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125주년을 맞은 전통의 가공육 생산업체가 제품 혁신을 통한 성장세를 앞세워 과감하게 유기농 및 건강식품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호멜 기업 프로파일
RANK 304매출: 93억 달러
이익: 6억 8,600만 달러
직원 수: 2만 700명
총 주주 수익률 (2005~2015년 연 평균): 19.2%
옥수수 밭이 미네소타 주 오스틴 Austin 끝자락까지 뻗어 있다. 호멜 푸드 Hormel Foods의 본거지이기도 한 오스틴은 초 거대기업이 아직도 ‘고향’이라고 부르는 몇 안 되는 미국 내 지역 중 한 곳이다. 오스틴의 거의 모든 것은 호멜의 영향을 받고 있다. 지역민들은 유대가 매우 강하고, 대부분의 경우 다른 곳으로부터 고립됐다는 사실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다른 지역 미국인들에겐 당연시되는 것들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거나 이미 사라졌다는 사실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이곳엔 우버 운전자도, 스타벅스 매장도, 도요타 대리점도 없다. 작년에는 타깃 Target이, 그 전 해에는 스테이플스 Staples가 이곳 사업을 접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할 수 있는 숙소는 5륜 트레일러뿐이다.
호멜 제품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스팸 Spam이다. 고기 통조림을 기반으로 세워진 기업이라고 비아냥거리기 쉽지만, 결국 마지막에 웃은 곳은 호멜 자신이다. 이 회사는 지난 10년 동안 화려한 성과를 거둬왔다. 매출이 54억 달러에서 93억 달러까지 치솟으며, 올해 포춘 500대 기업 리스트에서 거의 100계단 상승한 304위를 차지했다. 이익은 2배 이상 증가했고, 배당금은 4배 가까이 늘어났다. 주식 투자수익률은 400%에 이르고 있다. 호멜의 성장 배경에는 홍수처럼 쏟아진 신규 제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땅콩 버터 간식에서부터 1인분 크기 칠면조 스틱과 닭고기, 퀴노아, 케일이 들어간 급식용 버거까지 출시했다. 모든 제품은 오스틴에서 개발됐다. 혁신을 창조하는 건 사람이지, 지역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호멜의 성공스토리는 인수합병과 새로운 식품 분야에 대한 꾸준한 ‘식민지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회사는 지난 5년 동안 23억 달러를 투자해 유기농 식품, 전통 식품, (상대적으로 더욱) 건강에 좋은 식품을 판매하는 브랜드 여럿을 인수해왔다. 그 중에는 홀리 과카몰리 Wholly Guacamole, 머슬 밀크 Muscle Milk, 스키피 Skippy 땅콩 버터, 애플게이트 팜스 Applegate Farms 등도 있다. 5월에는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견과류 버터업체 저스틴스 Justin’s를 2억 8,6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다행히 두부로 만든 스팸 제품을 출시할 계획은 없지만, 콩 원료의 단백질 셰이크를 생산하고, 맞춤형 햄의 온라인 판매도 실험하고 있다. 호멜의 영업이익은 물론, 사람들의 허리둘레도 늘려주는 주력 가공육 제품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호멜은 사람들의 ‘식생활 인지 부조화’를 온전히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점심에는 채식주의자처럼 먹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육식주의자처럼 간식을 먹는 식이다. 기업들이 미국인들의 새로워진 식습관-더욱 다양해지고, 시간에 더 많이 쫓기며, 식료품 성분 및 윤리성에 더 많이 신경을 쓴다-에 투자를 진행함에 따라, 거대 식품 업계에선 이 같은 이야기가 낯설지 않게 됐다. 이런 측면에서 호멜은 경쟁업체들보다 더 특별한 ’조리 비법‘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단 ‘요리사’ 가 더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올해 창립 125주년을 맞은 호멜은 기본적으로 조금씩 변화를 해 온 기업이다. 혁명적 변화보다는 서서히 진화를 거듭했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호멜의 최근 거래들은 전략적인 변화라기보단 합리적 실험에 더 가까워 보인다. 호멜의 방향과 성향에 혹시 의문이 든다면, 2년 전 회사가 내린 결정에서 일말의 답을 찾을 수 있다. 그 당시 힐셔 팜스 Hillshire Farms가 시장에 나와 있었다. 겉으로 봤을 때 두 기업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힐셔는 제조식품, 소시지, 핫도그 부문에서 강점을 가진 업체였기 때문에 베이컨, 칠면조, 청과 부문이 강했던 호멜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호멜은 힐셔를 인수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우선 가격이 한 가지 요소였다(결국엔 타이슨 푸드 Tyson Foods가 77억 달러에 힐셔를 인수했다). 하지만 다른 요소도 있었다. 호멜 이사회 의장이자 CEO로 전면에 잘 나서지 않는 제프 에팅어 Jeff Ettinger는 “호멜이 힐셔 인수에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사고의 핵심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힐셔 인수를 그저 동일한 부분하나가 추가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는 “힐셔를 주류 가공육 업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좀 더 새로운 영역에 진정으로 운명을 걸고 싶었다.”
