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산자이 카주리아 Sanjay Khajuria는 한밤중 울린 휴대폰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델리에 위치한 자기 집 침대가 아니라 맨해튼 호텔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그 몇 초 동안 이 네슬레 이사는 불길한 생각에 빠져 들었다. 혹시 맥기 Maggi 때문일까?
카주리아는 한밤 중에 긴급한 전화를 받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인도 네슬레의 대관업무 책임자인 그의 일정은 보통 둘로 나뉜다. 정기적으로 규제 관련 사안을 다루거나, 네슬레의 ‘공유 가치 창조’-회사가 추구하는 사회적 책임 접근 방식-노력이 거둔 성과를 알리는 것이었다. 당시 카주리아(51)는 회사 대표로 네슬레가 지원하는 공유가치 리더십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 와 있었다.
뉴욕 행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만 해도 그는 세상 모든 일이 잘 돌아가는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처리해야 할 까다로운 문제는 단 하나였다. 인도 29개 주 가운데 한 곳의 보건 당국이 인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네슬레 제품의 샘플을 시험하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그 제품이 바로 맥기 2분 국수(Maggi 2-Minute Noodles)였다.
세계 최대 식음료 기업인 네슬레는 인도에서 30년 넘게 맥기를 판매해왔다. 아대륙(subcontinent)인 인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맥기 브랜드의 문화적 영향력은 미국에서의 코카콜라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인도인들은 2014년에만 이 인스턴트 국수 식품을 40만 톤 이상 소비했고-틸링 커리 Thrillin’ Curry부터 쿠파 매니아 마살라 요! Cuppa Mania Masala Yo!까지 10가지 종류가 판매된다-맥기는 네슬레의 인도 매출 16억 달러 중 약 25%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해 맥기는 인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5대 브랜드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10일 전, 카주리아 팀은 맥기에 대한 규제 통보를 받았다. 인구 2억 500만 명으로 인도에서 거주민 수가 가장 많은 우타르 프라데시 Uttar Pradesh 주 식품안전청장이 해당 국수 제품 하나에서 허용치보다 7배 많은 납 성분을 확인해 제품을 리콜 조치했다고 발표했다. 인도 네슬레는 자사 국수 제품이 100% 안전함을 보여주는 자체 시험 결과를 내세우며 신속하게 대응했다. 카주리아는 관계당국이 네슬레의 답변을 받아들여 이 문제를 곧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누가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이유로 그에게 전화를 한 것일까?
그는 휴대폰 쪽으로 손을 뻗어 전화를 받았다. 인도에 있던 카주리아의 동료가 그에게 전한 말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는 널리 읽히는 힌디어 신문에 보건규제 통보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고 전했다. 이 기사에는 더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주 정부가 곧 인도 전체 시장에서 맥기를 퇴출시키라고 중앙 규제담당 부처인 인도 식품안전표준국(Food Safety and Standards Authority of India)에 제안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카주리아는 이후 한 시간 동안 전화상으로 이에 대한 전술을 짰다. 언론 요청에 대응은 하겠지만, 공식 성명서는 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우타르 프라데시의 보건 당국자들을 직접 만날 3명의 대표단을 보내기로 했다. 카주리아는 이 시점부터 사태를 우려하게 됐다고 인정했다.
전화를 끊었지만 카주리아는 다시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그날은 2015년 5월 11일이었다.
처음에는 사소한 규제 마찰로 보이던 이 문제가 네슬레를 전대미문의 위기로 빠뜨리기 직전이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맥기의 건강 위협 관련 기사가 타임스 오브 인디아 Times of India에 실려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며칠 후에는 맥기의 시장 퇴출을 의미하는 해시태그 #MaggiBan이 트위터에 등장했다. 그리고 상황은 악화일로를 치달았다.
카주리아의 휴대폰이 한밤중 울렸던 그 날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015년 6월 5일, 인도 식품안전표준국이 맥기 국수 제품의 제조, 판매, 유통에 대한 임시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맥기 제품에 대해 ‘사람이 섭취하기에 안전하지 않고 위험하다(unsafe and hazardous)’고 규정을 했다. 네슬레 국수 제품에 과도한 양의 납이 들어있다는 걸 보여주는 30차례의 정부 시험 결과가 이를 뒷받침했다.
소비자들은 곧바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몇몇 도시의 거리에 나선 시위대가 광고에 등장한 발리우드 Bollywood 스타들의 사진과 국수 제품을 던지며 불을 질렀다. 한 저명한 뉴스 진행자는 이 상황을 사상 최악의 인도 산업재해였던 보팔 Bhopal 사고와 비교하기도 했다. 인도 중부 지역에 위치한 유니언 카바이드 Union Carbide 살충제 공장에서 독성 가스 유출이 발생해 수천 명의 주민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맥기의 몰락은 크나큰 손실로 이어졌다. 네슬레는 시장 퇴출로 최소 2억 7,7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또 역사상 최대 규모의 리콜에 7,000만 달러를 투입해야 했다. 브랜드 가치 훼손-한 컨설팅 업체는 2억 달러로 추산했다-과 이 사건으로 발생한 비용을 합치면 가볍게 5억 달러가 넘어가는 손실이었다. 그러나 그 여파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시장 퇴출 조치가 이뤄진 지 거의 1년이 지난 후, 맥기 제품은 인도 시장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큰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 제품의 미래는 인도 현지에서 진행 중인 두 건의 소송에 달려있다. 두 건 모두 네슬레와 인도 정부가 맞서고 있다.
네슬레는 정확히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네슬레는 인도 보건당국의 의심을 풀기 위해 노력해왔다. 3,500개 이상의 샘플을 통해, 자사의 인스턴트 국수 제품에 포함되어 있는 납 성분이 법정 허용치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테스트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스위스 업체는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앞선 영양 · 보건 · 건강 기업’ 브랜드라고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품질 관리-특히 납처럼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에 대한 품질 관리-가 미흡하다는 건 그들 입장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일까?
이 기사의 내용은 정확히 그 질문에 관한 것들이다. 1,000억 달러 규모의 세계적 대기업이 갑자기 위기에 빠진 스스로를 발견했을 때-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모든 노력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은 늪에 빠져들었을 때-그 이면에선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네슬레 사례는 기준이 불분명한 인도 식품안전 당국과 소수의 지역 정부 관계자들 때문에 강력한 한 기업이 겪은 ‘고난의 서사시’라 할 수 있다. 또 한 기업이 경험한 역설의 사례 연구이기도 하다. 존재 자체까지 위협한 모멸적인 분유 관련 스캔들을 겪은 바 있는 네슬레는 선행과 투명성의 귀감으로 거듭나려고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좋은 의미의 노력을 아무리 해도 얼룩진 과거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 이 사례는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시장 중 한 곳인 인도에서 갑자기 길을 잃은 거대한 다국적기업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인도 시장은 과거 다수의 대기업들을 괴롭혀 내쫓은 전례를 가지고 있다. 코카콜라는 자사 제품의 제조비법 전수를 요구 받은 후, 1977년 인도를 떠난 적이 있다. 수십 년 후 다시 진출했지만, 음료 제품에서 살충제가 발견되면서 일시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야심 찬 진출 계획을 추진했던 월마트는 인도 중소기업들로부터 제품 30%를 공급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지킬 수 없어 2013년 사업 계획을 축소한 바 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이 비슷한 좌절을 경험했다. 지난 2월 인도 규제 당국이 페이스북의 프리 베이식 Free Basics 웹 접속 프로그램을 금지한 것이었다. 친기업 성향의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 Narendra Modi가 복잡한 규제를 풀겠다고 약속한 바 있지만, 예전과 다름 없이 시장 진입은 어려워 보인다.
