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가상현실을 '실제 (비즈니스) 현실'로 만드는 경쟁

대기업들이 이 분야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지만, 가상현실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새로운 가상현실 시대가 지난 4월 중순 열렸다. 전세계 시청자들-모두 강건한 체질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이 의료용품 기업 메디컬 리얼리티스 Medical Realities가 개발한 앱으로 외과의가 로열런던병원(Royal London NHS Hospital)에서 70대 암 환자의 장 수술을 집도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과학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떠오르겠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이었다. 의사들과 의대생 외에도 단순히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이 수술 현장을 실시간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의 360도 회전을 조정할 수 있어 마치 수술실에 있는 것 같았다.

요즘 VR이 게임, 오락, 탐사 분야에 가져 올 기적과 같은 변화에 뜨거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동이 틀 무렵 두바이 상공으로 군용 헬기 블랙호크 Black Hawk를 조종해 보고 싶은가? VR을 통하면 실현 가능하다. 달 표면에 새겨진 닐 암스트롱 Neil Armstrong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보는 건 어떤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건? 모든 게 가능하다. 더 나아가 이번 수술현장의 실시간 중계는, 교육과 훈련을 넘어 일반 대중이 경험하기 힘든 상황을 가능케 하는 VR의 무한한 잠재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수술 생중계는 메디컬 리얼리티스가 구상하는 계획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수술용 메스가 근육을 절단할 때 감지하는 저항을 의대생들이 직접 느낄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아직까지 VR은 업무 현장에서 적용되는 부분이 상당히 단조롭고-가상회의 정도다-실현 노력의 상당 부분도 게임·오락 콘텐츠 제작에 치중돼 있다. 그러나 향후 VR의 적용 범위와 현실화 가능성 전망은 무척 밝은 편이다.

현재 구글, 삼성,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애플, 인텔 같은 기술 대기업들이 VR 관련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모두 VR 플랫폼이 휴대폰의 매력이나 활용도와 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 자체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 밖에도 훨씬 더 많은 기업들이 VR을 통하면 쇼핑, 광고, 학습, 교류 방식이 바뀔 것이라 예상하며,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부 예상에 따르면, VR 시장은 향후 4년 내에 1,5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10년 후 시장 규모를 상상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플랫폼이 VR에 가장 적합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알아내기 위한 경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들이 내놓은 이전 작품들-3D 안경, 구글 글라스 등 얼굴에 착용하는 VR 헤드셋 기기들-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이들은 “이번에는 불완전했던 과거 기술과 다르다”며 “직접 체험하면 과거의 실패는 이번 성공을 위한 밑거름에 불과했다는 점을 이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서치 전문기업 호라이즌 미디어 Horizon Media에 따르면, VR에 대한 열성적인 언론 보도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3분의 2는 VR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VR의 개념부터 정의해 보자. 이 개념은 가상현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이들을 섞은 혼합현실(mixed reality) 등 여러 가지 세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모두 특정 헤드셋을 이용해 인지능력을 조정함으로써 특정 장소로 데려가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이들 기술의 출발점이 같기 때문에 이번 기사에선 편의상 모든 기술을 VR로 부르겠다.

뷰마스터 View-Master (*역주: 작은 3D 이미지들로 구성된 원형 필름을 삽입해서 보는 쌍안경) 를 기억하는가? 77년 전 출시돼 아이들을 침실에서 타지마할 Taj Mahal,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Great Smoky Mountains 같은 곳으로 데려다 주던 장난감이다. VR의 시조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비행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VR의 초기 작품 정도로 볼 수 있다. 90년대 일본 기업 세가와 닌텐도가 개발한 후 폐기했던 헤드셋도 여기에 포함된다. 당시엔 인터넷이 모두의 관심을 사로잡아 VR은 완전히 잊혀졌다.