이 같은 측면에선 에플게이트 팜스가 적격이었다. ‘우리가 먹는 고기를 바꾸다(Change the Meat We Eat)’라는 비전을 가진 이 기업은 농업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육류업체인지 우연히 육류를 팔게 된 비영리단체인지 항상 불분명했다. 1987년 설립 이후, 천연 재료로 만든 핫도그에 기꺼이 웃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애플게이트의 설립자 스티븐 맥도넬 Stephen McDonnell은 지금도 목축업계 항생제 사용 관행에 반대하는 주요 인물이며, 유전자 변형 식품 라벨 표시 확대를 지지하고 있다. 호멜도 이러한 사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맥도넬(61)은 2013년 12월 뇌졸중에 걸렸다. 그래서 골드만삭스의 도움을 받아 그 이듬해 3월까지 기업 매각을 추진했다. 맥도넬은 이 과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한 적이 없다. 그러나 자신과 골드만 팀이 전 세계 주요 육류업체의 대표들을 거의 대부분 만났다고는 말했다. 관심을 보인 곳이 많았다고 한다.
호멜은 이 과정에서 미국 중부지방 스타일의 전통적인 접근법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맥도넬은 “제프가 직접 연락을 취해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접근한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그가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수 있을까요’라고 제안을 해왔다.”
두 사람은 뉴욕에 있는 대니 마이어 Danny Meyer 레스토랑 제국 중 한 곳인 마이알리노 Maialino에서 만났다. 그곳에선 사업에 대한 실질적 논의는 없었고, 가치와 비전에 대한 대화만 오갔다. 하지만 맥도넬에겐 그것이 곧 거래의 성립이었다. “나는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을 믿을지 결정한다고 처음부터 그에게 말했다. 제프가 바로 내가 신용할 만한 사람이었다.”
애플게이트 인수는 2015년 5월 26일 발표됐다. 호멜은 매출 3억 4,000만 달러 규모의 이 기업을 7억 7,400만 달러에 인수했다. 호멜과 달리 애플게이트는 농장도 가공 공장도 없었다. 조류에서 너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외부업체에 의존하고 있었다. 애플게이트가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뉴저지 주 브릿지워터 Bridgewater에 위치한 근사한 사무실뿐이었다. 명품 의자와 전통 예술품, 그리고 새로운 주인-우스갯소리로 ‘호멜리언스 Hormellians’라고 불렸다-이 무엇을 요구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직원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애플게이트에서 기업 미션을 총괄하는 선임 이사 지나 애서디건 Gina Asoudegan은 광범위한 사안에 걸쳐 환경 및 동물 복지 단체들과 협력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녀는 “처음에는 스팸 생산업체 호멜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동물 복지 향상 등에 대해 내가 바라는 점들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래서 정말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오스틴 방문 후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호멜의 육류 관리자들이 밀레니얼 세대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라벨 정리와 성분 제거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꼭 애플게이트가 팔려 간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호멜이 인수합병을 진행하면-느리지만 예전과 달리-더욱 개선된 식품생산 모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주술과 같은 이 모든 기업 활동은 종종 회의론이라는 부차적 어려움에 직면하곤 한다.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애플게이트의 소셜미디어 팀은 여전히 많은 시간을 들여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고, 애플게이트는 독립적으로 운영된다’고 고객들을 안심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들은 “유기농 육류업계 경쟁이 가열되면서 애플게이트가 식품생산 문제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애플게이트의 행동주의는 브랜드의 핵심가치” 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건강 식품을 생산하는 중견 기업들은 업계 거물들의 주된 인수합병 표적이다. 인수합병 전문업체 애스펙트 컨슈머 파트너스 Aspect Consumer Partners의 설립자 로드니 클라크 Rodney Clark는 “사업에 도움이 되는 중견 기업의 인수 계약은 매우 빠르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현상은 소비자들이 더 똑똑해졌고 라벨을 꼼꼼히 확인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상대적으로 오래되고 전통적이며, 건강에 덜 좋은 브랜드를 소유한 기업들은 소비자 접점을 유지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들 스스로 혁신하기는 어렵다.”
