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 기업인 현대모비스가 자율주행차 기술 연구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스마트카 부품 전문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전략 아래 연구개발 인력 확충과 투자 확대, 인프라 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마북리에 위치한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를 방문해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 상황을 둘러봤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2020년이 지나면 도로에서 자율주행차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먹을거리로 급부상하면서 완성차 업체는 물론, 자동차 부품·IT 업계까지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합종연횡과 전략적 제휴, 인재 영입 경쟁은 이미 본격화됐다. 이제는 과감한 투자와 장기적인 안목으로 ‘가격 경쟁력 있는 시장 선도 기술을 누가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 기업인 현대모비스도 자율주행차 기술 연구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5월 3일 경기도 용인시 마북리에 위치한 기술연구소의 시험동을 공개했다. 현대모비스는 이곳 기술연구소에서 자율주행차 기술 독자 개발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2020년 이후 자율주행차 상용화 시대에 맞춰 고부가가치 핵심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첨단 실험 장비·시설 눈길 끌어
이날 공개한 기술연구소 내부에는 안전하고 정교한 품질 테스트를 위한 다양한 시험 장비들이 갖춰져 있었다. 기술연구소 로비에서 완성차에 들어가는 여러 신기술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들은 뒤 3층부터 내려오며 시설을 살펴봤다. 먼저 3층에 위치한 멀티미디어 자동화평가실을 둘러봤다. 이곳은 차량에 탑재하는 오디오·비디오,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안정성을 테스트하는 곳이다. 사람보다 로봇이 더 많이 보였다. “지잉~지잉~틱틱~.” 커다란 투명상자 안에 들어있는 로봇이 쉴 새 없이 내비게이션 스크린 이곳저곳을 누르고 있었다. 로봇 옆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 화면엔 알아보기 어려운 컴퓨터 코드들이 떠 있었다. 몇 명 되지 않는 연구원들은 가끔씩 이를 들여다보며 분석할 뿐이다. 실험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람 머리 모양의 말하는 로봇이 오디오·비디오 시스템의 음성인식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2층으로 내려와서는 ‘사용자 경험 연구실 UX(User Experience) LAB’으로 들어갔다. 실험실 분위기가 아늑했다. 입구엔 편안한 소파와 다양한 잡지들이 놓여 있었고, 따뜻한 색조의 실험실 조명이 깔려 있어 심리적 안정감을 줬다. 연구소라기보다 음악감상실에 가까운 분위기다. 이곳에선 운전자의 주행 중 인지 변화를 연구한다. 차량 시뮬레이터를 설치해 가상 주행 환경을 만들어놓고 운전석 앞 유리에 시선 추적기를 달아 놓았다. 이 기기가 주행 중 운전자의 행동 변화를 확인한다.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연구원들은 운전자의 주의 분산을 최소화해 오디오와 내비게이션 등 멀티미디어 기기를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사용 패턴을 찾아낸다.
설명을 맡은 연구원이 말했다. “이곳에선 운전자가 시뮬레이터를 통해 가상 주행 상황을 연출, 멀티미디어 기기를 사용하는 운전자의 행동을 체크하고 최적 패턴을 연구합니다. 모집을 통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하죠.”
1층에 자리한 모터 다이나모미터(dynamometer·엔진에 의해 발생되는 동력을 측정하는 장치) 실험실은 친환경차에 필수적인 전기 모터나 인버터에 대한 성능과 내구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었다. 열이 많이 나는 환경 때문에 에어컨디셔너를 켜놔 서늘했다. 모터 다이나모미터 실험실 연구원이 설명한다. “실험실 온도는 25도에 맞춰지며 125kW급의 소형부터 250kW급 상용 제품까지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내구성 테스트는 최대 80일 동안 진행하기도 하는데 다양한 주행상황에서 모터에서 발생하는 부하 변동, 온도 변화 등을 평가합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전파무향실이었다. 현대모비스의 큰 자랑거리 중 하나다. 자동차의 각종 전장부품들이 강한 전자파에 노출됐을 때 오작동 여부를 검증하는 곳이다. 최근 자동차가 점점 똑똑해지면서 첨단 센서들과 전자기기 탑재가 늘었고 기기들 간에 간섭이 생기는 문제도 함께 늘고 있다. 이곳에선 전장부품들 간의 전자파 간섭 현상을 미리 방지하는 실험을 진행한다. 실험실 바닥을 제외한 나머지 벽은 전자파를 분산시키는 카본과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져 탁 트인 대지에서 실험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물론 실험실엔 전자파 위험 탓에 사람이 들어갈 수 없고, 자동차가 들어가는 전파무향실은 다른 실험동에 설치해 놓았다.
새로운 자동 주차기술 선보여
전파무향실을 빠져나오자 자동 주차기술 시연과 체험 순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현대모비스는 새로운 자동 주차기술 두 가지를 선보였다. 먼저 ‘원격 전자동주차’는 운전자가 차량에서 하차한 이후 자동차가 스스로 주차하는 기술이다. 한 연구원이 주차장에 세워둔 쏘울 전기차 운전석에 앉았다. 차가 스르륵 움직이며 주차공간을 훑고 지나갔다. 빈 공간을 발견한 뒤 연구원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키를 꺼내 들고는 버튼을 한번 꾹 눌렀다. 아무도 타지 않은 쏘울 전기차의 운전대가 저절로 스르륵 돌더니 빈 공간에 뒷꽁무니를 밀어 넣었다. 곁에 있던 연구원이 설명했다. “차량 전후방과 측방에 설치한 초음파 센서로 옆에 주차된 차량을 인식해 부딪치지 않도록 공간을 확보하며 들어갑니다. 최적의 주차 궤적을 자동으로 생성해 조향, 변속, 제동의 전 과정을 차가 스스로 진행하고 있어요. 주차가 끝나면 원격으로 시동을 끌 수 있는데,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지금 보신 장면을 원격 전자동주차라고 합니다.” 그는 “아직은 기술 개발 단계지만 평행과 직각 주차도 80㎝의 여유 공간만 있으면 원격 주차가 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현재 주차 보조 시스템은 주차되어 있는 차량을 초음파 센서로 인식해 차량과 차량 사이의 빈 주차 공간을 인식한다. 그런데 초음파 센서는 강한 바람을 장애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현대모비스는 사람의 눈으로 확인하듯 카메라를 통한 주차공간 인식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기존 주차 보조 시스템에서 좀 더 진화한 방식이다. 이 기술은 초음파 센서와 함께 차량 주변을 비춰주는 카메라가 작동해 차와 주차선을 인식한다. 따라서 옆에 차가 없어도 주차할 수 있다.