네슬레 경영진은 인도에서 오랜 기간 사업을 했지만, 모든 점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 측면에서 맥기 사태는 교훈을 찾으려는 경영대학원 학생들과 홍보 담당 경영진이 향후 몇 년간 연구를 해 볼만한 확실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네슬레 CEO 폴 불케 Paul Bulcke는 이 사례에 대해 “아주 옳을 수도 아주 틀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사실적인 주장에선 옳았지만, 주장하는 방식에선 틀렸다. 옳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올바른 방법을 선택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는 불분명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세상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슬레가 엄청난 실패를 겪은 이유를 이 문제 자체를 통해 이해하기 위해선 이야기가 시작된 시점으로 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 놀라운 시험 결과
산자이 싱 Sanjay Singh은 몸을 숙여 마살라 맛 맥기 국수 제품 4개를 선반 아래 쪽에서 꺼냈다. 2014년 3월 어느 월요일 아침, 장소는 바라반키 Barabanki 지역 서쪽 끝자락의 잘 관리된 소형 마트 이지데이 Easyday였다. 이 곳은 우타르 프라데시 중부 지역에 위치한, 15만 명이 거주하는 거칠고 허술한 도시. 이곳에서 식품 조사관으로 활동하는 5명 중 한 명인 싱(40)은 보통 길거리 상인과 축제 상인들을 단속하고 있다. 비리야니 biryani 쌀을 팔면서 법으로 금지된 노란색 제품을 찔러 넣는 상인 등이 그들이 단속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이 날은 상부로부터 내려온 명령을 수행 중이었다. 우타르 프라데시 식품안전청장이 담당 공무원들에게 그 주에는 슈퍼마켓을 단속하라고 명했다. 취한 참가자들이 색가루를 던지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봄 축제 홀리 Holi에 대비하기 위한 단속이었다. 싱의 사무실 길 건너편에 있는 이지데이는 원래 월마트가 공동 소유했던 체인사업체의 한 지점인데, 그날 아침 조사관들의 첫 점검 대상이 되었다. 싱은 밝은 노란색 국수 포장지 위에 써 있는 ’MSG를 함유하지 않았다‘는 문구에 흥미를 느꼈다.
싱도 대부분의 인도인들과 마찬가지로 맥기 제품에 익숙했다. 그의 딸이 이 인스턴트 국수를 좋아했다. 맥기의 플라스틱 포장 속에 든 구성품은 두 가지. 바싹 튀긴 국수 패티와 여러 양념이 든 ‘스프’(미국 대학생들의 주식 중 하나인 라면의 스프와 기본적으로 같은 성분)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싱은 맥기 제품 4개 중 하나를 주 반대편 고라크푸르 Gorakhpur에 있는 시험소로 보내 테스트를 진행하도록 했다.
싱은 몇 주 후 받은 결과에 깜짝 놀랐다. 맥기 샘플에서 글루탐산소다로 알려진 MSG 양성 반응이 나온 것이었다. MSG는 인도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성분이다. 법적으로 허용은 되어 있지만, MSG 함유 여부와 ‘해당 제품을 12개월 미만 아동에게 권해선 안된다’는 경고를 함께 표시해야 한다. 중국 식품에 주로 첨가되는 조미료 MSG는 수십 년 동안 악몽을 꾸는 것부터 암 발병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건강 문제의 원인으로 의심 받아왔다. 그러나 그 어떤 연구 결과도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성공하진 못했다.
포장에 MSG가 없다고 표시된 맥기 제품 샘플에 MSG가 들어있다는 사실은 최고 30만 루피(약 4,500달러)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범법행위였다. 네슬레가 벌금만 냈으면, 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통보 받은 인도 네슬레는 MSG를 첨가하지 않았다고 부정했고, 시험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 결과 2014년 6월 두 번째 맥기 샘플이 965km 가량 떨어진 콜카타 Kolkata 소재 또 다른 정부 시험소로 보내졌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지연 끝에-음모론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사태는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 네슬레를 뒤흔든 사태 전개
거의 1년이 지난 2015년 4월, 콜카타로부터 두 번째 샘플 시험 보고서가 도착했을 때 싱은 사무실에 있었다. 인도라는 나라에 걸맞게 콜카타로 가는 우편은 수 개월-히말라야 산맥을 돌아 약 1,930km 거리를 가야 한다-이 걸렸고, 그 동안 제품 샘플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시험소에 도착한 후에는 가장 나중으로 테스트 순서가 밀리기도 했다.
싱은 보고서 첫 장을 훑어본 후,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모든 과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샘플은 밀봉된 상태로 시험소에 도착했고, 시험 결과에 대한 소장의 서명과 도장도 들어있었다. 그는 MSG가 다시 발견됐는지 보기 위해 문서를 넘겼다. 그리고 결과를 확인했다. ’MSG: 함유됨.‘
이번 보고서는 첫 번째 보고서보다 더욱 포괄적인 내용이었다. 유기농 화학 박사학위 소지자인 싱은 세밀하게 보고서를 확인하다가 ‘납: 17.2ppm’이라고 표시된 부분에서 갑자기 시선을 멈췄다. 정말로 100만분의 17.2란 말인가?
내용을 다시 확인한 싱은 머리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맥기 샘플에는 허용치보다 7배 많은 납이 들어있었다. 네슬레가 주장한 함유량보다 1,000배는 더 많은 양이었다.
납은 공기, 물, 토양 속에 적은 농도로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식품 공급 과정에서 적은 양이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적은 양이 아니었다. 그리고 납은 심하게 노출될 경우, 특히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시키는 심각한 물질이었다.