저스틴스의 매출은 1억 달러 미만이다. 호멜이 지불하는 막대한 인수 금액-매출의 거의 3배-은 특수 견과류 업계의 강한 성장세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호멜이 스키피 없이 자체 사업을 구축할 경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식품업계는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들이 계산대 데이터를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상점 운영 업체가 이 같은 분석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사모펀드까지 식품업계를 노리면서 인수합병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호멜은 단순히 곧 건넬 돈만 앞세워 상대를 설득하지 않는다. 기존 소유주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동시에, 인수합병 계약서 잉크가 마른 후에도 인수 기업을 성장시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지분 과반을 소유한 저스틴스의 설립자 저스틴 골드 Justin Gold는 호멜 팀이 지난해 말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밝혔다. 골드는 우선 맥도넬과 머슬 밀크 소유주들에게 연락을 취해 호멜 아래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들의 경험을 물었다. 두 기업 모두 인수합병 후에도 기존 경영진과 본사 직원이 대부분 유지됐다. 그리고 두 브랜드 중 어느 쪽도 호멜의 자회사임을 나타내는 라벨을 표시하지 않았다.
골드는 “이들에겐 하겠다고 말한 것을 지키는 신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설립자들은 자신들의 사업을 성장시킨 호멜의 방식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90번 주간 고속도로(Interstate 90)의 굉음이 들리는 곳에 위치한 호멜의 저층 사무실 안내직원은 오전 6시가 되기 전에 출근을 한다. 대부분의 직원은 7시까지 나오는데, 호멜의 육류제품 포장 일과에 맞추기 위해서다. 호멜 경영진의 평균 근속연수는 26년이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백인 남성이 많다. 회사 전체 인력이나 이사진, 그리고 고객 구성 비율에 비해 훨씬 다양성이 떨어진다. 에팅어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스틴의 지역적 특성과 회사 내부의 승진 선호 경향을 고려하면 풀기 쉬운 숙제는 아니다.