주차선을 보고 주차하기 때문에 주차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단, 차량 안에 운전자가 탑승해 있어야 한다. 실제론 어떤지 이번엔 뒷좌석에 동승했다. 차량이 시키는 대로 후진 기어를 넣고,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만 조작하면 끝이었다. 현대모비스는 현재 악천후나 어둠, 주차선 훼손 등의 악조건에서도 적용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는 자율주행차 핵심 기술 개발을 단계적으로 실현해가고 있다. 자율주행 구현에 반드시 필요한 차선이탈방지, 차선유지보조, 긴급자동제동, 지능형 주차 보조시스템, 스마트크루즈컨트롤 등 ‘지능형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 기술은 이미 상용화했다. 나아가 부분 자율주행에서 완전 자율주행으로 진화하는 데 필요한 고성능 융복합 센서와 고정밀 지도 등에 대한 기술 고도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2020년까지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
현대모비스에 따르면 자율주행은 레벨0(위험경고)에서 레벨4(전체 자율주행)까지 총 5단계로 나뉜다. 현재 일부 상용화된 기술 수준은 레벨2(운전자 판단 하에 이뤄지는 주행 자동화)다. 현대모비스는 오는 2020년까지 레벨3을 목표로 하고 있다. 레벨3은 부분 자율주행 단계로 운전자가 손과 발을 자유롭게 두면서 고속도로 주행과 같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주행 상황을 주시하지 않아도 된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자율주행차의 수준, 즉 운전자가 상황을 살피지 않아도 주행이 가능한 수준은 레벨3 이상이다.
자율주행차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V2X(vehicle to anything) 연계 시스템이 필요하다. V2X 연계 시스템은 통신영역 360도 반경에 위치한 V2V(vehicle to vehicle) 단말기가 탑재된 모든 차량을 감지할 수 있다. 또한 GPS와 V2V 통신을 통해 주변 차량의 주행상황을 실시간으로 인지한다. 또 V2I(vehicle to infrastructure) 통신을 통해 교통 인프라와 연동도 가능하다. 따라서 운전자 지원 시스템에 장착된 센서가 감지하지 못하는 위치의 차량에 대한 대응이 가능하다.
하지만 V2X 연계 시스템이 널리 쓰이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단말기 장착률은 60% 이상이어야 하며, 인프라 구축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측정 위치 정확도는 최대 90%에 무선 통신 수신율 100%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또 V2X 단독으로는 일부 경고 기능만 가능하며 차량 제어에도 어려움이 있다.
정태영 지능형 차 연구소 책임연구원이 말한다. “현재 센서 기반의 자율주행과 통신 기반(V2X)의 자율주행기술을 병행개발 중이에요. 지금은 선진업체와 기술격차가 있지만 자율주행차 상용화 시점이 2020년 이후가 될 전망이니 이에 맞춰 고부가가치 핵심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입니다.”
현대모비스는 올해 6월 초 국토교통부로부터 현재 개발 중인 자율주행 시스템의 개발과 검증을 위한 임시운행 허가증과 번호판을 발급받았다. 국내 자동차 부품사가 정부로부터 자율주행차 임시 허가를 취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현대자동차와 서울대 연구팀이 허가를 받은 바 있다.
현대모비스의 자율주행 기술은 현대차 쏘나타에 탑재된다. 이 차는 정부에서 시험운행구역으로 지정한 고속도로(서울~신갈~호법)와 국도(수원·평택·용인·파주) 등 320km 구간을 달릴 수 있다.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쏘나타는 사람의 눈과 손, 발을 대신할 수 있도록 차량 앞과 뒤, 측면에 레이더 5개와 전방 카메라 1개, 제어장치를 장착했다. 레이더와 카메라 센서는 차 주변 360도를 감지해 각종 주행 정보를 제공한다.
현대모비스는 아낌없는 지원과 투자를 바탕으로 2020년까지 자율주행 기술 시스템 양산 준비를 마친 뒤 세계 시장에서 해외 선진 기업들과 경쟁을 펼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지난 2013년에 600억 원을 들여 자동차 전자장치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전장연구동을 신축했고, 올 1월에는 신입사원 300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을 연구개발 분야에 집중 배치했다.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약 6,2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5% 이상 크게 늘었다. 현재 국내외 5개 주행시험장을 상시 운영하며 자율주행 기술 시험을 반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오는 10월 현대모비스가 충남 서산에 독자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주행시험장이 완공되면 자율주행 신기술 개발 실차 평가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박순조 현대모비스 선행연구실 상무가 말했다. “두 잇 퍼스트, 비 더 베스트(Do It First, Be the Best)는 선제적인 신기술 개발로 최고가 되자는 의미의 우리 연구소 캐치프레이즈입니다. 현대모비스의 기술력이 국내 자율주행 시스템의 수준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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