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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청년희망펀드의 굴욕]출범땐 떠들썩...관리는 흐지부지...'관치 펀드'의 예고된 몰락

대통령 나서니 장·차관 등 유력 인사 줄줄이 가입

펀드금액만 늘려놓고 경험없는 민간 10명이 관리

"30년 구두 닦은 돈 맡겼는데..." 국민 염원도 좌절

MB정부 녹색펀드·현정부 통일펀드 전철 밟을수도





지난해 말 청년희망펀드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제안하고 1호 가입자가 된 후 주요 부처 장·차관은 물론 재계, 금융권 수장 등 민간도 릴레이 가입에 나서면서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정부가 유무형의 압박을 넣은 결과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한 시중은행의 특정 지점은 직원들에게 펀드 가입을 권유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실제 청년희망펀드 가입자를 보면 유력자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1,000만원을 가입금으로 매달 월급의 10%를 납부하기로 했고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등이 가입했다. 재계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0억원을 냈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150억원, 구본무 LG그룹 회장 70억원, 최태원 SK그룹 회장 60억원, 허창수 GS회장이 30억원을 냈다. 금융권에서는 윤종규 KB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등 3대 금융지주 회장이 일시금 약 1,000만원을 납부했으며 야구선수 류현진, 탤런트 이승기 등도 참여했다. 잡음이 있었지만 사회 지도층,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이 사상 최악의 실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을 돕는다는 대승적 의미가 부각되며 펀드는 우여곡절 끝에 출범했다.

출범은 요란했지만 10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청년희망펀드의 운용은 낙제점에 가깝다. 실적이 부진하고 예산 집행이 미진한 것뿐만 아니라 인력도 부족, 부실하다. 1,400억원이 넘는 금액을 관리하는 청년희망재단에는 10여명만 근무하고 있다. 행정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민간 출신 인사가 펀드 출범과 함께 새롭게 채용된 것으로 내부에서조차 업무를 처리하기 벅차다는 토로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펀드에 가입한 사람을 중심으로 논란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현재 펀드 가입건수는 약 11만9,000건이다. 주요 인물들을 빼도 약 10만명의 일반 국민이 “청년들을 돕고 싶다”며 어렵게 모은 돈을 기부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지난해 9월 서울 신한은행 본점에서 30년간 구두를 닦아온 최장수씨도 “취업 문제로 힘들어하는 우리나라 미래(청년)들에게 꼭 잘 돌려달라”는 당부와 함께 펀드에 가입했다. 국민의 순수한 염원이 허술하게 관리된 셈이다.



이에 대해 ‘관치 펀드’의 예고된 몰락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부 부처의 한 공무원은 “구체적으로 재원을 어디다 쓸지, 얼마를 모금해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운용할지 계획도 정하지 않고 일단 대통령이 펀드를 만들자고 하니 가입액부터 늘리고 보자는 일 처리가 나은 결과”라고 꼬집었다. 앞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녹색성장펀드’가 대표적이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녹색성장’을 강조하면서 정부의 무언의 압박에 금융권에서 관련 펀드가 봇물을 이뤘고 정책금융 기관도 펀드의 흥행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투자를 결정했다. 이에 수출입은행은 2013년 말 탄소펀드와 자원개발펀드에 투자한 339억원 중 102억원의 손실을 봤다. 현재 녹색펀드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며 현 정부 초반 ‘통일 대박론’이 나온 이후 금융권에서 역시 통일 관련 관치 펀드가 나왔지만 현재는 모습을 감췄다. 김대종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슈에 대해 정교한 모금, 투자유치 계획보다는 일단 이슈에 대응하고 있다는 ‘보여주기’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펀드가 출범한 후 관리가 안 돼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서울시의 청년수당에 대해 반대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가 청년들을 위해 막대한 돈을 모금해놓고 이를 제대로 쓰지 않는다면 국민은 정부를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처음은 거창하게 정책이 추진되지만 나중에 아무도 챙기는 사람이 없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초반에 시의적절하고 내용도 충실했지만 제대로 추진이 안 되는 창조경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단적인 예”라고 꼬집었다.

김대종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의 녹색펀드 등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체계적인 집행 계획을 세워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위해 재원이 제대로 쓰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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