이틀 후 싱과 그의 동료들은 다시 한 번 이지데이를 단속했다. 이번에는 기준 미달 식품을 판매한 매장의 영업허가를 중지시키고, 오염된 국수 제품을 몰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몰수할 제품이 없었다. 테스트에서 납이 발견된 맥기 샘플은 이미 오래 전에 선반에서 팔려나간 제품 묶음에 속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식품 조사관들이 매장 관리자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강력한 지진이 시작됐다. 선반에서 제품들이 쏟아졌기 때문에 모두 부상을 피하기 위해 한 곳으로 모였다. 지진-이들은 이 지진 때문에 이웃 네팔에서 수천 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이 멈추자, 조사관들은 이 지진이 “대기업 네슬레가 땅으로 추락하며 낸 ‘쾅!’하는 소리”라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 정중하지만 우월감을 드러낸 네슬레의 태도
인도 네슬레 본사는 유리로 벽을 두른 5층 규모의 건물로, 델리 중심에서 외곽으로 30분 가량 걸리는 상업 지구 구르가온 내 8차선 고속도로 변에 위치하고 있다. 네슬레 하우스 Nestle House는 이처럼 세련된 도시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앞쪽 잔디밭에는 가끔씩 돌아다니는 소들이 보이기도 했다.
네슬레는 1912년부터 인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스위스 모회사는 인도 네슬레 지분의 63%를 소유하고 있다(인도 네슬레 주식은 인도 주식거래소에서 별도로 거래되고 있다). 네슬레의 인도 사업은 8개의 공장, 인도인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을 위한 1개의 연구개발 시설, 그리고 7,000명이 넘는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5년 5월 1일, 우타르 프라데시 식품안전청장의 통보와 콜카타 시험소 보고서가 우편을 통해 네슬레 하우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우편은 인도 네슬레에서 품질 및 안전을 총괄하는 기술이사 아리스 프로토노타리우스 Aris Protonotarios의 책상 위로 전달됐다. 부드러운 말투를 가진 그리스 출신 프로토노타리우스는 네슬레에서 25년 이상 잔뼈가 굵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회사의 품질 보증 체계에 자신감이 대단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단 하나의 맥기 제품이라도 납을 포함한 채 공장을 떠나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관계자 누구도 네슬레 제품이 위험하고 해롭다는 말을 들으면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나도 (이 통보를) 모욕으로 느꼈다” 고 말했다.
네슬레 관계자가 보인 이런 태도의 연원은 설립자 앙리 네슬레 Henri Nestle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앙리 네슬레는 스스로를 ‘상업에 종사하는 화학자’로 묘사하며, 1866년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품질에 매우 집착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오늘날 네슬레는 세계 최대 규모와 수익을 자랑하는 기업 중 하나로, 직원 규모만도 33만 5,000명에 이르고 있다.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 70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다국적 기업은 강력한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킷 캣 Kit Kat, 네스카페 Nescafe, 스토우퍼스 Stouffer’s 등이 있다. 맥기도 당연히 그 반열에 포함되어 있다.
맥기는 사실 네슬레에서 가장 오래된 최대 글로벌 브랜드 중 하나다. 1863년 스위스 기업가 줄리어스 맥기 Julius Maggi가 국가 노동인력의 영양 상태 개선을 위해 완두콩과 콩으로 된 농축 스프를 개발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맥기의 양념, 스프, 국수는 현재 101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네슬레가 1983년 인도시장에 맥기를 출시했을 때, 사람들은 국수를 거의 먹지 않았다. 그러나 마살라 맛 양념 믹스엔 친숙했다. 가격이 2루피였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부담도 없었다. 시간에 쫓기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친 결과-이 제품의 잘 알려진 광고 문구는 ‘엄마, 나 배고파’다-맥기는 아이들 간식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곧 주요 간식 거리로 떠올랐고, 판매자가 주문을 받아 국수를 조리해주는 ‘맥기 포인트’도 시장에 널리 퍼져 나갔다.
2015년 무렵 네슬레는 인도 내 8개 공장 중 5곳에서 맥기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프로토노타리우스는 네슬레가 품질보증 체계를 설계할 때, 주의를 기울이는 해로운 성분 중 하나가 바로 납이었다고 주장했다. 각 공장이 정기적으로 원료, 물, 포장에 대한 납 검사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또 인도 네슬레는 인도 현지 규정에 따라 6개월에 한 번씩 모든 공장에서 완제품을 검수하고 있다. 프로토노타리우스는 사무적인 말투로 “만약 괜찮지 않았다면 검수 과정에서 뭔가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발견됐다면,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기록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인도 네슬레는 자체적으로 검수한 내부 문서 파일을 5월 5일 우편을 통해 우타르 프라데시 식품안전청 직원들에게 답변으로 보냈다. 네슬레는 자체 검토 내용을 기반으로, 담당 주 공무원에게 해당 사안에 대해 추가적인 조치가 이뤄져선 안 된다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되돌아보면 이 조언은 놀라울 정도로 상대를 무시하는 처사였다. 앞으로 펼쳐질 더 많은 얘기의 전조이기도 했다. 네슬레는 자체 공정과 데이터에 대한 뿌리 깊은 자신감 때문에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정중하지만 우월감을 드러내는 고고한 태도가 공무원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네슬레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특히 인도 언론이 이 상황을 알아차렸을 때 더욱 그랬다.
■ “우리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미국 언론 환경은 때때로 심하게 과장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인도라는 아대륙 국가의 밤낮 없이 무질서한 언론 환경에 비하면, 미국 언론 환경은 몽유병 정도의 애교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인도에는 거의 400개에 이르는 뉴스 방송국이 존재한다. 뉴스 토론 프로그램에는 종종 한 화면에 8명의 패널이 한꺼번에 등장하곤 한다. 맥기를 둘러싼 논란은 전문가들이 몇 시간에 걸쳐 실시간으로 벌이는 거침 없는 토론의 소재가 될 정도로 매력적인 먹잇감이었다.
한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 눈깜짝할 사이에 전국적인 논란을 일으키는 사건으로 커져갔다. 인도 네슬레가 식품안전청에 답변을 보낸 지 이틀 후인 5월 7일, 맥기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우타르 프라데시에서 힌디어 뉴스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도 네슬레의 소셜미디어 관리 센터 직원들은 트위터와 맥기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오염된 국수 관련 댓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카주리아가 뉴욕에서 늦은 밤 전화를 받은 때는 5월 11일이었다. 채 1주일도 안 돼 맥기의 시장 퇴출에 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네슬레는 5월 21일까지 이 사안에 대해 성명서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 때까지도 네슬레는 ‘판매된 맥기 국수에 대한 리콜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으며 안전하게 제품을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네슬레는 왜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을까? 부분적으론 정부 당국에 대처할 때 관행상 언론을 통하기보단 직접 응대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인도 네슬레 경영진 또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면서 자체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시험을 수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회사 입장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면,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네슬레가 거의 침묵을 지키는 동안 이야기는 일파만파 번져나갔다. 맥기 관련 소식이 처음 뉴스에 보도되던 날, 인도 네슬레의 식품 담당 책임자 마르텐 제라츠 Maarten Geraets는 회사 이사회실 TV 앞에 앉아 어떤 내용이 보도되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끊임 없이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고, 내용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는 채널을 바꾸다가 갑자기 공포와 갑작스러운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맥기 관련 소식이 모든 채널에서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도 네슬레는 마비된 것 같았다. 심하게 말하면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보였다. 많은 인도인들은 이 회사의 침묵을 잘못했다는 표시로 받아들였다. 이야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보도되는 내용은 더욱 다양해졌다. 어떤 뉴스에선 ‘위험한’ MSG를 다루고, 어떤 뉴스에선 납을 집중 조명하는 식이었다. 외딴 지역에선 맥기 제품에 유리 조각이 들어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힌디어로 ‘납’ 과 ‘유리’가 언어적 유사성이 있어 나타난 혼란이었다.