그러나 2014년 페이스북이 21세 창업가 팔머 러키 Palmer Luckey로부터 대표적인 VR기업 오큘러스 Oculus를 20억 달러에 사들이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때 오큘러스는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제품은 보유하지 않고 있었지만, 마크 저커버그 Mark Zuckerberg는 시제품만으로도 VR의 광범위한 활용성을 충분히 확신했다.

저커버그의 ‘베팅’이 현명한 판단이었는지 여부는 앞으로 몇 달 안에 판가름 날 것이다. 첫 번째 헤드셋 제품인 오큘러스 리프트 Oulus Rift 배송은 지난 3월 시작됐다. 헤드셋 가격은 599달러. 운영 가능한 컴퓨터와 함께 구매할 경우 1,500달러 선이다. 화면 해상도, 위치 추적(positional tracking), 동작 센서, 햅틱기술(haptic technologies·휴대폰이나 게임 컨트롤러를 진동하게 만드는 기술), 뛰어난 연산능력(computational horsepower), 3D 그래픽, 오디오 기술 등의 눈부신 발전으로 리프트는 예전 어떤 상용 모델도 구현하지 못했던 경험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오큘러스 경영진은 시장에서의 즉각적인 성공을 약속하지 않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이 VR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지겹다는 반응을 보이며 이전의 실망감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스노클링 snorkeling 장비를 닮은 마스크에 대한 대중의 거부 반응도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경영진은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한 해결 방안만 얘기하고 있다.

오큘러스의 콘텐츠 담당 대표이자 게임업계의 전설적인 인물 제이슨 루빈 Jason Rubin은 “VR은 이미 여러 번 관심을 받았다가 잊혀지곤 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크래시 밴디쿠트 Crash Bandicoot 시리즈 등 루빈의 게임은 4,000만 카피 이상 팔렸다. 그는 오랫동안 VR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심취한 건 최근의 일이다. 그는 “90년대 VR을 떠올려보면 기본적으론 브라운관 TV를 얼굴에 쓰는 것과 같았다”며 “화면이 흐릿하고 시끄러웠다”고 묘사했다. 그는 “이젠 고해상도 저비용 스크린을 사용하고 새로고침 비율(refresh rates) (*역주: 화면 디스플레이를 새로 고침하는 빈도) 도 늘어나 지연 시간이 짧아졌다”고 덧붙였다.

기술의 꾸준한 진보로 오큘러스 리프트는 정의하긴 힘들지만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제는 정말 ‘현실적으로’ 느끼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게 됐다. 루빈은 게임 시장부터 시작하겠지만, 이후엔 다양한 용도로 흥미로운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는 “출시 후 대중화까지 걸리는 시간이 스마트폰만큼 빠르지는 않을 수 있다”며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유사한 범위로 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IT 대기업들은 이 전망에 베팅하고 있다. 구글은 스마트폰을 통해 VR 경험을 제공하는, 판지와 플라스틱 VR용 기기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회사는 최근 큰 포부를 갖고 VR 전담팀을 구성했으며, 13억 달러 이상 자금을 끌어 모은 스타트업 매직 리프 Magic Leap에도 투자를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홀로렌즈 HoloLens를 출시했다. 선글라스와 보통의 VR 마스크를 결합한 형태의 헤드셋을 이용해 실제 보이는 현실에 홀로그램 이미지를 입히는 ‘증강현실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회사는 현재 오토데스트 Autodesk, 일본항공, 나사, 볼보 등과 협력해 모든 종류의 훈련 · 탐사 시나리오를 구현하려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3월 개발자용 키트 배송을 시작했지만, 일반 소비자 버전 출시 계획은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인텔은 VR 사업 추진을 통해 PC 매출 증대를 꾀하고 있다. 동영상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는 VR 앱을 출시했으며, 아마존도 앱 개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애플도 뭔가 준비를 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회사는 사업계획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CEO 팀 쿡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긴 했다), 사람들이 ‘애플이 수백 명의 VR 관련 인재를 영입하고 있다’는 폭로성 기사를 공유하는 걸 은근히 즐기고 있다.

