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전체가 바뀌었지만 변화에 둔감한 독점사업구조가 투자를 미루는 요인으로 작용한 탓에 전기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부 부처 간 협업이 되지 않는데다 민간 기업마저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면 전기차 사업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 전체에도 먹구름이 낄 수 있습니다.”
이날 포럼에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과 과제’를 주제로 강연자로 나선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우리 자동차산업은 세계 시장에서 생산 5위, 수출 4위의 반열에 올랐지만 전기차 산업의 위상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시장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글로벌 플레이어들의 각축장으로 재편된 상태다. 하지만 후발주자로서 속도를 더욱 내야 했던 우리나라는 관망전략만 펴오다가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중국의 올해 1·4분기 전기차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41.8% 늘어난 4만6,138대에 달한다. 미국은 지난 1~4월 3만8,370대가 판매돼 전년 동기 대비 15.5% 증가했다. 이 중 현대기아차의 전기차는 1,259대로 3.2%에 그쳤다.
국내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는 올해 전기차 보조금 목표로 8,000대를 세웠지만 4월까지 판매된 차량은 500대에 불과해 하반기 수요가 늘어나더라도 올 전체 판매량은 2,000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아직 국내에서 생산된 전기차의 성능이 떨어져 수요 창출에 고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한때 전기차 산업에 우후죽순 기업들이 뛰어들었지만 실패가 잇따르면서 생산된 제품의 AS 문제 등이 발생해 수요자들의 외면을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턱없이 부족한 전문인력 부족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는 “제주도에서 전기차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전기차를 수리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 제주도청으로 고장 난 차를 몰고 오는 웃지 못할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미국은 현재 수리 전문인력만 3,000명으로 추가적인 수리전문가 1만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경계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현재 자동차 산업에서는 파괴적인 혁신이 일어나고 있고 이는 단지 기술력과 비즈니스 모델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라며 “그동안에는 리더의 경험과 신념·사전지식에 따라 자동차 산업이 커왔지만 전기차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내 자동차 기업에 공고하게 뿌리내린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단기수익에 급급한 경영철학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는 고언이다.
그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전기차 산업을 효자 업종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민·관 모두 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산업 수준이 점차 고도화되면서 한쪽에서는 규제를, 다른 한쪽에서는 육성을 하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펴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전기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함은 물론 충전소 등 관련 인프라도 부족한 만큼 컨트롤타워를 세워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한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 선임연구원은 이어 “현재 정부가 창조경제를 필두로 창업 열기를 피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중소기업 지원센터만 전국에 600개가 있다”며 “대기업의 선제 투자가 중소기업의 투자로 이어지고 중소기업의 기술 확대가 시너지 효과를 낼 경우 전기차는 내연 자동차 못지않게 우리나라의 주력 업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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