1989년 변호사로 호멜에 합류한 에팅어는 후에 제품 관리부서로 보직을 옮겼다. 통조림 칠리 제품에서 출발해 나중에는 호멜의 제니-오 Jennie-O 칠면조 사업을 이끌었다. 2005년 CEO에 올랐고, 몇 년 후 호멜 팀은 ‘하나하나씩 추가하는 방식(bolt-on)’의 인수합병 전략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호멜의 사업은 5개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 미국 내 최대 멕시코 식료품 판매업체 헤르데스 델 푸에르테 Herdez del Fuerte와의 합작 투자 사업이 포함된 청과물 부문, 회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냉장육 부문, 지난해 발생한 조류 독감 탓에 존폐 위기에 몰렸다가 되살아난 제니-오 부문, 특수 식품 부문, 그리고 국제사업 부문이다. 주로 냉장육 부문을 뒷받침하는 사업은 10억 달러 규모의 식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브웨이에서 파는 미리 조리된 립과 과카몰리부터 미국 시골 전역의 케이시 제너럴 스토어 Casey’s General Stores에서 판매되는 피자 토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공급하고 있다. 호멜은 경쟁 업체들과 달리 식품 브로커를 거의 통하지 않는다. 자체 판매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 고객 접점을 통해 얻은 통찰은 소매 및 도매의 모든 측면에서 신제품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베이컨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인들은 베이컨을 좋아한다. 하지만 많은 식당들은 베이컨을 싫어한다. 아침식사 근무시간 이후 청소가 악몽일 뿐만 아니라 조리 중 조금만 방심해도 음식 전체가 타버리기 일쑤다. 조리 관리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페인 포인트 Pain Points *역주: 결정을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 라고 부른다. 그래서 호멜은 현장에서 다시 데울 수 있으면서도 적절한 맛과 질감-식품학자들에게 조 스트레스 Jaw Stress로 알려진 적당한 정도의 씹는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는 완전 조리된 베이컨을 목표로 삼았고, 5년을 투자해 이런 베이컨을 만들 수 있는 기계를 개발했다. 현재 특허 등록 절차가 진행 중인 이 기계는 식품업계 고객들 입장에선 엄청난 성공작이라 할 수 있다.
호멜은 땅콩 버터 전쟁에도 뛰어 들었다. 땅콩 버터를 둘러싼 경쟁은 이제 스키피와 지프 Jif의 양자 구도로 굳어졌다. 제이엠 스무커 J.M. Smucker가 생산하는 지프는 미국 시장 내 점유율이 스키피의 2배다(전 세계 시장에선 스키피가 앞선다). 땅콩 버터는 거의 모든 가정에 있는 제품 중 하나다. 나이가 들어도 어릴 때부터 함께한 브랜드를 바꾸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호멜의 전술은 땅콩 버터 분야를 정복하기보단 변화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땅콩 버터 섭취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스키피를 인수한 직후 에팅어는 개발팀에게 “제품을 병에 넣지 않아도 될 방법을 신속하게 찾으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지난해 한입 크기의 구슬 모양 제품 스키피 피비 바이트 Skippy P.B. Bites가 출시됐다. 타깃 소비자는 하교 후 귀가한 ‘화날 정도로 배고픈(hangry)’ 아이들이다. 매출이 좋은 편이지만, 더욱 중요한 건 아이들을 위해 이 간식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거의 절반 정도가 지프 제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이라는 점이다. 그렇긴 해도 증가한 스키피의 시장 점유율은 대부분 지프가 아니라 군소 브랜드들로부터 뺏어온 것이다. 하지만 호멜리언들은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강력한 오스카 메이어 런처블스 Oscar Mayer Lunchables 제국의 제품에 이젠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10대들을 위해 호멜은 레브 REV를 개발하기도 했다. 향이 첨가된 크래커를 고기 조각과 치즈 조각으로 싼 제품이다. 이 제품은 조미료를 쓰지 않고 양상추, 피클도 넣지 않았다. 이 제품이 다소 뻑뻑하다고 말하는 건 그나마 점잖은 표현이다. 그러나 이는 중요한 점을 놓친 평가다. 