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구(사진) 우리은행장이 개인고객 담당 부행장이던 지난 2014년, 그의 카카오톡 알림말은 ‘유방과 한신’이었다. 유방은 본인의 능력은 걸출하지 못했으나 사람 보는 눈이 탁월해 곳곳에 인재를 등용, 라이벌 항우를 무찌르고 한(漢)나라를 창업한 황제다. 한신은 유방 휘하의 대장군으로 탁월한 용병술을 발휘, 항우에 비해 열세에 있던 유방을 단숨에 패자(覇者)로 만든 인물이다. 이에 대해 이 행장은 당시 기자와 만나 “한신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고사를 만들 만큼 명장이었는데 그 명장을 거느린 유방이라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대단하다”며 “유방의 사례를 통해 사람 다루는 방식을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21일 금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한 우리은행에서 이 행장의 용인술이 점점 빛을 발하고 있다. 이 행장은 지난해 12월 수석부행장 자리를 없애고 영업지원그룹·국내그룹·글로벌그룹 등 3개 그룹장 체제를 도입, 본인의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은행을 운영하는 파격 변신을 택했다.
이 행장은 관련 제도 도입을 지난해 9월부터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으며 그룹장 체제 도입이 실적으로 이어졌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실제 우리은행은 지난 상반기 당기순이익이 7,503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45.2%나 증가했다. 이 행장은 그룹장 제도 도입 당시 “행장이 모든 행사를 다 따라다니고 각종 사안을 일일이 챙기다 보면 실제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그룹장 중심으로 움직이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민영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해외 기업설명회(IR)는 본인이 직접 챙기는 등 업무분장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이 행장은 가끔 산책 중에 사업 관련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임원들에게 전화해 내용을 논의하는 등 직원들과의 소통도 잊지 않는 모습이다.
이 행장의 이 같은 위임형 리더십의 배경에는 본인이 은행 업무를 꿰뚫고 있다는 자신감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행장은 일찍이 사내 ‘전략통’으로 유명했으며 홍콩법인·비서실·영업부·카드사업부·인사부 등 은행 주요 부서를 다 거쳤다. 또 핀테크 열풍이 막 불기 시작한 2014년에도 관련 책이나 자료 등을 통해 익힌 내용을 바탕으로 은행 내에서 ‘핀테크 전도사’ 역할을 할 정도로 은행산업 트렌드에 민감하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행장님은 큰 그림을 잘 그려주고 구체적 키워드를 던져준 뒤 관련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는 스타일”이라며 “물론 이 같은 시스템이 잘 운용되려면 인사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좋은 사람을 발탁하는 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듯하다”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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