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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싱 나노테크

유명 인디카 레이서 토니 카나안 선수가 우승 청부사를 고용했다. 나노기술이 접목된 스마트 셔츠가 그것이다.





2016년 8월 27일. 토니 카나안 선수는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텍사스 모터 스피드웨이에서 개최되는 인디카 파이어스톤 600 대회에서 참가번호 10번 차량의 운전대를 잡는다. 이 레이싱카는 중량이 710㎏으로, 675마력 엔진에 힘입어 최고시속 360㎞의 속도로 트랙을 질주할 수 있다.

이런 성능의 차량을 몰아야 하는 레이서들은 가히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고 해도 무방할 극한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실제로 차량 선회 중 신체에 가해지는 중력가속도가 무려 5G에 달한다. 여기에다 엄청난 열기를 내뿜는 엔진, 감속 시 최대 1,000℃로 가열되는 브레이크 디스크, 최고 속도에서 100℃까지 달궈지는 타이어 등의 복사열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한다.

특히 인디카 레이싱카의 바퀴는 덮개가 없는 오픈휠 방식이며, 주행 중 상대 차량과의 거리가 불과 10㎝ 안팎으로 좁혀지는 경우도 흔하다. 이때는 아주 작은 핸들 조작 실수로도 두 차량의 바퀴가 맞닿을 수 있으며, 맞닿는 순간 차량이 로켓처럼 하늘로 튕겨 올라간다. 바퀴 덮개가 있는 레이싱카를 사용하는 나스카 레이싱 대회에서도 이와 동일한 상황에선 차량이 회전하며 트랙 밖으로 튕겨나가는 스핀아웃이 일어날 수 있지만 인디카에 비하면 위험성이 훨씬 덜하다.

즉 인디카는 그야말로 미세한 근육 움직임 하나로 승패가 갈리는 대회라 할 수 있다. 2013년 ‘인디 500’ 레이싱 대회의 우승자이자 19년간 인디카 레이서로 활동하며 249경기 연속 출전 기록을 갖고 있는 토니 카나안 선수가 비좁은 운전석 안에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동안 자신의 몸을 지켜줄 헬멧과 슈트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시즌 그는 정규 방화슈트 외에 지금껏 어떤 레이서도 입어보지 못했던 경기복을 착용한 채 운전석에 앉는다. 전기 전도성 나노섬유로 만들어진 셔츠가 그것이다.




카나안 선수가 경기 중 착용하는 히토에 셔츠는 심박수와 스트레스, 근육 긴장도를 측정해 스태프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듀폰의 노멕스(Nomex) 섬유에 안감을 덧대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만큼 인디카의 경기복 규정에 부합하는 강력한 방염성도 겸비하고 있다.


‘히토에(Hitoe)’로 명명된 이 스마트 셔츠는 착용자의 호흡과 심박수, 심지어 근육의 긴장상태까지 실시간 모니터링 해준다. 카나안 선수의 보조 엔지니어로서 차량에 더해 셔츠의 정보를 체크하는 임무를 맡게 된 브라이언 웰링은 극도로 보수적인 레이싱 업계에서 이 같은 웨어러블 센싱 기술이 채택됐다는 게 꽤나 흥미로운 사건이라 말한다.

“우리는 원래 레이싱 업계 외부의 사람을 그리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게 누구라도 말이에요. 저희가 히토에를 도입한 것은 일종의 쿠테타와 같은 겁니다.”

히토에는 카나안 선수의 차량을 후원하고 있는 일본의 글로벌 IT 기업 NTT 데이터가 화학기업 도레이(Toray)와 함께 카나안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개발한 제품이다. 이를 입고 경기에 나서면 스태프들은 그가 언제 불필요하게 긴장하는지, 앞선 차량을 추월하려 시도할 때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최고치에 이르는지, 또 언제 심박수가 증가하는지를 파악해 최상의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도록 조언할 수 있다.

카나안 선수는 히토에 착용과 관련해 지금까지는 레이싱 중 레이서의 심박수나 근육 피로도를 측정해 연구한 사례가 없었다고 강조한다.

“이 데이터들을 제가 실시간 전달 받는다면 감정과 신체를 조절함으로써 경기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심박수와 하체 근력을 강화하기 위한 최적의 운동처방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일본어로 홑겹을 의미하는 히토에에는 전선이 전혀 없다. 코팅된 나노섬유 원단을 사용해 자체적으로 전기 전도성을 가진다. 덕분에 원단 자체가 심전도와 근전도 센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카나안 선수의 히토에 셔츠는 바로 이 원단을 현존 최강 방염섬유인 듀폰의 노멕스(Nomex) 소재 셔츠의 안감으로 덧대 생체 전기신호를 모니터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카나안 선수는 지난 6월 열린 인디카 파이어스톤 600 대회의 예선을 4위로 통과했다.


히토에 셔츠는 탄생 배경도 매우 인상적이다. 이 셔츠를 만든 일본 가나가와현 소재 NTT 연구소의 츠카다 신고 박사는 의사이자 신경공학자로서 인공 신경의 개발을 목표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제가 원했던 건 뇌에 삽입할 수 있는 소형 전극이었습니다. 가느다란 바늘을 통해 이 전극을 삽입한 뒤 전기 자극을 줘서 손상된 뇌신경을 다시 이을 방법을 찾고 있었죠.”