한 손으로 문자 메시지를 계속 보내면서 먹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5,000만 달러 규모의 사업으로 성장한 레브는 일정 부분 호멜의 사내 인류학자 타니아 로드리게스 Tanya Rodriguez의 연구 덕분에 개발된 제품이라 할 수 있다. 대학 캠퍼스를 방문했던 그녀는 식사 중에도 휴대폰을 내려놓지 않는 학생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됐다. 그녀는 “이제 식사 테이블은 아무 쓸모가 없는 상징이자 관념적인 존재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오스틴 도심 한가운데에 새로운 스팸 뮤지엄 Spam Museum이 문을 열었다. 선물 매장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심하게 수준이 낮아 보이지는 않는다. 호멜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팸을 정말 심각하게 여겼다-어쩌면 너무 대단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예컨대 1995년 짐 헨슨 프로덕션 Jim Henson Productions을 상표권 침해로 고소하기도 했다. 영화 ‘머펫의 보물섬(Muppet Treasure Island)’에 카메오로 등장한 ‘스팸 Spa’am’이란 이름의 돼지를 문제 삼은 것이었다. 호멜은 해당 캐릭터가 지저분한 존재로 그려져 자사 제품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법정은 미스 피기 Miss Piggy (*역주: 머펫의 보물섬 캐릭터) 의 손을 들어줬다. 후에 항소법원 판사는 ‘지방법원은 영화 속 스팸이 비위생적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나쁘게 봐도 어수선한 정도로 묘사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니콜 벤 Nicole Behne은 호멜 청과물제품 부문 마케팅 이사로 스팸, 매리 키친 헤시 Mary Kitchen Hash, 딘티 무어 Dinty Moore 스튜의 판매를 책임지고 있다. 그가 책임지고 있는 어떤 제품도 대중화된 피비알 PBR 맥주나 남성용품 브랜드 올드 스파이스 Old Spice의 복고 유행처럼 제2 전성기를 구가하진 못했지만, 벤은 항상 낙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녀는 딘티 무어를 소위 ‘럼버섹슈얼 Lumbersexuals’ (*역주: 유행에 민감하고 스타일이 좋은 남성을 일컫는 유행어)-플란넬 소재는 입지만 도끼를 휘두르진 않는 젊은 남성-과 연관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구입하는 스팸은 3년간 보관할 수 있도록 제조되고 있다. 벤은 이를 두고 안정적으로 선반에 진열할 수 있는 기능성 제품이라고 말하는데, 입에 넣을 제품이라기보단 문진(a paperweight)에 가까운 제품처럼 들린다. 일반적으로 스팸은 슈퍼마켓 내에서 가장 안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여전히 추정 매출이 3억 달러에 이르며, 매년 약 3%씩 성장하고 있다. 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도로 형편 없고 오래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스팸 제품 라인 중 가장 최근 출시된 것이 스팸 메즈클리타 Spam Mezclita인데, 스팸과 가공 치즈를 조합한 제품으로 푸에르토리코에서만 판매한다. 멕시코계 미국인을 타깃으로 한 이 제품은 인기를 끌지 못해 현재 단종 상태다. 작은 크기로 말아 파우치에 담아 나온 스팸 스낵 Spam Snacks도 같은 운명을 겪었다.
해외에선 스팸의 전망이 상대적으로 밝다. 육류 제품 수입제한 때문에 대부분의 해외 스팸 매출(5억 달러 이상)은 사용권 계약을 통해 발생한다. 한국의 경우, 매년 자그마치 1억 7,500만 달러어치의 스팸을 소비하는데, 전국에서 즐겨 먹는 음식으로 면과 김치가 들어가는 매콤한 일상 메뉴 부대찌개(Troop Stew)에 많이 사용된다.
중국은 거대한 개척지다. 2014년 말 중국 정부는 2번째 스팸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지난 봄 이후부터 중국은 공식적으론 스팸이 없는 국가다. 이런 상황은 올해 말 호멜이 중국 자싱 Jiaxing에 공장을 열어 기존 중국 내 가공육 생산량을 추가하면 바뀔 것이다. 한국인이나 필리핀인과는 달리 중국인은 스팸에 열광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만 그럴 뿐이다. 호멜 푸드 인터내셔널 Hormel Foods International 사장 래리 보팔 Larry Vorpahl은 “중산층이 증가하는 곳에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편한 것을 원하고 있다. 사전에 조리되고 향이 첨가돼 곧바로 먹을 수 있는 것, 가처분 소득은 바로 그 시장을 향할 것이다.”
