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4일 저녁.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조용한 방에서 79세의 수잔 핀리는 태양계 저편에서 보내오는 희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는 부산하게 돌아가는 TV 카메라들이 없는 미 항공우주국(NAS) 제트추진연구소(JPL)의 임무지원구역 위에 위치한 이 방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너무나 기이하게 들렸던 이 소리를 놓고 1962년 로켓공학자 빌 픽커링은 ‘천구(天球)의 음악’이라고 불렀다. 어쨌든 이 소리가 들려옴으로써 NASA는 주노 탐사선이 지구로부터 28억㎞ 떨어진 목성 궤도에 성공리에 진입했음을 알게 됐고, 임무 통제실의 근무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주노 탐사선은 이런 무전 메시지를 수백여 개의 주파수로 송신한다.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컴퓨터로 해독이 가능하다. 핀리는 지난 1997년부터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우주 탐사선들이 보내오는 메시지를 탐지하는 직무를 맡고 있다. 이 소프트웨어는 NASA가 탐사 임무의 성패를 파악하기 위해 개발한 것으로 그녀도 개발 과정에 참여했었다.
핀리와 NASA와의 인연은 1997년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가 JPL에 입사한 것은 1958년의 일이다.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미 의회가 NASA를 공식 창설하기 8개월 전이었다.
이후 핀리는 NASA에서 58년을 근무하면서 거의 모든 임무에 관여했다.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와 초기 달 탐사 임무는 물론 보이저호의 태양계 탐사 루트 작성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금성의 대기 속에 탐사 장비를 실은 기구를 띄웠을 때나 화성 탐사 로버가 착륙에 성공했을 때에 느꼈던 환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목성은 핀리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대상이다. “NASA 최초의 목성 탐사 임무인 파이어니어 10호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당시 제가 프로그램의 버그를 제거했었죠.”
중량이 주노 탐사선의 14분의 1 정도인 파이어니어 10호는 1972년 목성을 스쳐지나갔다. 그 과정에서 속도를 줄여 사진을 촬영했고, 목성의 방사선량을 측정했으며, 목성의 위성들을 탐사했다.
과학계와 대중들은 최초로 촬영된 목성의 근접사진에 경탄했다. 또한 목성 표면의 거센 소용돌이와 거대한 붉은 점에 매혹돼 1973년 NASA에 TV 방송부문 에미상을 수여했다.
44년전 파이어니어 10호는 목성에서 13만㎞ 떨어진 지점에서 사진을 촬영했지만 주노 탐사선은 불과
5,000㎞ 밖에서 촬영한다. 두 임무에서 촬영한 사진과 데이터는 ‘딥 스페이스 네트워크(DSN)’에 의존하는데, 이의 개발에도 핀리가 참여했다.
DSN은 전 세계에 깔려 있는 안테나와 통신 시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로 우주와의 통신을 가능케 해준다. 우주에서 오는 미약한 신호를 잡아낼 수 있으며, 심지어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보이저호의 신호도 수신한다.
“현재 성간우주를 항해 중인 보이저호의 신호 강도는 디지털 시계의 200억분의 1에 불과합니다.”
이 네트워크의 첫 파라볼라 접시 안테나가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의 골드스톤 천문대에 세워질 때 핀리는 JPL의 신입직원이었다. 얼마 뒤 DSN은 핀리의 일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으며, 지금 DSN은 캘리포니아는 물론 호주와 스페인에까지 대형 전파 안테나 어레이를 설치 중이다.
핀리는 동료들과 함께 각 스테이션을 연결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로서 NASA는 지구나 우주선의 자전과 상관없이 언제나 우주선과 통신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주노 탐사선에 있는 이는 특히 중요하다.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탐사선이 역분사 엔진을 작동시켜 감속하면서 목성 궤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때는 탐사선의 주 안테나가 지구 반대편을 향해 있어 자세한 원격 측정 데이터를 받을 수 없다. 그래서 JPL 팀은 35분간의 역분사 엔진 연소가 종료되고 주노의 목성 탐사가 공식 시작될 때 간단한 전파 톤이 송출되도록 했다.
NASA에서 오랜 시간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활약하는 동안 그녀는 오늘날의 평범한 직장여성들은 생각하기도 힘든 다양한 장애를 극복해야만 했다. 주지하다시피 주노 탐사선의 성패여부 확인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도 NASA의 최장 근속 여성인 핀리였다. 그럼에도 NASA는 2004년 핀리를 강등시켰다. 직함에서 엔지니어를 빼 버리고, 임금도 시급제로 변경했다. 그녀에게 학사 학위가 없다는 이유였다.
요즘과는 달리 핀리가 NASA에 입사하던 1958년에는 학사 학위가 필수 조건이 아니었다. 그녀는 수학에 소질이 뛰어났지만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그래서 JPL에 계산원으로 입사했다. 디지털 계산기가 나오기 전에는 인간 계산원이 연구소의 모든 계산을, 그것도 주로 수작업으로 해내야 했다. 그렇게 1969년 핀리를 비롯한 다른 여러 여성 계산원들은 엔지니어 직함을 부여받았다. 그간의 노고와 헌신에 대한 큰 보상이었다. 그러나 NASA는 2004년 모든 엔지니어는 학사 학위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고 규정을 바꿨고, 그녀는 엔지니어 직함을 빼앗았다. 다른 여성들이 퇴직한 지 수십 년이 지나서까지 NASA에 근속 중인 핀리야말로 NASA의 살아 있는 역사인데도 말이다.
NASA의 그 누구도 수십 년간 근무한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이 출퇴근 시간이나 기록해야 하는 신세가 된 이유를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핀리는 NASA에게 악의는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전히 퇴직할 계획이 없다.
한편 NASA의 목성 탐사 임무는 이제 시간이 없다. 주노 탐사선은 애당초 자살 임무로 기획돼 왔다. 2018년 2월 NASA는 주노 탐사선을 목성의 대기권에 돌입시켜 불태워 버릴 예정이다. 이후 최소 10년간은 외행성 탐사선의 발사 계획이 잡혀 있지 않다.
수많은 임무가 진행되었고 우주선들은 임무에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나 핀리는 먼 우주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를 기다리며 오늘도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by NATHALIA HO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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