언론의 관심이 점점 심해지면서 압박을 느낀 조직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인도의 식품 안전을 관리하는 식품안전표준국이었다. 평생 공무원으로 재직해온 식품안전표준국의 CEO 유드비 싱 말릭 Yudhvir Singh Malik도 조명을 받았다. 식품안전표준국 CEO로 일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 맥기 스캔들이 터졌다. 짧은 재직 기간에도 그는 이미 여러 다국적기업들과 제품 라벨 표기 및 품질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네슬레는 유명 글로벌 기업이었고, 회사에 불리한 증거도 샘플 2개가 전부였다. 게다가 그 중 하나는 시험소에 도착할 때까지 이상할 정도로 오랜 여정을 거친 상태였다. 그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5월 25일 말릭은 각 주의 식품안전청장들-인도 내 29개 주와 7개의 연방직할령에 존재하는 독립적인 식품 및 약품 규제당국-에게 자체적으로 맥기를 시험하고 그 결과를 6월 1일까지 식품안전표준국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 후 인도 전역의 담당자들이 조사관을 파견해 맥기 제품을 수거했다.
이 때부터 네슬레 스위스 본사의 경영진도 인도 상황이 네슬레 팀의 데이터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 ‘기술적 문제’가 위기로 번지다
네슬레는 소비자들이 흔히 접하는 대기업 중 하나지만, 지리적인 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멀게 느껴지는 업체이기도 하다. 글로벌 사업의 본부로 알려진 ‘센터 Centre’의 경우, 주요 허브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 않았다. 제네바 호수 북쪽 변에 위치한 주민 1만 8,000명 규모의 고요한 소도시 브베이 Vevey에 자리 잡고 있다.
네슬레는 마케팅 경로를 제외하면, 전통적으로 세상과의 접점이 많은 기업은 아니다. 언론의 주목을 끄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으며, 대외 활동 부서도 기업 전체로 보면 그 규모가 매우 작은 편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 중앙 홍보전담팀이 존재하지 않았을 정도다.
스위스의 전형적인 신중함도 부분적인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분유 스캔들로 드리워진 오명의 긴 그림자도 네슬레의 무관심한 태도와 연관이 있다. 1974년 비영리단체 ‘빈곤과의 전쟁(War on Want)’은 ‘아기 살인자(Baby Killer)’라는 제목의 12페이지짜리 팸플릿을 발행한 바 있다. 분유 업계의 마케팅 전략을 맹비난하는 내용으로, 네슬레 같은 기업들이 모유 수유보다 자사 제품을 더 권장하는 바람에 수많은 ‘제 3세계 아기들’의 영양실조와 사망이 야기됐다고 주장한 문서였다. 업계 전체가 표적이었지만, 최대 분유업체인 네슬레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회사 제품에 대한 유명 인사들의 보이콧이 뒤따랐다. 네슬레는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 결과 네슬레 경영진은 브랜드의 대중 접촉에 흥미를 잃었다. 네슬레의 기업 역사를 쓴 앨버트 필프너 Albert Pfiffner는 이에 대해 “그들은 기습을 당했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 감정을 극복하는 데 한 세대 정도의 기간이 필요했다.”
지난 10년 동안 네슬레는 신중한 자사 문화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을 추구해왔다. 바로 CSV로도 알려진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이다. 자연스럽게 사회에 긍정적 부수 효과를 가져오는 지속 가능한 사업을 구축하겠다는 철학이다. 장기 투자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에서 왜 굳이 일회성 자선 사업을 해야 하나? 오늘날 네슬레 경영진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CSV라는 경로를 통해 회사 사업을 이야기한다. 39가지 사회적 약속-‘모든 라벨에 영양 정보와 조언 표시하기’부터 ‘부패 및 뇌물 방지’까지-의 이행 상황을 확인하는 2015 네슬레 CSV 보고서는 그 분량이 351페이지에 달했다. 대조적으로 연간 재정 보고서는 176페이지에 그쳤다.
불케는 ‘센터’에 위치한 여유롭고 우아한 집무실에서, 일종의 ‘주도면밀한 자유방임주의 (mathematical laissez-faire)’를 통해 자신의 글로벌 비즈니스 제국을 다스리고 있다. 그는 네슬레의 지휘계통을 신뢰한다. 마른 체격에 파란 눈을 가진 벨기에 출신으로 6개 국어에 능통한 불케(61)는 1979년 네슬레에 입사했고, 2008년 CEO에 올랐다(현재 유니레버 CEO인 폴 폴먼 Paul Polman을 제치고 발탁된 깜짝 인사였다). 그는 네슬레 정도 규모의 기업이라면 언제든 논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경구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Tall trees catch more wind).’
불케는 자신이 처음 맥기 사태에 대한 보고를 받았을 때, 매우 단순한 기술적 문제로 느꼈다고 말했다. 유능한 현장 직원들이 판단해 처리할 수 있는 시험 기법 같은 문제라고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불케는 필자에게 “그저 ‘분광계 설정(spectrometer setting)’ 같은 문제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생각이 “너무 기계적이었다”고 시인하고 있다.
5월 말이 되자, 불케의 홍보팀에서 해당 사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를 했다. 6월 2일에는 화상 회의를 통해 맥기의 위기 상황을 청취하던 불케에게 분명해진 점이 하나 있었다. 자신의 계산 실수가 너무 컸고, 지금이 바로 자신이 개입할 때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며 “군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선 뭔가 행동을 보여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바로 다음 날 불케는 인도로 출발했다.
■ CEO의 끔찍한 24시간
6월 4일 인도에 도착한 불케는 주요 경영진이 식품안전표준국 방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날 아침 10시 30분 규제 당국이 전화를 걸어, 오후 1시 미팅에 참석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경영진은 논의 내용을 명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불케가 참석할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그가 ‘너무 고위급’이라는 점을 우려했다.
편안하면서도 권위 있는 태도를 가진 불케는 이런 걱정을 단칼에 일축했다. 그는 “여러분, 그게 내가 여기에 온 이유에요”라고 말했다.
그 후 불케와 그의 팀이 식품안전표준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회의실에서 말릭과 또 다른 관계자 건너편에 자리를 잡았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인도 네슬레 팀은 여러 주로부터 시험 보고서를 받지 못했다고 항의한 후, 시험 방법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말릭은 네슬레가 직접 각 주에 시험 결과를 요청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절차가 적절했다는 반론도 펼쳤다.