그래픽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Nvidia의 VR 총괄 담당자 제이슨 폴 Jason Paul은 필자에게 “VR용 신규 반도체 라인을 만들고, 해당 분야 담당 부서까지 신설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폴은 전략적 성장이 가능한 3대 분야 중 하나로 VR을 꼽으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VR 처리는 1080p HD 해상도의 7배에 달하는 그래픽 용량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3년 간의 기술 및 성능 발전으로 이젠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량 판매를 생각할 수 있게 됐다”며 “VR은 게임, 자동차에서 오락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현재 VR 생태계를 구축하고 성능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필자가 최근 엔디비아를 방문했을 때 폴의 팀은 몇 가지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 중 하나가 18만 달러짜리 스포츠카 아우디 Audi R8에 가상 탑승하는 것이었다. 이 기술을 통하면 직접 운전대를 잡거나 엔진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을 수도 있었다. 엔디비아의 이 기술과 볼보가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진행 중인 작업을 고려하면, 조만간 기존의 시운전 방식은 거실에서 즐기는 증강현실로 대체될 것임이 분명했다. 소파에 안전하게 앉은 채 구불거리는 알프스의 도로를 아우토반 Autobahn에서나 가능할 법한 속도로 달리면서, 엔진이 부릉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운전대의 진동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헤드셋 판매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삼성은 오큘러스와 함께 생산한 기어 VR을 소비자가 99달러에 출시했다. 기어 VR은 삼성 스마트폰 화면을 디스플레이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어 출시 후 판매 대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회사는 시장 선점을 위해 TV 광고 및 프로모션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갤럭시 S7 구매자에 헤드셋과 VR 게임 6개를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삼성의 VR 총괄 닉 디카를로 Nick DiCarlo는 “VR 도입에 상당한 저항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진입 장벽만 낮출 수 있다면 VR이 얼마나 놀랍고 혁신적이며 강렬한 기술인지 모두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100만 달러짜리 시스템에서나 구현이 가능했던 시뮬레이션 기술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록히드마틴은 전투기 조종 훈련 과정에서 종종 VR과 실제 장비를 결합하고 있다. (위) 오큘러스 리프트 헤드셋을 쓰고 록히드마틴 훈련 장비를 시험하는 숀 뮤어 (아래) 뮤어가 F-35 기체 옆에 서 있다.


올 초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자 가전박람회(CES)에서 가장 큰 관심을 불러 모은 곳은 VR 게임 분야였다. 수천 명의 인파가 VR 게임을 5분간 체험하기 위해 오큘러스, HTC(799달러짜리 바이브 Vive 시스템을 4월 출시했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부스 밖에 장사진을 쳤다. 플레이스테이션 경영진은 기존 PS4 소유자 3,600만 명이 오는 10월 예정된 399달러짜리 플레이스테이션 VR 버전 출시 때도 이런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소니는 기존 고객을 VR로 유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할 예정이다. 경영진이 이미 인정했듯이, VR의 힘은 TV 광고로는 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케팅 부문 부사장 존 콜러 John Koller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새로운 플랫폼이 부상하면 활용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마련이다. 초기에는 해당 플랫폼을 출시한 기업마저도 종종 그 진가를 예측하지 못하곤 한다. 저서 ‘아메리카 콜링: 1940년까지 전화의 사회적 역사(America Calling: A Social History of the Telephone to 1940)’에 따르면, 미국 통신사 AT&T는 전보를 음성화한 대체기술로 전화를 도입했다. AT&T는 당시만 해도 ‘전보’-비용이 많이 들어 주로 업무상이나 생사와 관련된 문제에만 사용됐다-라는 틀에 너무 많이 사로잡힌 나머지, 이후 수십 년 간이나 전화를 사교적 용도로 활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IBM의 토머스 왓슨 Thomas Watson도 1943년 “전 세계적인 컴퓨터 수요는 많아야 5대 정도일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아마도 당시의 컴퓨터 개념(방을 가득 채우는 크기)을 기반으로 전망했기 때문에, 컴퓨터의 미래 모습(손톱만한 크기)을 예상하지 못했던 탓일 것이다. 인터넷과 휴대폰도 마찬가지다. 선구자들 중에는 언젠가 기업이 고객 휴대폰으로 위치기반 쿠폰을 전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사람은 있었지만, 우버 같은 서비스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

