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형 금융사들이 말레이시아 2위 금융그룹인 CIMB의 해외 사업부 투자를 통한 동남아시아 지역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내수 시장에서 성장 한계를 느끼는 중국 자본(차이나 머니)이 본격적으로 해외 사업에 나서면서 동남아시아 시장에 의욕적으로 발을 내딛고 있는 한국 금융사들과도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중국 자본의 한국 자본시장 진출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30일 중국 금융권과 국내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본토 10위권 증권사인 인허(Galaxy)증권이 홍콩·싱가포르·대만·동남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CIMB의 증권 판매(에쿼티세일즈)·기업조사(리서치) 사업부 인수를 위한 협상을 최근까지 진행했다. 인허증권이 CIMB 해외 사업부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50% 이상을 확보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됐으나 인수 대상 지역과 거래 가격에 대한 의견 차이로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CIMB는 다른 중국 금융사들과도 접촉을 이어가기로 했다. 해외 사업부의 경영권을 넘긴다는 기존 매각 전략도 변경해 중국 금융사와 각각 50%의 지분을 유지해 ‘조인트벤처(합작회사·JV)’ 형태로 사업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일종의 전략적 제휴를 맺는 것이다.
실제 중국 금융당국에 따르면 본토 2위 증권사인 하이퉁증권의 미야자토 히로키 부사장이 최근 홍콩·싱가포르·대만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지역의 CIMB 현지 사업부 자산을 직접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동양생명·알리안츠생명을 인수한 중국 안방보험그룹도 CIMB 해외 사업부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금융사들이 CIMB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는 이유는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 진출에 나서기 위해서다. 인허증권과 하이퉁증권·안방보험 등은 아직 경제 성장 가능성이 높은 동남아시아 지역에 현지 사업부를 갖추지 못한 상태다. 중국 금융권에 밝은 한 관계자는 “중국 금융사들이 화교 자본의 영향력이 높고 거리상으로도 가까운 동남아시아 지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을 주요 사업 기반으로 하는 CIMB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지난 2013년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업부 인수 이후 점차 하락해 지난해 말 기준으로 7.3%까지 떨어졌다.
중국 금융사들이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영향력이 높은 CIMB와 손을 잡으면 이 지역을 해외 진출 거점으로 삼고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한국 금융사들과의 사업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신한금융투자는 인도네시아 현지 증권사인 마킨타를 인수해 현지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최종 승인을 기다리는 상태이며 한국투자증권 역시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이 시장 진출을 위한 인수합병(M&A)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중국 금융사들이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타진한 뒤 CIMB의 한국 지점에도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중국 본토 증권사의 한국 자본시장 진출은 2월 금융당국에 예비인가를 신청한 차오상증권이 유일하다. 금융투자업계는 차오상증권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좋은 실적을 거두면 더 많은 중국 본토 증권사가 진출을 타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CIMB 한국 지점은 올해 들어 본사로부터 60억원 안팎의 자본금을 지원받은 만큼 사업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올해 하반기 중에도 추가 자본 확충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와 리서치 사업에 집중하고 투자은행(IB) 영업에는 손을 떼기로 했다. CIMB는 2013년 한국 자본시장에 진출했다.
/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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