이야기를 듣던 불케는 양측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알 수 있었다. 후에 그는 이 미팅에 대해 회상하면서 “집이 불타서 무너지고 있는데 화재 원인을 두고 두 명의 소방관이 다투는 것 같았다”고 묘사했다.
당국의 강력한 조치를 감지한 불케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거의 결정했다고 한다. 네슬레 스스로가 자발적 리콜을 수행해 모든 맥기 제품을 매장 선반에서 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볼케의 결심은 그 날 오후 각 주의 국수 제품 퇴출 조치로 더욱 굳어졌다. 첫 번째 시장 퇴출 조치는 인도 북쪽에 위치한 우타라칸드 Uttarakhand 주에서 나왔다. 거기는 네슬레의 맥기 생산 공장 5개 중 하나가 있는 곳이었다. 곧이어 5개 주와 직할령에서 동일한 조치가 뒤따랐다. 그 중에는 수도가 있는 델리 주도 포함돼 있었다.
불케는 경영팀을 네슬레 하우스 5층 이사회실에 소집한 뒤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당시는 규제 당국도 언론의 통제도 잃은 상태였다.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그리고 소비자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는-유일한 방법은 맥기를 시장에서 철수했다가 재출시하는 것이었다.
물론 리콜은 엄청난 작업이었다. 그들이 리콜 대상으로 삼은 제품은 350만 개 대리점에 퍼져 있었다. 게다가 그 곳은 관료주의가 뿌리 깊은 인도였다. 29개 주 하나하나가 모두 국가와 다름 없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건 트럭이 주 경계마다 멈춰서 검문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차량은 정해진 시간에만 도시에 진입할 수 있고, 정해진 크기의 트럭만 통과할 수 있다. 전국에 38개의 유통 센터가 있었지만, 인도 네슬레 제품 중에는 시장에 도달하는 데에만 13일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네슬레는 이 과정을 거꾸로 설계해야 했다. 또 모든 국수 제품에 대해 뭔가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케의 의지는 흔들림이 없었다.
네슬레는 이 소식을 발표하기 위해 다음 날 정오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그리고 오전 12시 30분인도 주식거래소에 짧은 성명서 하나를 보냈다. ‘맥기 국수는 안전하지만, 인도 네슬레는 제품을 선반에서 내리기로 결정했다.’
그 후 카주리아가 말릭에게 ‘매대에서 매기 국수를 빼기로 결정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불케도 숙소로 향했다. 그는 “그날은 아주 잘 잘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고된 여정의 시작
그러나 인도 식품안전표준국의 수장은 전개되고 있던 상황에 만족하지 못했다. 맥기가 시장에서 사라지긴 하겠지만, 제품 안전성을 주장하는 네슬레 언론 성명서의 내용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는 전국에 있는 시험소로부터 반대되는 내용의 증거를 계속 수집했다.
규제 당국도 맥기에 대해 전국적인 임시 퇴출을 명함으로써 네슬레의 움직임에 대응했다.
네슬레가 오후 12시에 기자회견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말릭은 8페이지짜리 명령서를 내놓았다. 모든 종류의 맥기 국수에 대한 제품 승인 철회가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네슬레 측이 15일 내에 그 이유를 제시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오전 11시 15분 이메일을 통해 인도 네슬레에 이 명령서를 전달했고, 이 사실은 불케의 기자회견 도중 알려졌다.
기자회견은 델리의 오버로이 호텔 Oberoi Hotel 내 천장이 높은 홀에서 진행됐다. 공지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홀은 기자들로 가득 찼다. 인도 뉴스 채널들은 CEO의 발언을 내보내기 위해 방송 스케줄을 조정하기도 했다.
불케는 인사말을 5분 내로 정리해 몇 가지 요점을 강조했다. 맥기는 안전하며 소비자 신뢰가 근거 없는 우려로 흔들렸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네슬레가 현재 정부 당국과 협조하고 있으며, 인도시장에 헌신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200명의 기자들이 불케에게 질문 공세를 펼치면서 홀 전체가 들썩거렸다. 네슬레는 왜 성명서를 발표하는 데 2주나 걸렸나? 맥기가 안전하다면, 정부 시험소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불케는 부인했고, 정부 과학 수준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45분 동안 커다란 잔에 든 탄산수 페리에 Perrier를 연신 들이키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불케는 그 날 저녁 늦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거의 24시간 동안 인도에 있었지만, 상황이 더 악화된 것 같았다. 그럼에도 곧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인도를 떠났다. “고된 여정의 첫걸음이었다.”
■ 결국 소송으로 가다
다음 단계는 법정에서 펼져질 상황이었다. 식품안전표준국은 인도 네슬레에게 명령서에 답하는 기간 15일을 주었다. 그리고 맥기의 제품 승인을 영구히 철회할 수도 있다고 위협을 가했다. 네슬레는 답변을 통해 해명을 하거나 소송을 진행해야 했다.
맥기 외에도 인도 네슬레의 다른 여러 제품을 규제하는 식품안전표준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식품안전표준국 명령서에 쓰인 6개의 단어가 특히 네슬레 경영진을 신경쓰게 만들었다. ‘사람이 섭취하기에 안전하지 못하고 위험하다(unsafe and hazardous for human consumption)’ 는 문구였다. 경영진은 이 표현이 자신들을 법적 다툼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인도 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맥기를 사먹고 있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이 네슬레 국수 제품을 원인으로 꼽는다면 무엇으로 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
임시 퇴출 조치가 나온 지 6일이 지난 6월 11일, 인도 네슬레는 식품안전표준국 상대 소송을 봄베이 고등법원을 통해 제기했다.
맥기 소송은 여름 동안 진행됐고 그 자체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소송의 주요 쟁점은 맥기를 시장에서 퇴출시킨 정부 명령의 합법성 여부였다.
네슬레의 주장은 인도 식품안전표준국이 회사에 적절한 해명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명령서를 발행해 ‘자연적 정의의 원칙(principles of natural justice)’을 위배했다는 것이었다. 해당 조치로 인해 막대한 재정적 손실을 보았고, 회사 명성에 지울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한발 더 나아가 네슬레는 명령서 발행의 근거가 미흡하다고 반박했다. 공인 받지 않은 시험소에서 부적절한 시험 방법을 이용해 도출한 선택적 결과를 기반으로 명령서를 발행했다는 주장이었다. 식품안전표준국은 여러 주 시험소에서 진행된 72개의 맥기 샘플에 대한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시장 퇴출 명령을 내렸다. 이 중 30개 샘플에서 많은 납 성분이 나왔지만, 이 위기를 촉발한 보고서만큼 높은 샘플은 하나도 없었다. 네슬레는 납 성분의 양이 허용치보다 높지 않다는 압도적인 증거-네슬레가 당시 내부 및 외부 시험소로부터 제출 받은 약 2,700건의 보고서-를 정부가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정부측 주장은 공공의 안전을 위해 임시 퇴출 명령을 급하게 내릴 수밖에 없었으며, 말릭이 6월 4일 네슬레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 충분히 해명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또 정부는 해당 명령서가 네슬레에 부당한 해를 전혀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이미 맥기를 리콜한 상태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정부의 시장 퇴출 조치는 임시적인 것으로, 그 기간은 15일에 불과했다. 네슬레가 만족스러운 답변만 제공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는데, 제품이 안전하지 않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네슬레는 자체적으로 수거한 맥기 제품 3만 7,000톤을 소각하기로 결정했는데, 회사가 완벽하게 안전한 제품을 왜 리콜하고 불태웠겠는가? 정부 명령서에는 네슬레가 국수 제품을 소각해야 한다는 명령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비록 규제 담당자들이 이를 허용했지만). 규제 당국은 이러한 행동이 은폐 시도에 다름 아니며, 네슬레가 제출한 수천 개의 시험 결과도 쉽게 조작될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 중요한 질문
그렇다면 네슬레의 국수 제품은 납을 함유하고 있었을까?