많은 연구진이 현재 VR의 최적 용도를 예측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명민한 인물 중 한 명이 스탠퍼드 대학 VR 연구소장 제러미 베일렌슨 Jeremy Bailenson이다. 그는 ‘무한 현실: 가상세계의 숨겨진 청사진(Infinite Reality: The Hidden Blueprint of Our Virtual Lives)’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베일렌슨은 VR을 산업계 리더들(저커버그 같은 인물들)과 국가 수장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오바마 대통령은 VR 마스크를 쓰지 않기로 했다).

베일렌슨은 VR에 쏟아지는 관심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재원과 인력이 크게 확충될 거라는 측면에서다.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 분야에서 진짜 에너지가 넘치고 있다. 우리가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흥분했다.

그러면서도 곧바로 기대치를 현실적으로 조정했다. 베일렌슨은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VR에 효과적이지 못하다. 20개 중 19개는 다른 플랫폼에 더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VR은 특별하고 강렬한 경험에 최적인 기술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하고, 비생산적이고, 불가능한 바로 그런 일들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스탠퍼드 연구소에서 필자는 다양한 데모들(demos)을 체험했다. 40대 건강한 백인 남성인 필자는 거리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사람에 맞서는 흑인 여성이 됐다가, 사지를 전혀 못 쓰는 참전 용사로도 변신을 했다. VR을 통해 공감능력을 키우려는 베일렌슨의 의도가 분명히 보였다.

그는 자본주의자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베일렌슨은 지난 1월 VR 소프트웨어 기업 스트라이버 Striver를 공동 창립해 현재 프로 및 대학 스포츠 팀 수십 곳과 협업을 하고 있다. 그는 “미식축구에선 반복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수비를 인식하고 연습 경기장에서 경기 방식을 바꾸는 방법을 (VR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뇌진탕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야구에선 타자가 구종(球種)을 파악하고, 결정을 내리고, 뭔가를 반복 경험하고, 그 경험을 내재화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교육의 가치는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사는 VR을 이용해 기술자들에게 인공위성 수리방법을 교육한다. 가정용품 체인 로스 Lowe’s는 7개 지역에 홀로룸 Holoroom을 시험 도입했다. 오큘러스 리프트를 통해 리모델링 결정을 돕는 서비스다. 로스 이노베이션 연구소(Lowe’ s Innovation Labs)의 이사 카일 넬 Kyle Nel은 “홀로룸의 가칭은 ‘결혼의 구세주(Marriage Savior)’였다”며 “단순히 멋진 기술이 아니라, 가상·증강 현실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됐을 때도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을 찾으려는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200미터 앞에 수상한 하얀색 밴이 주차돼 있다. 미국 대사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록히드마틴 Lockheed Martin의 선임 시스템 엔지니어 숀 뮤어 Shawn Muir는 “처음 방에 들어갔을 땐 차가 없었다”며 “솔직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중앙 아메리카일 수도 있다. 거리의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하고, 건물들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하다”고 묘사했다.

실제로 우리는 올랜도 록히드마틴 이노베이션 데몬스트레이션 센터 Innovation Demonstration Center에 있는 360도 스크린을 갖춘 팔각형 방안에 있다. 뮤어는 자신의 군사훈련 경험을 자신 있게 소개했다. 그는 방어장치 뒤에서 실제 50구경 기관총과 자동소총 M4를 들고, 실제 험비 Humvee (*역주: 군용 지프차) 위에 앉아 있었다. 소총에는 적외선 레이저와 무선 블루파이어 BlueFire (*역주: 무선 무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제공기업) 탄창이 탑재돼 있었다. 압력 3,000 PSI짜리 압축 질소를 사용한 총소리가 구현되고 있었다.

