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이 현대상선의 새 최고경영자(CEO)를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 최대주주가 산업은행으로 바뀌는 이달 말께 새 현대상선을 이끌 수장을 선임해야 하지만 아직 후보군도 추리지 못한 상태다. 부실 경영과 회계 부정으로 지원된 수 조원의 혈세가 줄줄 샌 대우조선해양의 사례를 반복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더욱 사장 인사를 어렵게 한다는 관측이다.
4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채권단과 현대상선은 차기 사장을 선임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현대상선은 지난 3월 말 채권단이 3개월간 채무 상환을 유예하는 대신 △용선료 인하 협상 성공 △사채권자 채무 재조정 △글로벌 해운동맹 가입 등 세 가지를 완료해야 하는 조건부 자율협약을 내걸었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말 글로벌 최대 해운동맹 2M에 들어가기 위한 협의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모든 조건을 충족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이달 18일 예정된 유상증자에서 채권단과 사채권자·용선주들이 현대상선에 대한 채권을 주식으로 바꾸는 출자전환을 단행한다. 이 절차가 마무리되면 5,300%에 달하는 부채 비율은 200%대로 낮아지고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이 된다. 산업은행은 경영 악화로 현대상선을 부실로 내몬 책임을 물어 현 경영진의 사퇴를 받고 새 경영진을 선임할 방침이다.
새 사장은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선임해야 한다. 하지만 선임 과정에서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을 지원한 금융위원회와 해양수산부와도 교감하고 있다. 현재는 금융위와 해수부, 산업은행, 현대상선 자체 추천을 통해 좁혀진 인물 가운데 신임 사장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정부와 채권단·현대상선 모두 적극적으로 사장 추천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현대상선은 2010년 이후 사장만 여섯 번 바뀌었고 2009년 이후 한진해운을 맡은 두 사장도 모두 경영을 망쳤다”면서 “국내에는 국적선사를 5년 이상 운영해본 해운 경영 전문가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국적선사는 글로벌 업황과 영업에 밝아야 하는데 교수들도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최근 부실 경영과 분식회계로 수사를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사례도 영향을 미쳤다. 대우조선해양은 산은이 보낸 낙하산과 내부 승진한 남상태 전 사장 등이 온갖 부정을 저지르며 수 조원의 혈세를 날려 수사를 받고 있다. 자칫 정부나 채권단이 추천한 인사가 경영을 제대로 못 하면 향후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어서다. 채권단 관계자는 “경영 실적이 나쁠 경우 새 사장을 추천한 정부나 채권단에 화살이 돌아올 것”이라며 “모두가 ‘어떤 인물이 적합하다’고 말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세종=구경우기자 이종혁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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