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을 숨기려는 기업의 꼼수에 맞서 우회적인 제재를 시도해 결과가 주목된다. 현행법과 법원의 판례는 직접 담합만 제재하도록 했기 때문에 다른 사업자를 끼거나 증거를 남기지 않는 담합은 처벌을 피해가고 있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담합 자체가 아닌 꼼수를 막아 담합을 억제하는 차선책을 택한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 3월 대형마트 업계 1~3위인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가 2012년 설 명절 세트 판매 과정에서 CJ제일제당·동원·오뚜기 등 납품업체로부터 경쟁 대형 마트의 세트구성과 판매가격, 수량, 신용카드를 통한 할인행사 정보까지 파악한 사실에 대해 경고 처분을 내렸다. 당시 이 사건은 공정위의 주요 처리 사건인 담합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대형 마트가 납품업체에 부당한 경영정보를 요구했다는 점만 경고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사건은 대형마트 중 한 곳이 담합을 자진신고 할 정도로 업계 스스로 담합을 인정한 사례였다. 납품업체가 대형마트들이 직접 말을 맞추면 담합에 걸릴 것으로 보고 사이에 납품업체를 끼웠을 뿐이었다. 공정위 조사관은 대형마트 스스로 담합을 인정한 점과 납품업체가 제안한 데로 움직였던 대형마트의 판매 내용 서류를 토대로 담합으로 판단하고 제재 대상에 올렸다. 간접 담합을 처벌하는 첫 시도 였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은 당사자가 담합을 직접 모의했다는 증거가 명확해야 제재할 수 있다. 담합 했다는 정황증거로도 처벌할 수는 있지만, 요건이 엄격해 최근에는 거의 적용하지 않는다. 법원 판례 역시 당사자가 언제 어디에서 모여 어떻게 담합을 약속했는지 드러내는 증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기업들은 직접 모의를 하더라도 약정서나 메신저 대화록 등 증거가 될 만한 것을 남기지 않거나 사무실이 아닌 엉뚱한 곳에 숨기기 때문에 증거가 없어 처벌받지 않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정위 조사관은 제재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포함 시켰다. 대형마트가 납품업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한 일은 ‘갑’인 대형 마트가 ‘을’인 납품업체의 경영정보를 부당하게 요구한 것이라며 제재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공정위 조사관의 주장은 외부 위원이 포함된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우선 대형마트 3사 중에서 납품업체를 통해 담합 했다고 인정한 대형마트 한 곳만 부당한 경영정보 요구와 간접 담합을 함께 처벌해 달라고 한 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한 위원은 “자수했는데 더 엄하게 처벌하면 앞으로 누가 담합을 자진신고 하겠나” 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 대형마트는 업계 1위도 아니어서 더욱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결국 최종 결론은 대형마트 3사 모두에게 부당한 경영정보 요구를 근거로 경고 처분하는 데 그쳤다. 다만 공정위는 경고 처분이라도 앞으로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시정 명령 불이행으로 보고 검찰 고발이 가능해서 사실상 대형마트의 간접 담합을 막았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다른 방식의 간접 담합 역시 담합 자체가 아닌 간접 행위를 문제 삼아 담합을 차단하겠다는 게 공정위의 생각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한 번은 담합 할 수 있지만 두 번은 못하게 된 셈”이라면서 “국내와 달리 외국에서는 간접 담합도 제재하기 때문에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제재받은 사례도 늘어나고 있어 간접 담합도 제재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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