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대기업에서 ‘상사맨’으로 일한 조광현(54)씨는 최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중소기업청의 ‘글로벌 시장개척 전문기업(GMD)’ 사업 공고를 보고 그동안의 노하우를 살려 창업 GMD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사업을 하려면 자금과 좋은 파트너가 있어야 하는데 중기청 GMD 사업을 통해 이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국내에서 해외로 수출을 하고 싶어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은 수도 없이 많은데 실력이 안 되거나 절차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대다수”라며 “SK그룹에서 20년 이상의 해외 영업 경력이 있는 상사 전문가 4명이 뜻을 모아 이들을 도우면 성공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 중소기업들은 해외 시장 조사와 컨설팅 서비스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불만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기업 평가나 지원을 해주기 위해 온 전문가들은 시장에 대한 정보나 사업 경험이 부족해 엉뚱한 솔루션만 내놓고 책임지지 않아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전문적으로 중소기업 관련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나 지원 업무가 있을 때 공공기관에서 추천한 교수나 연구원들이 이 업무를 맡다 보니 발생하는 현상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중소기업연구원이 중소기업 202곳을 대상으로 국내 수출 지원사업 개선사항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 기업들이 금전적인 지원보다 해외 시장에 대한 정보와 전문가들의 컨설팅이 더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조사 결과 바이어 상담이나 전시회 참가 등 현지 마케팅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33.66%로 가장 많았고 해외 정보제공 능력 향상(12.38%), 사후관리와 점검 시스템 강화(10.40%), 제출서류나 지원절차 간소화(8.91%), 법률·회계·컨설팅 전문가 확대지원(2.48%) 등도 필요하다고 답했다. 결국 ‘지원 금액과 지원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32.18%)’는 금전적 지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경험이 있는 전문가와 전문 정보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중소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대기업 종합상사 등에서 오랜 경력을 가지고 해외 현지 업무에 능통한 사람들은 퇴직 후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 대기업 종합상사 출신 퇴직자는 “대기업에 있을 때 네트워크가 상당한데 퇴직하고 나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안타깝다”며 “사업을 하려고 해도 검증된 중소기업과 일하는 게 중요한데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중기청이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묘안이 창업 GMD다. 창업 GMD는 KOTRA·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수출 유관기관과 함께 중소·중견기업이 수출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공적인 역할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민간기업이다. 민간기업이기 때문에 창업 GMD는 함께 해외 시장을 개척할 중소기업을 선택하고 이들과 함께 수익 모델을 구상해 수익을 나누며 문제가 생겨도 함께 책임진다. 일한 만큼 인센티브가 확실하고 실패할 경우 본인의 리스크로 다가오기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내려온 컨설턴트들보다는 책임감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창업 GMD는 종합상사와 대기업 등 무역 관련 업무에 10년 이상 종사한 사람들만 할 수 있기 때문에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하다. 또 GMD는 소량 다품종을 취급할 수 있고 수수료도 저렴해 해외 시장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위봉수 중소기업진흥공단 수출지원처장은 “창업 GMD는 기존의 공공 분야 중심이던 수출 지원 구조를 민간 중심으로 옮기는 혁신적인 사업”이라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우려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등 국제정세가 혼란한 상황에서 퇴직 무역인력의 전문성과 절박함을 활용하는 이 사업을 통해 국내 수출이 더욱 진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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