전시장 한복판에서는 비빔밥·김밥 등 한국의 각종 즉석요리를 만들어 참가자들의 코를 자극하고 있었으며 한복으로 갈아입고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전시회 기간에 시간대별로 진행된 ‘K메이크업 쇼’는 열릴 때마다 현지 관중이 북적였다. 한국 화장품을 이용해 소녀시대 태연 등 여자 스타들의 메이크업을 따라 할 수 있는 화장법을 보여주자 현지 여성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K팝 커버댄스 경연대회에는 수백 명의 현지 젊은이들이 참가해 행사 분위기를 한층 돋웠다. 베트남 바이어인 카오민하이씨는 “수입해서 팔 만한 한국 가정용품을 보러 나왔다”며 “베트남 소비자들은 드라마에 나온 제품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찾는다”고 전했다. 이곳에 전시 부스를 차린 국내 화장품 업체 벨리코의 박영석 대표는 “베트남·말레이시아·미얀마 등에서 열리는 한국상품전은 직접 판로를 뚫기 어려운 중소업체들에 좋은 해외진출 기회”라며 “한류 관련 부대행사가 모객효과를 극대화해 더욱 다양한 바이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같이 K컬처와 수출 마케팅을 결합한 행사가 갈수록 늘고 있다. 무역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올 하반기 중국 충칭과 청두에서 한류스타를 활용한 전시상담회 개최를 기획하고 있다. KOTRA는 CJ E&M, 대중소협력재단과 공동으로 케이콘, MAMA(Mnet Asia Music Award) 행사와 연계한 B2B, 판촉전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 일본 도쿄 행사를 시작으로 케이콘 LA(7월), 홍콩 MAMA(12월)에서도 동일한 형태의 행사가 예정돼 있다.
이재출 무협 전무는 “K팝·K푸드·K패션 등 한류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는 이벤트와 결합해 한국 상품전을 개최하면 직접 한류 스타를 광고모델로 기용하기 힘든 중소기업들도 한류 마케팅을 극대화할 수 있어 이 같은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도 전방위 ‘K라이프스타일 마케팅’=한국 기업들은 아시아에서 다양한 한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며 각종 소비재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특히 ‘K프리미엄’을 부각시키려 할 때는 한국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때로는 은근한 한류 마케팅을 바탕으로 현지화 전략을 택하는 ‘양면전략’을 구사하는 점도 특징이다.
CJ는 베트남에 식품(제일제당·푸드빌), 유통(오쇼핑·대한통운), 엔터테인먼트(E&M·CGV), 바이오(제일제당 바이오사업 부문) 등 4대 주요 사업군 계열사들이 동반 진출해 시너지 효과를 누리고 있다.
CJ E&M의 경우 ‘태양의 후예’ 후광 효과를 누리기 위해 24일부터 송중기가 출연하는 영화 ‘늑대소년’ 감독판을 개봉한다. CJ C&M은 지난해 한국 영화 8편을 현지 CGV를 통해 개봉했으며 올해도 상반기에만 한국 영화 4편을 베트남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현지 홈쇼핑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오쇼핑과 뚜레쥬르 등의 매장을 운영하는 푸드빌도 한류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태선 CJ E&M 베트남법인장은 “한국 영화 ‘수상한 그녀’의 베트남 버전인 ‘내가 네 할매다’는 베트남 역대 최고 박스오피스 성적을 기록했다”며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지 배우들을 기용한 점이 성공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오리온은 K푸드를 전파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다만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택하면서도 한국 식품의 고품질 이미지를 동시에 활용하고 있다. 정종연 베트남오리온 부장은 “현지인의 입맛에 맞도록 연구개발(R&D)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며 “특히 다른 제품들보다 위생적이고 고품질인 제품이라는 이미지는 오리온베트남법인의 성장동력”이라고 말했다. 오리온베트남법인은 2013년 1,500억원의 매출 올렸으며 올해는 1,900억원 매출 달성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그동안의 한류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류 마케팅은 브랜드 인지도를 단번에 끌어올려 초기 구매를 유도할 수 있지만 한국 제품이 지속적인 선택을 받으려면 결국 품질로 승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한류 이미지에 반짝 편승해 품질이 떨어지는 한국 제품이 동남아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현지 진출 기업인들은 우려스러운 시각으로 보고 있다. 이인호 LG생활건강 베트남법인장은 “수십 년간 공동으로 노력해서 만든 한류라는 좋은 인프라를 자칫 잘못 이용하면 오히려 전체 한국 제품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한류가 한국 제품의 이미지를 높이고 고품질 제품이 한류에 도움이 되는 선순환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찌민=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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