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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지브리풍' 열풍에 대한 반성문

조상인 백상미술정책연구소장

삶 성찰·고통 없는 AI이미지에 열광

정작 '지브리' 창시자 '脫인간성' 비판

'풍' 늘수록 진짜 예술가 더 빛날 것

조상인 백상미술정책연구소장




고백한다.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꿨다. ‘이웃집 토토로’부터 ‘벼랑 위의 포뇨’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지브리스튜디오의 그림체로 사진을 변환해 주는 인공지능(AI)의 힘을 빌렸다.

오픈AI는 지난달 25일 ‘챗GPT-4o 이미지 생성’ 기능을 공개했다. 고급 이미지 생성 기능을 탑재해 사용자가 업로드한 사진을 지브리풍을 비롯해 디즈니·픽사·심슨 등의 애니메이션 화풍으로 변환해 주는 서비스다. 그 바람에 70대의 엄마도 “어떻게 하는 거냐, 나도 해보자”라며 접속했다. 최근 전문 업체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달 30일 집계 기준으로 챗GPT의 국내 일간활성이용자수(DAU)가 140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2022년 11월 챗GPT를 처음 공개한 오픈AI는 지난해 말까지 가입자 수 3만 5000명을 확보했다. 증가세이기는 했으나 드라마틱한 성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단숨에 5억 명을 돌파했다. 사흘 전 샘 올트먼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지난 한 시간 동안 사용자 100만 명이 추가됐다”고 했을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다. 이게 다 ‘지브리풍’ 열풍을 몰고 온 AI의 이미지 생성 기능 덕분이라 한다.



나는 나빴다. 지브리 화풍의 창시자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2016년 NHK 다큐멘터리에서 한 발언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한 개발팀이 그에게 AI가 만들어낸 기괴한 움직임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줬다. 깊은 침묵 후에야 입을 뗀 미야자키 감독은 장애를 가진 친구의 불편한 거동을 이야기하며 “고통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만든 작품”이라고 지적했고 “삶 그 자체에 대한 모욕(insult to life itself)”이라고 비판했다. 이후로도 그는 자신의 작업에 AI를 활용하고 싶지는 않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했다. “머지않아 미야자키 감독이 격노할 것이고 그러면 AI의 ‘지브리풍’ 생성은 중단될 것 같군.” 그래서 더 서둘러 가족사진 등을 지브리풍으로 변환시켜뒀다. 약아빠진 생각과 행동을 반성한다.

미야자키는 AI가 생성한 이미지와 영상에 왜 이토록 격렬히 반응했을까. 평생을 두고 창작을 지속해 온 그가 닿고자 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존중’임을 우리는 안다. 그가 만든 캐릭터들은 진정한 인간의 경험, 감정, 연약함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에게 예술은 스타일이나 기법 이전에 교감이었다. 그가 느꼈을 불쾌함은 기술 자체에 대한 반발이 아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진정한 삶의 무게와 고통을 모르는 창작’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창작의 고통’이라 하지 않았던가. 예술적 창작은 삶에 대한 깊은 고뇌와 성찰 속에서 탄생한다. AI가 빠르게 창조하는 달콤한 이미지에 열광하는 우리가 너무나 쉽게 인간성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 미야자키는 그 불행한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오히려 흥미로운 지점은 ‘지브리풍’의 ‘풍(風)’이다. ‘샤넬풍’은 결국 짝퉁이요, ‘올드머니룩’ 또한 그럴싸해 보이는 흉내내기에 불과하다. ‘풍’은 특정 스타일의 외양을 감각적으로 따랐을 뿐 그 문화가 가진 진짜 정체성에 닿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풍’은 분명 흥미롭고 매혹적이다. 그 바람을 타고 새로운 창조성과 상상력이 따라올 수 있다. 17~18세기 유럽 상류층에서 유행한 중국풍 양식인 ‘시누아즈리(Chinoiserie)’는 이국적 동양 문화에 대한 상상을 증폭시켜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유행한 일본식 화풍 ‘자포니즘(Japonisme)’은 프랑스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AI가 던져주는 손쉬운 즐거움에 안주하지 말고 비좁은 ‘풍’의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혹자는 AI 예술의 발달로 예술가의 자리가 좁아질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풍’의 예술 활동이 많아질수록 고유한 정체성을 갖는, 고통 속에 창작을 감내한 진짜 예술가들이 더욱 영롱하게 빛날 것이다. 열풍은 로망이다. ‘지브리풍’이 말한다. 지브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것이 모두의 희망이요, 꿈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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