맥기 사태에서 가장 견해차가 크고, 가장 혼란스럽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갈등은 외견상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에 단초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도 내 여러 주 정부는 맥기 샘플을 시험했고, 납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보고했다. 네슬레는 자체적으로 수천 번의 시험을 진행한 결과 문제가 없었다고 발표했다. 누가 옳은 것일까?
납 성분 시험은 첨단 시험 장비를 통해 쉽게 진행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또한 명확하고 믿을 만하다. 인도 주요 사설 실험업체 중 하나인 에퀴녹스 랩스 Equinox Labs의 CEO 애슈윈 바드리 Ashwin Bhadri는 정부 시험소 애널리스트가 비록 기업 애널리스트들에 비해 임금은 적은 편이지만 훈련과 교육은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시험소들이 끔찍할 정도로 자원 부족을 겪고 있으며, 장비 또한 낡은 것만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바드리는 “20년 된 장비도 존재한다”며 “장비를 운영할 수 있는 인력이나 화학물질도 없다.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맥기 판매 금지 조치가 내려지고 일주일이 지난 후, 콜카타 중앙식품시험소(Central Food Laboratory) 전임 소장 사티아 프라카시 Satya Prakash가 총리 집무실과 인도 보건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국가의 국수 제품 시험 표준이 충분치 않다’는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퇴임한 프라카시는 2013년 ‘시험소의 작업 환경이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다’는 통렬한 내용의 기사를 언론에 게재한 바 있다.
이와 정반대로, 네슬레의 인도 품질보증 센터(Quality Assurance Center)는 모가 Mona 지역에 있는 깔끔한 네슬레 기업 캠퍼스 한 가운데에 유리 보석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 빳빳한 흰색 시험소 가운을 입은 과학자 한 명을 건물 로비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필자를 따뜻하게 맞았지만 곧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신속하게 정부 시험소와 자신이 보여주려는 깨끗한 최첨단 공간과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는 “정부 시험소의 경우, 식품 샘플을 섞는 과정에서 저렴한 국산 블렌더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반면 네슬레는 5,000달러짜리 오염 방지 티타늄 블레이드를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네슬레의 경우 값비싼 자기 용기에 물질을 담고 있지만, 정부 시험소는 아마도 침출 같은 것이 발생하는 값싼 세라믹 용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그 곳에 있어 보니, 그런 환경에서 오염이 발생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네슬레의 자금력과 품질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도 다른 안전 관련 리콜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3월에는 미국에서 ‘유리 조각의 존재 가능성 때문에’ 자발적으로 디지오르노 DiGiorno, 스토우퍼스, 린 퀴진 Lean Cuision 제품 300만 개를 리콜하기도 했다.
식품업계 전문가들을 포함해 수많은 인도인들은 여전히 맥기에 문제가 있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 많은 정부 시험이 모두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네슬레 공장 중 한 곳에서 작은 문제가 발생해 납에 오염된 물, 원자재 혹은 오래된 장비-계약직 직원들에 대한 관리가 느슨하다는 문제도 있다-가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확실한 답이 없는 상황에서 차선책은 법정 판결이었다.
■ 음모론이 창궐하다
봄베이 고등법원이 맥기 소송의 사실 관계를 따지는 동안, 인도에선 이미 뜨거운 쟁점이었던 논란이 이 사건 때문에 더욱 가열되고 있었다. 외국계 거대 기업의 인도 진출이 국가 차원에선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이 때 요가 지도자가 등장한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인도 내의 불신은 그 뿌리가 깊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 나긋나긋한 태도를 보이지만 가장 강력하게 이를 비난하는 인물은 아마도 바바 람데브 Baba Ramdev일 것이다. 람데브는 화려한 요가 지도자이자, 인도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소비자제품 업체의 얼굴이기도 하다. 람데브(50)는 긴 머리에 어둡고 덥수룩한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샤프란 색상의 샅바를 매고 TV 요가를 진행해 유명세를 탔다. 그는 인기를 등에 업고 2006년 아유르베다식 (*역주: 식이 요법 약재 사용 · 호흡 요법을 조합한 힌두의 전통의술) 제약업체 파탄잘리 아유르베드 Patanjali Ayurved를 설립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끊임 없이 확장하는 그의 천연 제품 라인에 추종자들이 모여들었다(치약과 식용 버터 ‘기 ghee’가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이다). 그가 파는 제품은 매우 저렴하다. 외세척결을 의미하는 스와데시 swadeshi 또는 인도 국산품으로 홍보되고 있다. 이 업체는 글로벌 거대기업 콜게이트 Colgate와 유니레버의 시장 점유율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다.
람데브는 다국적 기업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는 다국적 기업들이 인도에서 돈을 가져가고 질병을 들여 왔다고 비난하며, 코카콜라와 서양 스타일의 가공 식품을 ‘천천히 퍼지는 독(slow poison)’이라 부르고 있다.
많은 소셜미디어 입장에선 네슬레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그냥 넘길 수 없는 호재 그 자체였다. 트위터와 왓츠앱 WatsApp은 ‘바바 람데브가 이 스캔들을 배후 조정했거나, 자신의 파탄잘리 인스턴트 국수를 출시해 구원자처럼 기회를 낚아챌 것’이라고 그럴 듯한 추측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6월 중순, 람데브는 수 개월 동안의 연구를 거쳐-그는 맥기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이라고 했다-파탄잘리가 인도 국내 재료를 쓴 통밀 국수를 2015년 말 출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 요가 지도자는 네슬레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6월 초 “맥기는 사과를 해야 한다”며 “정부가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자 한다면, 네슬레에게 짐을 싸서 이 나라를 떠나라고 요구해야 한다. (우리에겐) 독극물을 판매하는 기업은 필요 없다” 고 역설했다.
