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취직이 확정된 아들이 소파에서 마주 앉았다. 아버지가 흐뭇해하며 입을 연다. “아들 정말 자랑스럽다. GE. 제조회사 맞지?”
아버지는 망치도 하나 꺼낸다. “할아버지가 쓰시던 망치야. 네가 써주길 바라실 게다”라며 아들에게 망치를 건넨다. 회사에서 쓰라는 말이다.
아들은 “GE가 강력한 기계를 만들기는 하지만 저는 그 기계들이 작동하며 서로 정보를 공유하게 하는 코드를 만들어요”라고 대꾸한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망치 쓰기를 고집한다. 지금의 제너럴일렉트릭(GE)을 과거 기업 그대로인 줄 아는 것이다.
GE가 지난해 내놓은 40초 분량의 짧은 광고 얘기다. 광고는 “GE는 디지털 기업이면서 산업 기업이기도 하다”라며 끝난다.
GE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GE의 변신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면서 그동안 GE의 변화속도가 매우 빨랐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 GE의 변신은 환골탈태 수준이다. 2016년 현재 GE는 소프트웨어 기업을 표방한다. 글로벌 제조업체 사이에서는 본받아야 할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삼성을 비롯해 GE와 금융 부문에서 협력했던 현대자동차도 GE에서 리스크 관리 기법을 배웠고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도움이 됐다.
GE의 혁신은 어느 정도일까.
1892년 토머스 에디슨의 전기회사를 모태로 출발한 GE는 180개국에 33만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현재 항공과 에너지, 오일, 가스, 헬스케어 등의 사업을 한다. 지난해에만 매출 1,174억달러(약 133조2,400억원)를 올렸다.
GE의 변화는 2008년 이후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발전용 터빈 같은 핵심사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매각한다는 계획을 세운 뒤 올 초 가전사업부를 중국 하이얼에 54억달러에 팔았다. GE캐피털로 대변되는 금융도 계속 축소 중이다. 직원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새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을 최고 성과자로 한다는 파격적인 내용의 인사혁신안도 추진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블룸버그는 GE를 두고 “124년 된 스타트업”이라고 빗댔다.
GE의 신규 투자는 과감하다. GE는 2010년부터 산업 인터넷에 공을 들이고 있다. GE의 ‘프레딕스’는 공장에서 돌아가는 설비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생산성을 높여준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전략적 제휴를 발표하기도 했다. 단순 제조업체에서 제조 서비스 업체로 탈바꿈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팔 것은 과감하게 팔고 기업의 주력 사업영역까지 과감하게 바꾸는 GE에서 배울 게 많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국내 조선과 철강은 성장의 한계에 부딪혀 있고 전자와 자동차처럼 우리나라가 비교적 강했던 부분도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따라오고 있는 상황에서는 GE가 해온 혁신을 우리도 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삼성전자의 조직문화를 바꾸고 비주력 사업을 매각하고 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뿌리부터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며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고급차인 ‘제네시스’ 브랜드와 친환경차를 통해 글로벌 자동차시장의 룰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에 몸담고 있는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갈 길이 아직 멀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혁신을 사람 자르는 구조조정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100년이 넘은 글로벌 대형 기업 GE는 지금도 안 되는 사업은 팔고 핵심사업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바꾸는 과감한 혁신을 추진 중”이라며 “우리나라 기업들도 뼈를 깎는 수준의 혁신을 해야 중국 기업의 추격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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