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2년 동안 끌어왔던 택배사업 진출을 고심 끝에 결국 철회했다. 기존 택배업계의 강력한 반발과 우체국택배의 토요일 배송 재개로 택배시장에 뛰어들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농협은 최근 농협중앙회 주관으로 실무회의를 열어 택배사업 진출을 철회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13년 택배시장 진출을 위해 꾸린 태스크포스(TF) 인력도 전원 기존 업무로 복귀했다.
농협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한 결과 당장 성급하게 택배시장에 뛰어들기보다 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며 “다만 물류 혁신을 통한 미래 성장동력 확보는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협의 택배사업 진출을 둘러싼 행보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농협은 경영악화에 빠진 동아그룹이 대한통운을 매물로 내놓자 인수전에 참여했고 2010년에도 유진그룹으로부터 로젠택배 인수를 적극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인수금액과 방식을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 최종 협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농협의 택배시장 진출은 2014년 8월 급물살을 탔다. 당시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농축산물 직거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농협의 택배시장 진출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이 도화선이 됐다. 마침 우체국택배가 택배기사 복지를 위해 토요일 배송을 중단한 터여서 농협의 택배시장 진출은 물류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농협은 이후 택배시장 진출을 위한 연구용역을 외부 전문기관에 맡기고 기존 택배업체를 인수해 자회사 농협물류와 통합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결국 택배시장 진출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업계에서는 농협이 택배시장 진출을 포기한 이유로 기존 택배업계의 반대를 꼽는다. 주요 택배업체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통합물류협회는 농협의 택배사업 진출이 가시화되자 “자산 300조원의 공룡기업 농협이 택배시장에 뛰어들면 포화 상태에 접어든 국내 택배시장은 공멸할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후발주자인 농협이 택배사업에 나설 경우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단가 경쟁에 나설 것이고 이는 택배시장 전체를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주장이다.
택배사업 진출의 명분으로 작용했던 우체국택배의 토요휴무가 폐지된 것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체국은 2014년 7월 택배기사 처우 개선을 위해 업계 최초로 토요일 배송을 중단했지만 이후 농어민의 항의가 잇따르자 1년2개월 만에 재개했다. 농어민의 불편을 덜기 위해서라도 택배사업 진출이 불가피하다는 농협의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농협이 택배사업 진출을 철회함에 따라 택배시장은 당분간 CJ대한통운(000120)·현대로지스틱(A040830)스·한진(002320)택배의 ‘1강2중 체제’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하지만 물류사업은 모든 기업들이 비용절감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대기업의 택배사업 진출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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