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은 대우조선해양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김열중 부사장이 1,200억원대의 회계사기를 저지른 정황을 포착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남상태(66)·고재호(61) 등 대우조선해양 전직 사장 시절의 비리에 초점을 맞췄던 검찰이 현 경영진으로 수사를 확대한 만큼 정성립 현 사장의 소환도 임박해 보인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5일 김 부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지난 6월 대우조선해양 경영비리 수사를 시작한 뒤 현 경영진을 소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 부사장은 올해 초 대우조선해양의 2015회계연도 결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영업손실을 1,200억원가량 축소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회계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1,200억원의 영업손실을 고의로 축소 조작했다는 객관적 증거를 확보했다”며 “회계사기에 가담한 대우조선해양 실무자도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사업보고서는 기업 내부의 결산을 토대로 외감기관인 회계법인의 감사를 거쳐 작성되므로 주주나 감독당국이 개입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정부와 채권단은 이미 지난해 10월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정상화 계획을 수립한 상황이었다.
다만 대우조선해양의 현 경영진이 왜 이 같은 결정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검찰은 자본잠식률을 50% 아래로 유지해 주식시장에서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 것을 회피하고 채권단의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 영업손실액을 축소했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영업손실 규모나 자본잠식 여부가 채권단의 지원 철회 요소는 아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채권단과 정부가 부실기업 지원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의식해 관리종목 지정을 회피하는 차원에서 회계부정을 눈감아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초 검찰은 고재호·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 시절의 경영비리 의혹이 수사 대상이라고 목표를 정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추가 혐의가 잇따라 적발되면서 계획이 대폭 수정됐다. 검찰은 “수사 도중 객관적 혐의 자료가 확보돼 진행하게 됐다”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이라고 밝혔다. 먼저 김 전 부사장의 소환으로 정성립 사장 등 최고위 경영진까지 순차적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 정상화를 추진해온 산업은행과 관련 정부부처 등도 수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산은 부행장 출신인 김열중 부사장이 직접 회계부정에 관여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은의 책임 추궁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성립 사장과 김열중 부사장 등을 선임한 홍기택 전 회장 시기까지 수사범위가 확대될 수도 있다. 산은에 대한 관리·감독 및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정상화 작업을 추진한 금융당국 역시 책임론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은 일단 검찰의 이번 수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정상화 작업과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경영진의 범죄사실이 입증되면 그에 따른 사법적 절차가 진행될 수 있겠지만 이미 수립한 경영정상화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서별관회의에 대한 청문회 요구 등 정치권의 책임 추궁이 거센 가운데 검찰 수사라는 암초까지 추가되면서 일부 차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의 지원에도 경영진이 피의자로 소환돼 조사를 받게 되면서 대우조선해양이 마련한 자구안이 제대로 이행될지도 미지수다.
/조민규·진동영·이완기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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