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그룹이 한국 진출 12년 만에 국내 계열사 대표를 모두 외국인으로 교체한다. 폭스바겐·아우디에 이어 포르쉐까지 한국인 대표 대신 독일 본사 인력으로 대체하는 셈이다. 국내 진출 초기에 한국인 수장에게 자리를 맡겨 사업 안착을 시도했던 폭스바겐그룹은 독일인에게 대표 및 임원직을 모두 내주고 있다.
21일 수입차 업계에 따르면 포르쉐는 다음주 중 김근탁 포르쉐코리아 대표를 대신해 독일 본사에서 새로운 한국법인 대표를 임명한다. 지난 2013년 8월 포르쉐코리아 초대 사장으로 선임된 김 대표는 3년 임기를 거의 채웠지만 본사와 재계약을 이뤄내지 못했다. 김 대표는 1996년 크라이슬러코리아 판매·마케팅 이사를 시작으로 수입차 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2001년 GM코리아 사장, 2007년 쌍용자동차 글로벌마케팅담당 상무 등을 거치며 8월 포르쉐코리아 초대 사장을 지냈다. 김 대표가 한국법인을 이끄는 동안 포르쉐코리아는 2013년 2,041대에 불과하던 연간 판매량이 지난해 3,856대까지 늘었다.
하지만 김 대표를 마지막으로 포르쉐코리아까지 본사 출신 대표가 선임되며 국내에 진출한 폭스바겐그룹 계열사는 모두 외국인으로 최고경영자(CEO)가 바뀌게 됐다. 한국인 대표가 단 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경우는 폭스바겐그룹이 국내에 처음 진출한 2004년 이후 처음이다.
2005년부터 8년간 폭스바겐 초대 사장 역할을 해온 박동훈 현 르노삼성자동차 사장 후임으로 폭스바겐코리아는 외국인 대표를 선임했다. 르노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박 전 사장의 후임으로는 폭스바겐그룹의 토마스 쿨 사장이 선임돼 회사를 이끌고 있다. 박 전 사장은 연 1,635대에 불과하던 폭스바겐 판매량을 8년 만에 1만8,395대로 늘리는 등 한국 시장 정착에 큰 공을 세웠지만 최근 폭스바겐의 차량배출가스 조작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에 피의자로 소환되는 등 어려움에 처한 상태다. 아우디코리아는 2014년 8월 법인 설립 당시 도미니크 보쉬 사장을 초대 대표를 선임한 후 줄곧 본사 출신 CEO를 선호하고 있다.
법인 설립 초기 시장을 개척했던 한국인 대표는 물론 임원 자리까지 결국 본사 직원들의 몫이 됐다. 현재 아우디·폭스바겐·포르쉐코리아에는 한국인 임원(이사급 이상)이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전 폭스바겐코리아 영업마케팅 이사 A씨마저 지난해 르노삼성자동차 마케팅 담당으로 옮기면서 씨가 말랐다.
아우디코리아 사번 1번의 주인공인 이연경 전 마케팅총괄이사도 비슷한 사례다. 2004년 아우디의 한국지사 설립을 주도했고 수입차 업계 최연소 여성 임원으로 활약하며 아우디가 업계 4위로 발돋움하는데 큰 기여를 했던 그였지만 2013년 회사를 떠났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독일 본사에서 한국인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업계에 팽배하다”며 “국내 시장에서 한국인 대표와 임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본사 차원에서 견제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박재원기자 wonderfu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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