그러던 중 문제가 하나 발견됐다. 전극을 이식하는 과정에서 바늘이 자칫 뇌 조직을 손상시켜 염증을 유발하거나 아예 파괴해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결국 그는 고민 끝에 인체 조직을 모방한 섬유의 개발로 연구주제를 변경했다.

이후 츠카다 박사는 견사(絹絲), 즉 비단실로 직조한 고강도 섬유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섬유를 전극으로 활용해 신경 신호를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이것만으로도 학계를 놀래기에 충분한 기술적 혁신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2011년 3월 11일 규모 9.0의 강진이 일본 동북부를 뒤흔든 것. 지진이 발생한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최대 파고 39m의 쓰나미가 몰려왔고,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 3기의 노심용융으로 이어졌다. 이 일본 동북부 대지진의 여파로 1만5,000여명이 숨졌고, 방사능 을 피해 10만명 이상의 주민이 안전지대로 긴급 소개됐다.

“쓰나미 이후 연구소가 수주일 동안 문을 닫았습니다. 당연히 제 연구도 멈춰야만 했죠.”



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제가 만든 소재가 원격 모니터링에도 유용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티셔츠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 티셔츠를 이용하면 쓰나미 이후 자신의 환자를 직접 만날 수 없게 된 의사들이 계속해서 환자의 상태를 관리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히토에의 시제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현재의 히토에는 나노섬유로 제작된다. 일반적인 티셔츠의 두께가 1만5,000㎛인데 비해 히토에는 카나안 선수에게 제공된 상용 버전의 두께가 700㎚에 불과하다.

“나노섬유를 고밀도 원단으로 직조했기 때문에 착용 시 피부에 닿는 면적이 넓습니다. 그만큼 여타 마이크로 섬유 기반 생체 모니터링 제품과 비교해 신호 품질이 뛰어나죠. 게다가 고밀도 원단은 내구성 증진 효과도 있어 100회 이상의 세탁에도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실제로도 히토에 셔츠는 이번 시즌 카나안 선수가 훈련하고 경기를 치를 때의 상태를 너무나도 잘 알려주고 있다. 셔츠가 보내온 데이터를 분석하는 웰링이 히토에를 ‘카나안 선수의 계기판’이라 부를 정도다.

예를 들어 카나안 선수는 코너링을 할 때 최대 5G에 달하는 중력가속도에 맞서기 위해 몸을 경직시킬 수밖에 없다. 웰링이 레이싱 트랙의 지도와 차량의 가속도, 셔츠의 데이터 분석값을 대조했더니 선회 시 카나안 선수가 2초가량 숨을 참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숨을 참는데 따르는 산소 부족과 근육 경직에 의한 스트레스가 근전도 데이터로 확인됩니다. 레이싱 중 이 데이터가 요동친다는 것은 선수의 피로도가 가중되고 있다는 뜻이고요.”




카나안 선수가 핸들을 잡는 악력과 히토에의 데이터를 비교 분석한 결과, 그가 선회 시 3~5G의 중력가속도에 맞서 몸을 경직시킨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데이터의 분석은 웰링에게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카나안 선수가 히토에를 착용하기 전에도 차량에 부착된 50여개 센서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 센서들은 공기역학적 균형부터 브레이크 압력에 이르는 차량의 모든 지표들을 측정할 수 있다. 그런 그도 히토에를 처음 접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사실상 센서가 단 하나뿐임에도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10가지나 됩니다. 착용자의 자세까지 측정 가능합니다. 물론 차량의 센서처럼 한 눈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말이에요.”

그는 현재 경기가 펼쳐지는 2시간여 동안 선수의 평균 심박수와 근육 피로도가 어느 정도인지, 이것이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의 규명에 주력하고 있다. 어느 부위의 근육 강화가 필요한지 찾아내 적절한 운동요법을 처방하기 위함이다.

한편 츠카다 박사는 레이서 외에도 히토에에 적용된 기술의 효용성이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병원에서 퇴원한 환자에게 착용시키면 의사가 그 환자의 생체징후를 원격 관찰할 수 있다. 또 광부의 경우 유독 물질 흡입량을 측정해 작업시간을 조정할 수 있고, 항공기 조종사나 장거리 트럭 운전사처럼 위험한 직종의 종사자라면 사고 예방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다.

“인체 센싱은 사물인터넷보다도 어려운 과제예요. 생체신호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탓입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관찰을 거쳐 졸음이나 전방주시 태만, 피로도 증가 등을 예시하는 신호를 파악한다면 사고 위험을 사전 감지해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히토에 기술의 확대 보급은 카나안 선수도 바라 마지않는 바다.

“레이서들은 차량의 중량을 늘릴 무엇도 싣고 싶어 하지 않아요. 하지만 히토에가 언젠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는 기꺼이 착용을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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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사물인터넷 (Internet of Things, IoT) 우리 주변의 사물에 센서와 통신기능을 부여해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면서 상호작용토록 하는 지능형 네트워킹 기술. ‘사물지능통신(Machine to Machine, M2M)’이라고도 한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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