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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 선제대응·확실한 신호·충분한 규모 ‘3박자’ 모두 놓쳤다

[논란 불씨 여전한 추경]

1분기 경기하방 때 재정조기집행 선택...시기 놓쳐

추경 필요성 나오자 “결정된 것 없다”만 반복 신호 안줘

10조 안팎으론 하반기 경기방어에 턱없이 부족 평가

3015A05 국가채무




3015A05 계획대비세수


정부가 우여곡절 끝에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로 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29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도 추경 요건과 사용처, 정책효과 등에서 여야정 간 적지 않은 이견이 노출돼 앞으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특히 이번 추경은 정책효과를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기 3박자를 모두 놓쳤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재정학자들은 3박자로 “선제대응, 확실한 신호, 충분한 수준”을 꼽는다.

우선 선제대응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추경 편성의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 1·4분기 재정절벽·소비절벽으로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질 때도 추경 편성보다는 재정 조기 집행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물론 유일호 경제팀이 출범하자마자 국회 동의가 필요한 추경 카드를 꺼내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더구나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깐깐한 학자 출신이다. 추경보다는 가용한 재정을 미리 당겨 쓰는 무난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선제대응을 못한 대가는 컸다. 하반기 소비절벽과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해고 우려 등으로 경기가 또다시 급랭할 우려가 커진 것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가 추경 편성의 직접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사실 정부는 이전부터 추경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울고 싶은데 브렉시트가 뺨을 때린 격이다.



다음은 경제주체들에 대한 확실한 신호가 없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추경 카드를 고민하면서도 공식 발표를 계속 뒤로 미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물론 정부 관계자들은 얼마 전까지도 “구조조정은 추경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버텼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고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추경 편성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최근 “구조조정에 따른 경기침체·대량실업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결국 공식적으로 추경 편성을 발표하기까지 두 달여 동안 확실한 신호를 주지 않았다. 만약 정부가 추경을 편성한다는 확신을 줬더라면 심리 개선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추경 규모다. 정부가 편성하기로 한 추경 규모는 10조원 안팎이다. 이번에는 국채를 찍지 않고 지난해 쓰고 남은 돈(세계잉여금)과 올해 들어 더 걷힌 초과 세수를 이용해 재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용한 재원을 활용한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이는 미래에 쓸 돈, 즉 내년 예산에 쓸 재원을 미리 당겨 쓴 것일 뿐 중장기적인 재정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에는 차이가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하반기 경기 하방 요인을 충분히 방어할 수준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가 초과 세수를 사용하겠다는 방법론도 국회 심의 과정에서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행 국가재정법 90조는 ‘해당 연도에 예상되는 초과 세수를 이용해 국채를 우선 상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국가재정법 개정 당시 새로 들어간 조항으로 추가로 들어온 세수는 나랏빚을 갚는다는 원칙으로 준용되고 있다. 기획재정부 예산·재정 라인이 추가 세수를 사용하는 데 마지막까지 반대했던 이유다. 그러나 경제정책국 등 정책 라인은 법 개정 원칙에 반해 추경의 재원으로 꺼내 쓰는 묘수를 냈다. 국채를 찍어 나랏빚을 늘리지 않는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우기 위해 앞으로도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셈이다.

한편 유일호 부총리는 이날 국회 기재위 답변에서 “추경 편성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 오는 7월 중으로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추경 사업 심의 및 편성까지 최소 한 달가량 걸린다. 서둘러도 지난해(7월3일)보다 한 달가량 늦은 7월 말에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사업 선정 과정에서 10조원에 달하는 나랏돈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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