그는 “잘 버텨보라”고 말한 뒤 험비를 세우고 밴을 향해 수 차례 발포를 했다. 그러자 밴이 폭발을 했다. “이제 전진해 나가시오. 우리는 저 위에서 우회전을 할 겁니다-”

탕, 탕, 탕! 반란군이 전방위에서 공격을 해온다. 뮤어는 “철수하라! 철수! 철수!”라고 외친다.

방이 흔들린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는 관찰자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결국 반란군이 후퇴하고, 시뮬레이션은 중단된다.

그러나 이건 이제까지 경험한 것 중 가장 현실적인 데모는 아니었다. 헤드셋을 쓰지도 않았다. 화면상 캐릭터들은 만화처럼 보였다. 그러나 VR 전문가들이 말하는 ‘현실감(presence)’을 느끼기 위해선 사진 같은 현실성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움직임, 주변의 행동, 소리 등 인간의 뇌가 현실로 인지하는 다양한 요소가 필요했다. 이 데모의 음향은 정말 귀에 거슬릴 정도로 컸다. 하지만 록히드마틴의 첨단기술 부문 대표 애툴 파텔 Atul Patel은 그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쟁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는, 전쟁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안 좋은 방향으로 대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록히드마틴은 90년대 말부터 VR을 활용해왔다. 가상 군사훈련을 실시한 군인만 해도 40만 명이 넘는다. 필자는 전투기 F-16을 조종해 보고, 이 기업이 VR을 이용해 조종사들에게 최첨단 전투기 F-35 라이트닝 II 조종법을 어떻게 훈련시키는지도 체험해 보았다. 조종사를 파트너와 함께 실제 F-35에 태워 적군이 공중전 위협을 가하는 전쟁 같은 상황으로 내보내려면, 시간당 100만 달러 이상이 든다. 가상으로 훈련하면 이 비용이 현저히 낮아진다.

전쟁 게임만이 아니다. 대린 볼트하우스 Darin Bolthouse는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우주 시스템 VR 시설 중 한 곳을 관리하고 있다. 바로 록히드마틴의 컬래버래티브 휴먼 이머시브 랩 Collaborative Human Immersive Lab(CHIL)이다. 볼트하우스 팀은 지난 한 해 동안 차세대 GPS 인공위성 등을 포함해 90여 개의 프로젝트에 VR을 도입한 바 있다. 이 VR은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고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볼트하우스는 “단 몇 분 만에 VR 시나리오를 설계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아무리 못해도 매년 1,000만~1,500만 달러를 절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에 3억 명 이상의 농구 팬이 있다면 뭘 하겠는가? 전미농구협회(NBA)는 열정적인 중국 팬 외에도 전세계 수백 만 명의 팬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중 대다수는 평생 동안 NBA 경기를 단 한번도 직접 관람하지 못한다. 미국 내에서도 경기장 수용능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인기 팀의 경우, 경기를 보려는 관중이 수용능력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당한 잠재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NBA는 현재 원격중계용 VR을 시험하고 있다.


제프 마실리오 Jeff Marsilio는 VR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NBA 글로벌 미디어 유통 담당 부사장인 그는 10대 때 코네티컷 주 오락실에서 처음 VR을 접했다. 그는 스포츠 생중계의 미래가 VR에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NBA는 작년 10월 처음으로 VR을 통해 농구 경기를 생중계했다. 필자는 마실리오의 초대로 NBA 제작사 중 한 곳인 넥스트VR NextVR이 LA 클리퍼스 LA Clippers와 덴버 너기츠 Denver Nuggests의 경기를 촬영하는 과정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스테이플스센터 Staples Center (*역주: NBA LA 레이커스와 LA 클리퍼스의 홈구장) 에서 넥스트VR 직원들과 합류했다. 작업 규모는 상당히 작았다. 단 몇 명이 골대 뒤에 설치된 2개의 무인 고정 카메라 영상과 모니터를 주시할 뿐이었다.