스팸 대부분을 생산하는 호멜의 대표 공장은 본사와 새 스팸 뮤지엄 사이 한가운데쯤 위치하고 있다. 작년 해당 공장 내에 위치한 협력업체 도살장 직원들의 여러 위반 행위, 그리고 노(paddle)로 동물을 구타하는 영상이 공개돼 호멜은 부정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미 농무부(USDA)가 벌금을 부과하진 않았지만, 이 사건은 중요한 점을 시사했다. 모든 브랜드화 노력과 영민한 마케팅 활동에도 불구하고, 호멜의 본질은 한쪽 문으로 동물이 들어가서 육류 식품이 돼 다른 문으로 나오는 회사라는 점이 부각된 것이었다. 이는 1시간에 약 1,300마리의 돼지를 가공하는 어렵고 고된 일이다. 2007년에는 공공보건 조사원들이 뇌 분리 공정과 그 주변에서 일한 직원들에게서 다양한 신경 질환을 발견한 후, 해당 공장단지에 대한 정밀조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리처드 모건 Richard Morgan은 오스틴 내 유나이티드 푸드 앤드 커머셜 노동자연합(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s Union)의 지역 회장으로, 호멜 직원 1,500명 외에도 공장의 도살 협력업체 퀄리티 포크 프로세서 Quality Pork Processors 직원 1,000명을 대표하고 있다(이들은 1985년 전국적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한 장기 파업-때론 폭력사태까지 벌어졌다-직후 노조에 가입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고된 일”이라고 자신의 상황을 토로했다. 노동자 연합은 2번의 파업 승인 투표를 진행한 후, 지난해 호멜과 새롭게 5년 계약을 체결했다. 모건이 기억하는 한 최고의 계약이었지만, 16.90달러였던 시간당 급여는 겨우 2% 올라 17.30달러가 됐을 뿐이었다.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이윤을 늘리겠다는 목표, 5% 매출 성장과 10% 이익 성장이라는 회사 목표를 달성하려는 호멜의 의지가 드러난 사례였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호멜은 위스콘신 주 한 공장에서 직원들이 안전복장을 갖추는 시간 동안 급여를 지급하지 않기 위해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주 최고 법원은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모건에겐 해묵은 걱정들이 또 있다. 그는 다음 세대 육류포장 직원들이 어디에서 오게 될지 우려하고 있다. 노동자 연합의 새 회원들은 대부분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로, 지금은 포장 공장에서의 업무 속도, 스트레스, 추위를 견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모건은 호멜이 강압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동종업계 다른 곳보다 상황이 낫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다. 안정적인 회사라서 정리해고가 거의 없다. 그리고 이익공유 프로그램도 꾸준히 시행되고 있어 연휴 기간에도 직원들이 수백 달러를 받을 수 있다.
호멜의 안정성은 단지 사람들이 베이컨과 칠리를 지속적으로 먹고 있기 때문이거나, 그들이 미래에 아몬드 버터와 전자 렌지로 조리할 수 있는 채식주의 요리로 돌아설 것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욱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현재 호멜 주식 중 49%에 약간 못 미치는 지분-현재 가치로 90억 달러 가량-은 오스틴 소재의 호멜 재단(Hormel Foundation)이 관리하고 있다(스팸 뮤지엄 대각선 방향의 넓은 사무실 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다). 재단이 직접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5%-해당 지분에 대한 배당금 1,600만 달러를 받고 있다-이지만, 조지 호멜 George Hormel의 손자들을 위해 설립된 신탁 지분에 대해서도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지분과 그 배당금은 재단에 돌아갈 것이다.
재단 이사회의 일원인 에팅어는 이러한 구조가 호멜을 보호하고 장기적인 경영을 가능케 한다고 말하고 있다. 행동주의 투자자들도 파산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굳이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에팅어도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실적 좋은 기업을 건드리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아틀로스 리서치 Athlos Research의 애널리스트 존 피니 Jon Feeney는 이에 대해 “제프 에팅어는 더 큰 규모의 어떤 기업이 (그것도 고의적으로) 허를 찔러 자기 회사를 인수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잠을 못 이루지는 않는다. 그런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올바르게 사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와 통한다”고 설명했다.
가장 최근 신고된 소득 내용에 따르면, 호멜 재단은 2014년 오스틴 시를 중심으로 해당 지역의 공립학교, 지방 대학 등 지역 단체를 비롯해 암 연구 선두주자인 미네소타 대학교와 제휴한 호멜 연구소(Hormel Institute) 등에 2,2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호멜 재단은 최근에는 원자 단위 해상도를 갖춘 500만 달러짜리 현미경을 기부하기도 했다.