그러나 6월 30일 봄베이 고등법원의 평결은 네슬레에게 약간의 안도감을 주었다. 수출용 맥기 생산을 재개할 수 있도록 허가를 한 것이었다. 싱가포르와 호주는 이미 맥기 국수 제품이 판매와 섭취에 안전하다고 발표한 상황이었다. 캐나다, 영국, 미국 또한 몇 주 내로 같은 발표를 할 예정이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앞서 얘기한 선진국 소비자들에게 문제가 없다면, 왜 인도인들에겐 그렇지 않다는 것일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필자는 인도 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로부터 “수출용 제품은 당연히 안전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네슬레는 고품질의 제품은 다른 국가에 판매하고, 전통적으로 국민과 관계 당국이 덜 까다로운 인도에선 수준이 떨어지는 제품을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네슬레가 납에 오염된 국수를 의도적으로 판매했을 뿐만 아니라, 후에 은폐 시도까지 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여러 음모론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필자가 인도에 머무는 동안 들었던 가장 일반적인 얘기는 ‘이 사건 뒤에 정치가 연관돼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이와 관련해 더 깊은 얘기를 요구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말을 하곤 했다. 어떤 사람은 인도와 스위스의 금융 비밀에 관한 외교 관계가 냉각된 점을 지적했고, 다른 사람은 네슬레가 부패 공무원에게 ‘정치 헌금’을 거부해 함정에 빠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생각할 수 있는 음모론은 끝이 없이 나오고 있다. 그 대부분은 인도 몇몇 지역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리스크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 Eurasia Group의 킬빈더 도산지 Kilbinder Dosanjh 소장은 맥기 사태에 대해 “인도의 독특한 정치적 동력이 작용했다기보단 정부기관들의 약점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음모론과는 배치되는 해석이다. 일관성 없는 규제 탓이라는 얘기다. 그는 “국수 제품 시험은 여러 단계의 기관을 거쳤다”며 “각 주의 기관과 중앙 기관이 개입하면서 누가 책임이 있고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가 복잡해졌다”고 설명했다.
■ 마침내 좋은 소식이 날아들다
네슬레는 고등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던 동안 홍보 노력을 대폭 강화했다. 재판 관련 사안에 대해선 침묵을 지켰지만, 자사 웹사이트에 맥기 정보 허브를 신설해 방문자들이 시험소 보고서와 MSG 관련 글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자체적인 리콜 노력도 홍보했다. 그리고 기자들을 초청해 모가에 있는 자사 품질보증 센터 투어도 진행했다.
인도 네슬레는 7월 말 수레시 나라야난 Suresh Narayanan을 최고 경영진에 합류시켜 든든한 지원군을 만들기도 했다. 나라야난(56)은 10년 간 네슬레를 위해 세계 곳곳을 누볐던 인물이다. 4년 동안 활발하게 이집트, 리비아, 수단에서 네슬레 사업을 운영했고, 2015년 4월에 막 필리핀으로 자리를 옮긴 상황이었다. 나라야난은 맥기 사태가 불거졌을 때 자신의 상사이자 네슬레 아시아 · 오세아니아 · 아프리카 지부장을 맡고 있던 완 링 마텔로 Wan Ling Martello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다시 한 번 자리를 옮겨달라는 부탁이었다. 마텔로는 나라야난에게 “인도가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 출신으로 열정적인 성격을 가진 나라야난은 구르가온의 네슬레 판매 부서에서 경력을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도 인도 네슬레 직원 다수와 시장을 잘 알고 있다. 전문가이자 위기 관리자로서의 훌륭한 능력도 입증된 인물이다. 예컨대 싱가포르에선 금융 위기 시기에 사업을 맡았음에도 성숙기 시장에서 판매량을 늘리는 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나라야난은 즉각적으로 인도 네슬레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끌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는 도착 첫날부터 인도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1주일 뒤에는 45분간 CNBC 생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첫 번째 임무는 “맥기를 복귀시키는 일”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곧 미래를 예견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라야난이 인도에 도착하고 몇 주가 지난 8월 13일, 네슬레 소송에 대한 봄베이 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긴 145페이지짜리 판결문을 통해 네슬레의 손을 들어주었다. 시장 퇴출 조치를 뒤집어 인도 식품안전표준국이 자의적인 명령을 내렸다고 판결했다. 그 결과 인도 네슬레는 조건부로 맥기 판매를 재개할 수 있었다. 인도 연구소승인위원회(National Accreditation Board for Testing and Calibration Laboratories)가 승인한 3개 시험소에서 향후 6주 간 추가로 총 90개 샘플에 대한 납 성분 시험을 실시해 이를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있었다.
인도 네슬레 경영진은 이사회 실에 모여 TV로 판결 내용을 시청했다. 나라야난은 좋은 소식이라는 점이 분명해질 때까지 문자 메시지로 브베이에 있는 마텔로에게 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문자를 하나 더 보냈다. ‘우리가 이겼어요 우리가 이겼어요 우리가 이겼어요.’ 거기엔 웃는 표정의 이모티콘도 붙어 있었다.
■ 인도에 국수 제품이 돌아오다
맥기의 재출시는 11월 9일 월요일로 예정돼 있었다. 정부의 시장 퇴출 조치가 내려진 지 5개월 4일이 되는 날이면서, 단테라스 Dhanteras로 알려진 인도의 길일(吉日)이기도 했다. 힌두교 빛의 축제인 디왈리 Diwali 첫째 날이자, 건강과 번영을 가져다 주는 날이기도 했다.
네슬레는 10월 봄베이 고등법원으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은 후 몇 주간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인도 네슬레는 매장 선반에서 수 개월간 자취를 감췄던 맥기의 수요를 재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회사 마케팅 부서는 너그럽고 충성도 높은 고객층으로 증명된 젊은 소비자들부터 공략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실 이번 사태가 시작됐을 때부터 맥기의 복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다. 네슬레는 이들을 위해 유튜브에서 #WeMissYouToo 캠페인을 시작했다. 잘생긴 독신자들이 등장해 인스턴트 국수가 없어 쓸쓸하다는 멘트를 날리는 1분짜리 비디오 시리즈였다. 주부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실제 엄마들을 등장시켜 그들이 왜 여전히 맥기를 신뢰하는지 증언하는 비디오도 내보냈다.
네슬레는 상징적인 이유 때문에 첫 날부터 제품을 최대한 광범위한 지역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인스턴트 국수 제품을 실은 트럭들이 화려한 장식용 술과 데칼로 인도 풍 치장을 하고, 자정 직후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제품 포장에 붙어 있던 ‘무 MSG’ 라벨은 ‘당신이 항상 믿을 수 있는 좋은 것에 대한 우리의 약속’이라는 새로운 내용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나라야난은 수십 번의 인터뷰를 통해 ‘맥기는 안전하고, 예전에도 안전했으며, 앞으로도 항상 안전할 것’라는 단순한 메시지를 다양한 형태로 반복 전달했다. 네슬레 사이트에선 맥기를 먹는 전국적인 축하 퍼포먼스가 펼쳐지기도 했다.
