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산업은행이 책임론에 이어 전직 회장(CEO)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휘말리면서 채권단이 대우조선에 지원하기로 한 4조2,000억원 중 잔여자금 1조원에 대한 집행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별관회의(비공개 거시경제정책협의회)의 투명성 시비에 이어 시작된 검찰의 전직 CEO에 대한 수사가 대상을 더욱 넓힐 수 있는 상황에서 채권단은 대우조선과 관련된 어떤 의사결정에도 극도의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일 채권단과 금융 당국에 따르면 채권단이 대우조선에 집행하기로 한 4조2,000억원 중 잔여분인 1조원에 대한 집행이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다. 지난 4월15일부로 3조2,000억원이 지원되고 1조원이 남아 있지만 채권단으로서는 이미 집행하기로 한 지원에 대해서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대우조선 지원은 이미 지난해 말 다 정해진 사항이지만 야당 등 정치권에서 서별관회의의 의사결정까지 문제 삼고 있고 전직 산은 회장까지 수사를 받는 마당에 채권단이 단독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하기로 했던 지원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대우조선에 대한 기존 지원안 집행조차 머뭇거리는 것은 지금 분위기에서 대우조선과 관련된 어떤 결정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부담감 때문이다. 대우조선과 STX조선 등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은에 대한 책임감이 불거진데다 이에 더해 방향성 없는 금융 당국과 검찰 조사까지 더해지면서 채권단으로서는 사소한 의사결정도 내릴 수 없는 형편이다.
특히 산은은 강만수 전 회장의 검찰 압수수색에 대해 “전직 수뇌부의 개인 비리에 대한 수사”라고 선을 그었지만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강 전 회장의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면 그동안 대우조선에 대한 관리·감독 부실로 국한됐던 산은의 책임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민유성·홍기택 등 전직 CEO는 물론 당시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임직원으로 확대돼 ‘게이트’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아울러 국회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열기로 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가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 논란으로 번지면서 이 역시 채권단에 부담이 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하면 4조2,000억원 추가 지원이라는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도 정당성 여부를 따지게 될 것인데 이런 형편에서 새로운 의사결정은 크든 작든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면서 “물리적으로 현업 부서에서도 청문회 등 정치권의 질의에 응답하면서 한편으로는 구조조정에 매진할 여건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대우조선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의 구조조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결국 결과론만으로 평가받는데다 산은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책임론으로 만신창이가 되면서 당장 채권단 내부에서도 구조조정에 대한 무력감이 확산되고 있다.
결국 채권단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떤 의사결정도 없이 지금과 같이 시간만 지체하게 되면 최대 피해자는 구조조정 기업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정상화 작업을 지원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시간만 끄는 지금의 분위기가 대우조선은 물론 구조조정 기업에 가장 큰 독이 될 것”이라며 “구조조정이 정쟁화돼 정상화 시간을 놓치면 더 망가지는 것은 기업”이라고 말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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