전 오스틴 시장으로 호멜 재단 부의장을 맡고 있는 보니 리츠 Bonnie Rietz는 “재단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겐 진짜 행운이다. 그건 놀라운 배경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재단 재원 덕분에 학교에 충분한 자금을 지원하고, 대학 장학금을 지급하고, 수백만 달러를 연구소에 투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재단은 개발업체와 공동으로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연구소에 신규 연구 인력이 밀려들 것으로 예상하고, 이들이 약 65km 떨어진 로체스터 Rochester가 아닌 오스틴 내에 거주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호멜의 업무 시작 시간은 매우 이르기 때문에 장거리 통근은 부담스럽다. 그래서인지 회사 경영진 대부분은 오스틴 서쪽 지역 다양한 높이의 이웃집에 모여 살고 있다. 그들의 아이들은 공장 근로자의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종종 같은 교회에서 예배를 본다. 2개월 전, 에팅어와 짐 스니 Jim Snee-현 호멜 사장으로, 에팅어의 후임자로 유력한 인물이다-는 오스틴 고등학교 졸업파티 직전 저녁 식사 때 등록 테이블에서 함께 일했다. 두 사람 모두 이 학교에 다니는 상급생 자녀를 두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감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잘 모르는 곳에 대한 막연한 냉소주의 때문에 나오는지도 모른다. 스니는 “오스틴과 호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다. “직장 내에서의 관계를 넘어 서로를 정말로 잘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여기에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이 누군지 알고,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고,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도 이런 생각은 종종 거대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메뉴의 다양화]
호멜은 지난 5년간 전통적인 가공육 사업부문을 뛰어 넘어 다수의 인수합병을 진행했다.
▲ 프레시라이즈드 푸드
인수 연도: 2011년
인수 금액: 비공개
호멜은 자회사 메가멕스 MegaMex와 멕시코시티에 소재한 헤르데스 델 푸에르테가 50대 50으로 합자한 회사를 통해 홀리 콰카몰리와 홀리 살사 Wholly Salsa를 생산하는 이 기업을 인수했다. 인수합병 신청 서류에 따르면, 50% 지분에 대한 호멜의 투자액은 6,100만 달러였다.
▲ 스키피 땅콩 버터
인수 연도: 2013년
인수 금액: 7억 700만 달러
2건의 개별 계약을 통해 업계 2위 땅콩 버터업체를 유니레버 Unilever로부터 인수했다(중국 내 사업 부문은 별도 매각됐다). 호멜에 귀속된 후 스키피는 피비 바이트 간식 등 여러 가지 신제품을 개발했다.
▲ 사이토스포트
인수 연도: 2014년
인수 금액: 4억 2,000만 달러
그레그 피킷 Greg Pickett과 마이클 피킷 Michael Pickett 부자가 1998년 설립한 캘리포니아 베네시아 Benicia 지역 업체로, 운동애호가들이 선호하는 머슬 밀크 단백질 보충제 파우더와 보디빌딩 음료를 생산하고 있다.
▲ 애플게이트 팜스
인수 연도: 2015년
인수 금액: 7억 7,400만 달러
‘우리가 먹는 고기를 바꾸다(Change the Meat We Eat)’라는 비전을 가진 뉴저지 소재 유기농 및 천연 육류 기업이다. 가축 항생제 남용을 반대하고, 유전자 변형 식품 라벨 표시를 지지하고 있다. 이 같은 회사의 생각은 새로운 모기업의 사고와 배치되는 것이다.
▲ 저스틴스
인수 연도: 2016년
인수 금액: 2억 8,600만 달러
호멜이 가장 최근 인수한 기업으로 저스틴스 매출의 3배를 인수 금액으로 투입했다. 볼더 Boulder 지역에 본사를 둔 이 업체는 ‘자연적인 맛을 지닌’ 견과류 버터와 건강 간식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채식주의 기업가 저스틴 골드가 2004년 설립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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