브베이에서도 자축은 이어졌다. 조리된 맥기 국수가 이사회 미팅 때 제공됐다. 이 인스턴트 국수는 4개 코스 요리 중 두 번째였으며, 그 앞뒤로는 테린 세인트-휴버트 Terrine Saint-Hubert와 크렘 드 캐비어 다키텐 cr?me de caviar d’Aquitaine을 곁들인 튀긴 철갑상어가 서빙됐다.
■ 멀리 내다보다
맥기 국수가 매장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 대장정의 서사시가 끝나지는 않았다. 대규모 재출시가 있은 후 첫 번째 월요일에 식품안전표준국이 인도 대법원에 봄베이 고등법원 판결에 대한 항소를 제기했다. 그리고 또 다른 법정 소송도 진행되고 있다. 시장 퇴출 조치가 해제되기 하루 전인 2015년 8월 12일, 인도정부는 네슬레를 상대로 9,9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인도 국립분쟁조정위원회(National Consumer Disputes Redressal Commission)가 소비자를 대신해 제기한 이 소송은 식품안전표준국의 명령서와 동일한 문제를 주장하고 있다. 네슬레가 안전하지 않은 제품을 판매하고, 광고 등을 통해 소비자들을 호도했다는 것이다. 두 소송 모두 현재 인도 법정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와중에서 네슬레는 새롭고 약삭빠른 국수 시장 경쟁자를 마주하고 있다. 맥기가 재출시 되고 1주일 후, 바바 람데브가 자신의 새로운 파탄젤리 국수를 출시한 것이다. 이 제품은 ‘건강에 더 좋은’ 통밀 가루 아타 atta을 원료로 쓰고 있고, 가격도 동급 네슬레 맥기 제품보다 10루피 더 저렴하다. 델리의 한 쇼핑몰에서 법복을 입은 채 미디어 시청자 용 제품 하나를 빠르게 요리하던 이 요가 지도자는 파탄젤리 제품에 납과 MSG가 들어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를 했다. 그리곤 카메라를 보며 국수를 후루룩 들이켰다. 그의 턱수염엔 국수 가락이 달라붙어 있었다.
현재 맥기 사태에 관련된 다른 인물들의 운명은 모두 갈린 상태다. MSG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 모든 위기를 촉발했던 조사관 산자이 싱은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1월 바라반키 공무원상을 받았다. 식품안전표준국 CEO 말릭은 봄베이 고등법원 판결 1개월 후, 보직 해임돼 인도 중앙계획위원회 ‘차관보’로 자리를 옮겼다. 한편 몇몇 인도 정부 관계자들은 지금도 네슬레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그들은 최근 네슬레가 마케팅 활동을 펼치며 내세운 ’맥기는 안전하고, 예전에도 안전했으며, 앞으로도 항상 안전할 것이다‘라는 문구를 오만한 주장이라며 거슬려 하고 있다. 인도 내에서 사업 촉진을 하기 위해 브랜드 인디아 Brand India를 홍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맥기 사태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사례가 되고 있다.
네슬레는 불케와 그의 팀이 맥기 위기에 완벽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자체 의사결정 과정은 정상적-특히 언론에 대한 대응보다 규제 당국과의 의사소통을 우선시한 선택-이었다며 방어를 했다. 단기 결과가 아닌 장기적인 결과를 염두에 두고 위기를 관리했다고 말하고 있다. 불케는 “네슬레는 100년 동안 인도에 있었다”고 강조한 뒤 “앞으로도 100년 더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규제 당국과의 관계가 엉망이라면 한 국가에서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걸 암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어쨌든 글로벌 기업 네슬레는 가장 전도유망한 시장 중 한 곳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인도 네슬레의 대표 나라야난은 “인도에서 문제를 관리하려면, 일정 수의 알려진 집단과도 상대해야 하지만 훨씬 많은 수의 알려지지 않은 집단과도 상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린 누가 어떤 총알을 쏠지 계속 예측을 해야 한다. 대체 다음 번 총알은 어디에서 날아올까? 어둠 속에서 총에 맞는 일과 비슷하다.”
네슬레가 다음에도 총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들은 아마 몸을 숙일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 맥기 위기에서 네슬레가 저지른 4가지 실수 ◇
네슬레는 다방면에서 쉽지 않은 문제와 마주쳤다. 공포에 질린 대중, 몰려드는 언론, 양보하지 않는 규제 당국, 그리고 항상 어려운 인도 내 사업 운영 환경까지 직면해야 했다. 네슬레가 미숙한 모습을 보인 4가지 주요 사안을 살펴보자.
1. 자부심이 눈을 가렸다.
네슬레 경영진은 자사 제품과 안전 관리에 대해 과신했고, 다른 이들이 자신들과 똑같이 제품을 신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경각심을 가진 규제 당국과 소비자들을 대하면서 공감 능력 부족도 드러냈다. 인도인들이 맥기에 납이 많이 들었다는 보도를 접하는 동안에도, 네슬레는 대부분 침묵을 지키면서 정형화된 법리적 성명서만 발표했다. CEO 폴 불케는 회사가 규제 당국을 상대할 때 정당성만 고집하는 바람에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가로 막았다”고 지적했다.
2. 가까운 앞날도 내다보지 못했다.
네슬레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위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때에도 부족함을 드러냈다. 수주에 걸친 맥기에 대한 조사가 지역적 사안에서 전국 규모의 스캔들로 번지고 중앙 규제 당국이 이에 개입할 때까지도 네슬레는 무방비상태였다. 그러는 동안 언론의 공세는 거세지기만 했다. 물론 네슬레에게도 당국과 대화하겠다는 의지는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가능성- 대화가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을 고려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3. 역사적 맥락을 간과했다.
인도의 사업 환경은 미국이나 스위스와는 다르다. 처음부터 네슬레는 맥기 사태를 순전히 기술적인 사안으로 간주하고 사회정치적 요소들을 간과했다. 터프츠 대학교 글로벌 환경 비즈니스 연구소(Institute of Business in the Global Context) 소장 바스카 차크라보티 Bhaskar Chakravorti는 “인도가 오랜 동안 가져왔던 우려, 다시 말해 인도인 입장에서 식민지 역사가 또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맥락을 이해하는 사고를 해야 한다”며 “’어떻게 이해심을 보이고 지배자라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다가설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4. 소통은 했지만 진정성이 부족했다.
네슬레는 뒤늦게나마 의사 소통에 나섰지만,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선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태도를 보였다. 불케가 6월 5일 기자회견을 하기 전까진 회사의 거취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인도 홍보업체 토크 커뮤니케이션스 Torque Communications의 CEO 수프리요 굽타 Supriyo Gupta는 언론에 대해 보수적 태도를 보이는 네슬레의 오랜 관행을 비판했다. “자사 입장에 다가서도록 만드는 데 필요한 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 기자들을 끌어들여 원하는 방식으로 설명을 하는 체계나 과정도 없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ERIKA F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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