VR 경험이 좀 더 발전해야 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기어 VR은 휴대폰 화면을 이용한다. 차단된 스크린 도어를 통해 경기를 관람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제한이 있긴 하지만, VR이 아니면 불가능한 경험을 제공한다. 물론 농구장에 와 있는 것 같다는 표현은 과장이다. 그러나 보통 TV로 보는 것보단 훨씬 몰입감이 뛰어나다. 경기 흐름에 따라 카메라 각도가 바뀌기 때문에 움직임이 항상 시청자를 향한다. NBA의 엄청난 경기 속도를 특히 잘 느낄 수 있다.



필자가 경기를 관람하는 동안, 넥스트VR 팀은 최선의 음향 활용법, 점수 표기 공간, SNS 공유 방식, 새로운 참여방식 규정 등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브래드 앨런 Brad Allen 넥스트VR 회장은 “기술 발전 속도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그는 헤드셋을 들면서 “이건 ‘벽돌폰’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VR의 수익 창출 기회에 대해 묻자 마실리오는 질문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며 “현재로선 수익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농구 팬들이 좀 더 실감나게 경기를 관람하는 게 기본 전략”이라며 “VR은 새로운 방식으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VR은 콘텐츠 경험방식을 본질적으로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수익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




포드 기술자가 VR을 이용해 제조 전 단계에서 자동차를 평가하고 있다.


다음날 넥스트VR 경영진은 캘리포니아 주 라구나 해변에 위치한 사무실로 필자를 초대해 종합무술(mixed martial arts)에서 야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포츠의 VR 데모를 보여주었다. 폭스스포츠 FoxSports와의 계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넥스트VR은 2009년 3D TV용으로 개발한 영상압축(video-compression)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VR이 3D TV와 같은 길을 걷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을 할 수 있을까? 넥스트VR 공동창업자 DJ 롤러 DJ Roller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며 “3D TV는 기존 TV에 깊이를 더했을 뿐이지만, VR은 완전히 새로운 미디어”라고 주장했다. 그는 “VR을 이용하면 외부에서 뭔가를 경험하는 게 아니라 직접 참여를 할 수 있다. 팬으로서 단순히 맨 앞자리에 앉는 게 아니라, 표를 살 수 없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테드 레온시스 Ted Leonsis는 새로운 미디어의 부상에 관한 전문가다. 사장 재임을 포함해 AOL (*역주: 미국 소재 글로벌 미디어 기업) 에서 14년을 보냈다. 현재는 아이스하키팀 워싱턴 캐피털스 Washington Capitals와 농구팀 워싱턴 위저즈 Washington Wizards 등을 소유한 모뉴먼트 스포츠 앤드 엔터테인먼트 Monumental Sports & Entertainment의 CEO를 맡고 있다. 필자는 이번 기사를 취재하는 동안, 레온시스가 VR의 열성 팬이 돼 위저즈 팀 선수 훈련에 VR을 활용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레온시스에게 전화를 걸자, 그는 VR의 유용성에 대해 극찬을 했다.

필자는 그에게 사람들이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고글 형태의 장비가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을지 물었다. 어쨌든 눈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부 문화권에선 눈을 마주치는 걸 끔찍하게 여기고, 반대로 시선 회피를 무례하게 인식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문화에 관계없이 선글라스 같은 뭔가로 눈을 가리는 건 반사회적으로 보일 수 있다. 레온시스에게 구글 글라스를 사용해 봤는지 물었다.

