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롯데월드 시행사인 롯데물산은 회사채 발행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평판이 공식 신용등급인 ‘AA-’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자 회사채 발행을 철회했다. 호텔 IPO 무기 연기는 회사채 발행이 당분간 어렵다는 신호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롯데는 호텔롯데 IPO를 밀어붙인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며 “그러나 당국으로서는 검찰 수사 상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와중에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수용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회사채 발행길이 막힌 롯데 계열사들은 호텔롯데의 IPO 철회 후 2개월 동안 2조원 넘게 CP를 발행했다. 금융 관련 계열사들을 빼고 만기물량도 제외했음에도 웬만한 대기업집단의 1년치 회사채 발행 규모와 맞먹을 정도다. 핵심 계열사인 호텔롯데(부산롯데호텔 포함)가 4,900억원, 롯데쇼핑(023530)이 4,500억원을 발행한 것을 비롯해 롯데케미칼(011170)과 롯데물산이 나란히 3,000억원씩을 발행했다. 롯데칠성(005300)과 롯데제과(004990)·코리아세븐·롯데알미늄 등 다른 주요 계열사들도 1,000억~3,000억대에 이른다.
CP로 자금조달의 방향타를 돌린 이유는 만기 1년 미만까지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있다. 공모로 회사채를 발행하려면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경우 기업의 위험요소를 기재해야 하는데 검찰 수사 관련 사항을 담기란 사실상 어렵다. 설령 기재한다 해도 수사 관련 리스크가 있으면 발행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결국 추가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른바 ‘리스크 프리미엄’이다.
시장에서는 회사채 대신 CP 발행으로 몰리는 상황을 신용 리스크로 해석하기에는 섣부르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광수 한국기업평가(034950) 평가전문위원은 “롯데그룹의 검찰 수사는 일시적 악재이지 펀더멘털 취약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높은 발행금리를 부담하지 않으려고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다만 CP 발행은 일시적 자금변통에 불과해 검찰 수사가 장기화하면 롯데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해외 대형 투자는 사실상 무기 연기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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