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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누진 폭탄 '제2 연말정산 악몽' 되나

내달 25일 전후 고지서 뿌려지면 국민분노 들끓을 듯

당국 "여야 모두 개편압박땐 버티기 힘들것" 비상 걸려

"여론악화땐 레임덕 우려…누진제 손질 불가피" 관측도

10일 서울 명동에서 중구청 및 한국에너지공단 직원들이 문을 열어둔 채 에어컨을 틀어놓은 상점에 대해 주의조치를 내리고 있다. 정부는 11일부터 문을 열고 냉방영업을 하는 업소에 과태료를 부과한다. /송은석기자




# 경기 성남 분당에 사는 주부 이모(38)씨는 요즘 날짜 지나는 게 두렵다. 그는 둘째 아이가 채 100일이 되지 않은 까닭에 거의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켤 수밖에 없다. 막상 다음달 25일 8월 관리비에 포함돼 나올 전기요금이 얼마나 될지 걱정된다. 이씨는 “단순 계산만 해봐도 8월에는 40만원 이상의 전기요금이 나올 것 같다”며 “당장 아이 몸에 땀띠가 난 상황에서 에어컨을 적게 틀고 버티라는 정부의 말은 부모 입장에서 수긍하기가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일 이어지는 찜통더위가 불러온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이 ‘제2의 연말정산 악몽’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일 정부가 브리핑을 통해 “누진제 개편은 부자 감세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반대의사를 재차 표명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이 누진제 개편과 관련한 법안을 발의하면서 대(對)정부 공세수위를 높이고 있다. 1년 7개월 전인 2015년 1월 온 나라를 들썩거리게 했던 연말정산 파동의 데자뷔다.



당시 인터넷 댓글은 정부를 성토하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 ‘13월의 보너스’여야 할 연말정산이 ‘13월의 폭탄’으로 돌아오게 생겼다는 아우성이었다. 곧장 야당은 정부가 ‘꼼수 증세’를 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와 경제팀 경질 등을 요구했다. 결국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국민 사과를 하며 보완대책을 약속했고 5,500만원 이하 소득자 541만명에게 총 4,227억원, 1인당 평균 8만원을 환급해줬다. 후유증도 있었다. 연말정산 파동 이후 530만명(전체 근로자의 32.4%) 수준이었던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중은 802만명으로 전체의 절반(48.1%)까지 늘어났다.

정부 관계자들은 비상이 걸렸다. 당장 다음달 25일 전후로 전기료 고지서가 각 가정에 뿌려지면 전기요금 개편논의가 더욱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부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어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한 상황에서 어떤 조처를 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하지만 전기요금 고지서가 나오게 되면 국민 여론이 들끓어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들에게 연말정산 파동은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장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여권에서 아우성인데 버틸 재간이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연말정산 사태가 발생했을 때 기재부 세제정책을 담당하는 1차관은 현재 에너지 업무를 총괄하는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추락한데다 여야 모두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는 점도 그때와 닮았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결국 여론에 못 이기는 척 누진제 개편에 손을 대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하고 있다. 집권 여당 수뇌부의 새로운 진용이 갖춰져 국정이 뒷심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나빠진 여론을 진정시키지 못할 경우 레임덕이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기료는 세금과는 달리 자신이 구매한 서비스에 대해 요금을 내는 것”이라며 “정부는 저소득층에 가격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 누진제를 고수하고 있는데 누진제와 같은 징벌적 요금제가 아니라 본인이 사용한 전력 양만큼 요금을 부담하고 저소득층에게는 쿠폰이나 환급을 제시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밖에 일시적인 전기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누진제 일시완화, 전기료 분할납부 등 소비자 편의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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