그는 파안대소하며 “지금 바로 옆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백하듯 말을 이었다. “2년간 착용한 적이 없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구글 글라스는 1세대 제품이다. 시각 장비와 사물인터넷(IoT)이 점점 더 주류가 될 거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점점 빠르고 저렴하고 가볍고 작아질 것이며, 그에 따라 앱도 발전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사회가 (고글 형태의 장비를) 수용할 수 있을까? 바로 비디오게임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스크린 두 개로 게임을 하면서 경험을 하는 환경 말이다. 우리가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고 싶다면, 같이 헤드셋을 쓰고 절벽 위 바위에 서서 아래를 함께 내려보면 된다.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레온시스와 나이아가라 폭포에 함께 가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VR 경험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생각하면, VR의 수용을 가로막는 장벽-날로 낮아지고 있다-정도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데스크톱 컴퓨터와 모뎀이 있어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 노트북 컴퓨터와 와이파이가 등장했다. 이제는 주머니 안에 슈퍼컴퓨터인 스마트폰을 넣고 다닌다. 스마트폰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레온시스는 “이 사회가 신기술을 수용하기까지는 옹호론자들의 기대보다 항상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도 “그러나 일단 받아들이기만 하면, 상상 이상으로 급성장했다. VR도 모든 산업의 판도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젠 꼭 해 보고 싶은 경험이 있는지 생각해 볼 시점이 됐다. 비용이 많이 들거나, 위험하거나, 불가능한 경험 말이다. 시가총액 2조 달러 이상의 기업들은 여러분이 결국 스쿠버 다이빙용 마스크 같은 헤드셋을 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흐름에 저항하는 건 사실상 의미가 없다.

제프리 오브라이언 Jeffrey O’Brien은 포춘 수석기자 출신으로, 기업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스토리TK StoryTK(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Bay Area 소재)의 공동 창업자다.

VR이 현실화되고 있는 13개 분야
일부 기업은 VR을 사업에 통합시키고 있으며, 제품 판매에 활용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① 포드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VR을 통해 신차의 구성요소들을 시험함으로써 연 800만 달러의 비용 절감효과를 거두고 있다. ② 아우디는 소비자가 자동차를 직접 구성하고 맞춤화할 수 있도록 딜러들에게 VR 키트를 제공하고 있다.







③ UCLA에선 상당히 높은 기술을 요하는 민감한 수술의 경우, 외과 의사들이 집도 전 서지컬 시어터 Surgical Theater VR 기술과 오큘러스 리프트 헤드셋을 이용해 가상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④ 에어버스는 상용 비행기 테스트에서 VR을 활용하고 있다. 이 회사는 탑승객들에 제공될 기내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위해 착용 헬멧에 대한 특허도 취득했다. 영국 방산기업 ⑤ BAE시스템스는 VR을 이용해 엔지니어와 선원들이 설계 단계에서 군함을 직접 걸어 다녀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크루즈 기업 ⑥ 카니발은 일부 AT&T 매장에서 삼성의 VR 장비를 통해 자사 크루즈 선과 휴양지를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모션 서비스를 개발했다.S







⑦ 노스페이스는 매장 고객들을 가상으로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유타 주 모아브로 데려가고 있다. 한국에서 진행된 프로모션에선 현실감을 더욱 높이기 위해 개썰매 탑승 기능도 추가했다.







⑧ 매리어트는 온도가 조절되는 가상의 전화부스를 개발했다. 고객은 헤드셋을 쓰고 가상으로 하와이나 런던의 매리어트 호텔을 방문할 수 있다.







글로벌 건축기업 ⑨ IA 인테리어 아키텍트는 인사이트VR과 가상현실 상의 디자인 모델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고객들이 완공 전에 프로젝트를 직접 둘러볼 수 있는 VR 기술도 시험 중이다.







⑩ 소더비 인터내셔널 리얼티는 고급 주택 판매 과정에서 VR로 집을 보여준다. ⑪ 할스테드, ⑫ 더글러스 엘리먼 등 다른 부동산 기업들도 유사한 기술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급 유통업체 ⑬ 더라인은 VR 기술로 가상의 팝업스토어를 제작, 자사의 뉴욕 소호 매장인 아파트먼트를 둘러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JEFFREY M. O‘BRIEN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