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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이 일상화된 일그러진 현실 꼬집다

이용백 '낯선 산책'전

작가 이용백과 그의 신작 설치작품 ‘낯선 산책’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발 딛고 선 바닥이 일렁거린다.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은 휘청거리고 사람과 나무는 찌그러졌다. 그 일그러진 모습을 거울이 비춰 보인다. 출렁이던 풍경은 잠시 ‘평정’을 되찾는가 싶더니 이내 또 비틀기를 반복한다. 가로·세로 2m의 거울을 좌우 6개, 앞뒤 2개로 배치해 사각의 공간을 구성한 설치작품 ‘낯선 산책’ 안에 선 작가 이용백(50)이 묻는다.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요즘?”

‘세월호’ 사건 같은 큰 사고가 일어나고, 집회에 참여한 시민이 공권력에 의해 다치고, 부모가 자식을 학대해 죽이는 등 비상식적인 일들이 횡행하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는 한국의 현실에서 작가는 낯설고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최근 몇 년 새 세상이 부쩍 흔들린다는 느낌이 들고, 보편적 판단으로 살아왔던 것과는 뭔가 다른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아요. 1990년대까지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유지되던 이데올로기의 균형이 깨지면서 민족 간·종교 간 갈등과 분열이 심화하고 있지요. 커다란 힘의 질서가 깨지고 흔들리는 현실을 담고자 했습니다.”

이용백의 개인전 ‘낯선 산책’이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신관에서 오는 19일부터 9월 25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2011년 제 5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한 후 중국과 독일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지만 국내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용백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지하 1층의 설치작품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은 국내 대형 포털사이트의 지도서비스가 38선 철책 부근을 흰색 또는 검은색으로 가려 놓고 군사 시설과 주요 기지의 위치를 표시하지 않으려 한 것에 착안했다. 작가는 지도상에서 지워진 부분을 조각으로 제작해 현실로 끄집어냈다. 국가 안보의 명분 아래 무성의하게 자르고 가린 지도만큼이나 그의 작품도 무심하다. 작가는 “구글 어스 같은 해외 지도서비스에서는 버젓이 보여주는 것인데도, 다 알고 있는 것들을 억지스럽게 가린 블라인드 스케이프(보지 못하는 풍경)”라고 덧붙였다. 시커먼 조각을 들여다보노라면 여기가 바로 주제 사라마구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묘사한 그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루하고 흔해 빠진 소재를 작업하는 이유’라는 설치작품은 알루미늄으로 된 날개와 흡음재로 만든 스텔스 B2 폭격기로 구성돼 있다. 수많은 작가들이 희망과 평화의 상징인 ‘날개’를 소재로 작업하는 이유는 현실이 결코 희망적이지 않고 평화롭지 않기 때문이다. 날개 아래에 흡음제 스펀지로 제작된 스텔스 폭격기는 전쟁을 상징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너무 아름답다. 화려한 꽃무더기 속을 꽃으로 위장한 군인이 숨어다니며 총을 겨누는, 천사와 전사(戰使)가 공존하는 작가의 대표작 ‘앤젤 솔저’처럼 겉은 아름다우나 속성은 폭력적이고 잔인한 존재의 ‘미적 모순’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미술의 경향은 정치·사회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기에 발언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 예술가의 태도는 비겁하다”는 이용백은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임금님이 벌거벗었어!”라고 외치는 소년을 닮았다. (02)720-1424~6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이용백 ‘지루하고 흔해 빠진 소재를 작업하는 이유’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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